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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나나 Oct 16. 2023

편의점 일이 제일 쉽다고요???

#7. 깨져버린 환상

"안녕하세요. 점주님, 새로 담당을 맡게 된 매니저입니다. 신입이라 서툴지만 점주님과 함께 잘해나가고 싶습니다. 잘 부탁합니다."

편의점을 인수받고 한 달쯤 되던 시기에 담당 매니저가 바뀌었다. 젊은 청년의 의욕 넘치는 태도와 서글서글한 인상은 좋았지만 초짜 점주에게 신입 매니저를 붙여주면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걱정부터 앞섰다.

하지만 나의 우려는 기우에 불과했다. 매니저는 최선을 다해 서포트를 해 주었다. 자주 방문해 점포를 꼼꼼히 둘러보며 개정할 부분을 찾아내어 시행했다. 밖에 있는 아이스크림 냉장고에 햇빛이 비쳐 위에 놓인 아이스크림이 녹는 것도 찾아내어 어닝 밑에 천으로 된 커피문구를 붙여 그늘을 만들어주기도 했고, 점포 유리창에 붙일 문구도 눈에 확 띄게 만들어 왔다. 실천력도 좋았다. 이런 문구, 저런 문구 등 요구사항이 많은 욕심 많은 점주의 입맛에 맞추어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매장에 방문했다.

부탁하면 최소 일주일씩 걸리는 전 매니저와 비교가 될 수밖에 없었다. 초짜 점주의 욕심과 신입 매니저의 의욕이 만나 시너지 효과가 일어나듯 우리는 호흡이 잘 맞았다. 나는 점점 바뀐 매니저에게 의지하게 되었다.

매니저도 열심히 하는 나를 보며 칭찬하고 응원해 주는 날이 계속되었고 그런 마음이 컸나, 점차 애정이 가는 점포라며 거의 매일 매장에 들렀다. 성실하고 인정 많은 매니저가 고마웠다. 척박한 사회를 혼자서 일구어내려 낑낑거리며 애쓰는 중 생각지도 못한 든든한 친구가 생긴 기분이었다. 나도 매니저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었다. 내 마음 같아선 눈에 띄게 매출을 확 늘려 매니저 기분을 좋게 하고 싶었지만 현실상 그것은 절대 무리였다. 고작 내가 할 수 있는 건 신상품 발주에 힘을 쓰는 것 밖에 없었다. 그래도 매니저는 고마워했다. 생각보다 신상품은 쳐다도 보지 않는 점주님들이 많다며. 소박하게 웃는 매니저의 모습을 보자 괜스레 내가 더 미안해졌다.




상품을 팔면 바로 수익이 눈에 보이는 슈퍼에 비하면 편의점의 사실상 주인은 본사다. 점주는 월급 사장인 셈인 것이다. 65:35 이거나 70:30 등 점포 타입에 따라 수익 배분이 다르고 24시간 점포와 19시간 점포에 따라 혜택도 다르다.

첫 월급날, 나는 설레고 두근두근 대는 가슴으로 정산보고서를 클릭했다. 우선 내가 받을 금액의 합계가 눈에 보였고 세부 사항을 클릭하자 집기와 포스 기 대여료, 광열비, 카드 수수료 등 공제된 품목 사항이 주욱 내려다 보였다.

얼마 되지도 않는 매출인 데다 공제된 금액은 내가 생각지도 못한 금액이라 솔직히 충격이었다. 여기에 더 심한 것은 아직 가겟세와 아르바이트생의 월급을 제하지 않은 금액이라는 점이었다. 대강의 금액을 머릿속으로 굴려 보았다. 두 가지를 제하고 나면 나의 월급은... 그야말로 쥐꼬리 만한 것이었다.

하루에 열 시간씩 일하고 한 달에 네 번만 쉬며 이루어 낸 결과가 고작 이거라고? 내가 이거 벌려고 그렇게 애썼단 말인가. 허무하고 또 허무했다. 순간 본사 앞에 진을 치고 있었던 데모 현장의 모습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목 놓아 소리 내어 외쳤던 구호가 들리기 시작했다. 눈앞이 캄캄해지며 기운이 쫙 빠졌다.

그때, "안녕하세요. 점주님~" 인사하며 매니저가 좋지 않은 타이밍에 들어왔다. 어두운 기운을 눈치챈 매니저는 무슨 일이냐며 다급하게 물었다. 사정을 들은 매니저는 나보다 더 어두운 표정이 되었다. 공감해 주는 사람의 등장으로 마음은 약해졌고 나는 끝내 눈물까지 비치고 말았다. 나의 눈물에 매니저는 당황해 어쩔 줄 몰라했다. 그러나 조금 뒤 매니저는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점주님, 한두 시간만 나갔다 오세요. 매장은 제가 보고 있을 테니 마음 놓으시고요. 바깥바람을 쐬면 기분이 좀 나아지실 거예요."

속상한 마음에 고마운 마음까지 더해져 눈물은 멈추지 않았고 말을 할 수 없는 나는 고개만 절레절레 흔들었다. 매니저는 억지로 나를 떠밀었다. 갑자기 밀쳐져 나오게 되자 딱히 갈 곳이 없었다. 가까운 공원을 정처 없이 걸었다. 멀치감치 우리 가게의 모습이 보였다. 아담하게 자리 잡은 가게를 애정 어린 시선으로 한동안 바라보았다. 바람에 흔들려 나부키는 천막은 빨리 돌아오라는 손짓처럼 느껴졌고 엄마 잃은 아이처럼 처량해 보였다. 앞으로 잘해나갈 수 있을까? 이러다 망하는 것은 아니겠지?

욕심 많고 의욕만 앞선 점주는 냉혹한 현실 앞에서 힘없이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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