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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나나 Oct 15. 2023

편의점 일이 제일 쉽다고요???

#6. 초짜 점주의 시련

편의점은 하루 세 번 옷을 갈아입는다.

삼각김밥, 샌드위치를 사러 오는 학생들과 우유나 커피를 사러 오는 직장인들이 몰리는 아침은  파란색 옷을,

엄마 손잡고 과자나 사탕을 집으러 오는 아이들이 많은 오후에는 노란색 옷을, 퇴근길에 들러 맥주나 소주, 안주거리를 사는 사람이 많은 저녁에는 회색의 옷으로. 

청량한 공기와 더불어 활기찬 기운의 아침, 병아리처럼 귀여운 아이들을 만나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는 오후, 분주하게 바삐 돌아가는 저녁.

나는 하루의 모든 시간이 좋았다. 나를 괴롭히려고 작정한 진상만 없다면 말이다.

경험이 적고 시험을 치르듯 오로지 이론만 달달 외우기만 한 초짜 점주인 나는 포스기를 다루는 게 익숙지 않았다. 단순히 계산하는 일은 무리가 없었지만 제휴 할인, 적립, 쿠폰 사용등 중복 결제가 이루어지면 금세 머리가 하얘지며 버벅거리게 되었다. 그러기에 초짜 점주는 늘 어깨에 힘을 잔뜩 주고 긴장상태를 풀 수 없었다.

상품 배송차가 오는 시간과 퇴근 시간이 맞물려 워크인(음료수나 술이 진열된 냉장고로, 안으로 들어갈 수 있게 만들어져 이름 붙여진 냉장고)과 카운터를 정신없이 뛰어다녔던 어느 날이었다. 또각또각 구두소리에 맞추어 여자손님이 들어왔다.

"어서 오세요~"

반갑게 맞이하는 소리에 힐끔 옆눈길로 내쪽을 쳐다본 여자는 이내 고개를 휙 돌려 술 냉장고 쪽으로 걸어갔다. 뭐야, 사람이 인사를 하는데 기분 나쁘게.

본인에게 맞지 않는 너무 높은 힐을 신어 거의 뒤뚱거리다시피 카운터로 온 그녀는 맥주 6개짜리 번들을 던지듯 내려놓았다. 쫘악 찢어진 눈매에 앞으로 불쑥 나온 입술 때문에 심술궂은 한 마리의 오리 같았다.

결제를 마친 여자는 출입구로 가려는 발걸음을 다시 돌리더니 "사장, 바뀌었어요? "대뜸 시비조로 물어왔다.

그렇다는 대답에 적립을 하지 않았으니 취소하고 다시 결제하기를 원했다. 고객님의 핸드폰에 설치된 앱의 바코드로 결제와 적립이 동시에 이루어졌다고 나는 살며시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러자 그녀는 그럼 할인은 되냐고 다시 물어왔다. 할인, 할인이라... 순간 머릿속 회로가 멈추었고 나는 버벅거렸다. 신입 점주라 모르는 부분이 많아 죄송하다는 말에 여자는 길게 찢어진 눈으로 나를 째려보았다. 한참을 째려본 그녀는 마지막 한 방을 던지고 휑하니 사라졌다.

"뭐야!!! 사장이 그것도 몰라?!"

생각할 틈도 주지 않고 몰아붙이는 사나운 말투에 바짝 얼어붙었던 마음에 쩍! 하니 금이 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교육을 받고 실전에 뛰어도 보았는데 이런 기본적인 것도 바로바로 대답을 못하다니. (적립과 할인은 동시에 이루어질 수 없다. 특히 술은 할인대상이 아니다. ) 한심하기 짝이 없는 마음과 그렇게까지 쏘아붙이지 않아도 되지 않냐는 서글픈 마음이 교차되어 울고 싶은 날이었다.



편의점은 택배 대행업을 겸하고 있다.

손님이 택배 보낼 박스를 매장 안에 설치된 저울에 올려 무게를 달고 이름, 주소등을 기재해 송장을 만든 후 카운터에 가져와 계산하는 방식이다. 그럼 택배 박스는 편의점 측에서 맡아 놓았다가 하루에 한 번 방문하는 택배 기사님에게 전달하면 된다. 잠시 거쳐가는 임시 장소라고 할까, 택배 회사는 아닌 것이다.

어느 날 이른 아침 연로하신 할머니와 할머니의 아들로 보이는 중년남자가 가게로 들어왔다. 두 사람은 들어오자마자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소리부터 질러대기 바빴다. 이틀 전, 여기에서 분명히 택배를 붙였는데 아직도 도착하지 않았다며. 딸에게 줄 반찬인데 상하면 책임질 수 있냐며.

나는 차분한 목소리로 요즘 택배 물량이 많아 조금 늦는 모양이라며 우선 진정을 시킬 요량으로 말을 했다. 하지만 두 사람은 막무가내였다. 택배가 어디 있는지 지금 당장 알아내라며 고함을 질렀다.

이곳은 택배회사가 아니어서 알아볼 수 없으며 오후에 택배기사님이 오시면 알아보겠으니 연락처를 남겨주시고 집으로 돌아가시는 것이 좋겠다는 말을 했다. 하지만 쉽게 물러설 리 없는 사람들이었다. 출입구를 가로막듯 서서 여기에서 택배를 부쳤는데 왜 모르냐며 당장 알아내라는 말만 연거푸 해댔다.

점점 인내심의 한계가 다다르는 것을 느꼈다. 어떻게 말해야 설득을 시킬 수 있을까, 나는 포스 기 앞에 서서 발주를 하던 참이라 마음이 급했다. 오전 10시가 마감이라 손은 연신 자판을 치고 있었다. 그때, 이렇다 할 반응이 없는 나를 향해 할머니는 강한 펀치를 날렸다.

"야!!! 컴퓨터만 틱, 틱, 틱 치면 뭐 하냐!! 이것도 제대로 해결도 못하면서!"

하...... 한숨이 절로 나왔다. 하다 하다 인신공격까지. 상대할 가치도 못 느끼는 지점까지 도달했다.

"영업장에서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이만 돌아가 주세요. 알아보고 연락드리겠습니다."

"왜!!! 영업 방해 한다고 경찰이라도 부르게? 불러!! 불러 봐!!!"

할머니는 속시원히 해결이 안 되어서 베알이 꼬아졌는지 약을 올리는 말투로 내 신경을 긁기 시작했다.

"야!!! 너, 몇 살이나 쳐 먹었냐? 어른한테 이래도 되는 거야? 꿀 먹은 벙어리처럼 왜 말을 안 해!! 말해봐!!!"

더 듣고 있다가는 정말 내가 무슨 말을 할지 몰라 나는 포스 기에 있는 긴급버튼만 꾸-욱 눌렀다.

경찰은 바로 출동했다. 사정을 들은 경찰은 사장님은 잘못이 없고 최선을 다해 대응하셨다며 나에게 안쓰러운 눈빛을 보냈다. 경찰이 오건 말건 두 사람은 역시나 고함을 지르기 바빴다. 경찰은 영업장에서 이러면 안 되니 밖에 나가서 이야기하자며 두 사람을 끌고 나갔다.

간신히 한숨 돌린 나는 막바지 발주에 여념이 없었다. 창 너머로 들리는 소리가 신경 쓰여 멈칫멈칫해야만 했지만. 네모난 창으로 비친 모습은 마치 시트콤의 한 장면 같았다. 경찰까지 불러 화가 잔뜩 나 삿대질하며 성질부리는 두 사람, 진정시키려 애쓰다 말이 통하지 않자 이내 얼굴이 울그락불그락 되어 소리치는 경찰 두 명. 끝내 네 사람은 일대일로 붙어 싸움까지 일어났다.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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