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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나나 Oct 18. 2023

편의점 일이 제일 쉽다고요???

#8. 웃는 얼굴의 뒷면

우리 가게의 모토는 친절과 웃는 얼굴이었다.

마지못한 표정으로 기계적인 인사를 하고 단지 상품을 파는 곳이 아닌 밝고 편안한 분위기, 가게에 들어오면 기분이 좋아지는 그런 곳으로 만들고 싶었다.

아르바이트생을 뽑는 기준으로도 그 점에 중점을 두었다. 용모 단정은 말할 것도 없고 밝은 인상과 성실한 이미지를 가진 사람을 원했다. 20대가 가장 선호하는 아르바이트가 편의점이라더니 공고를 올리자마자 몇 십 명의 지원자가 메일을 보냈다. 한 사람씩 시간을 정해 이력서 지참과 매장 방문을 요청했다.

슬리퍼에 트레이닝 복 차림을 하고 온 청년, 이력서를 우리 가게에서 사서 즉석에서 쓰는 여자, 야간 파트타임으로 공부에 전념하기 위해 지원했다는 남자 등 별의별 사람들이 지원을 했다. 도대체 편의점을 어떻게 생각하길래. 기가차고 어이가 없었다.

그러던 중 생글거리는 표정과 싹싹한 말투로 자신감을 내비친 남자아이가 들어왔다. 연이어 어이없는 지원자에 실망이 큰 나는 대번에 그 아이가 마음에 들었다. 내일부터 나와 달라는 말에 흔쾌히 대답을 하고 본인이 일해왔던 매장 사진을 보여주었다. 수십 장의 사진에는 깔끔하게 정돈이 된 매대가 나열해 있었다. 그만큼 자신 있다는 표현 같아 기대감이 컸고 뽑아주셔서 감사하다는 메시지를 보내와 예의도 바른 청년이구나, 내심 흡족한 마음도 들었다.

그 아이는 첫날부터 메시지를 많이 보내왔다. 오늘은 이런이런 일을 했고 이런저런 손님들이 다녀갔다고.

나는 일일이 보고하지 않아도 된다며 사소한 일은 알아서 하면 된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그랬더니 다음부터는 전화를 하기 시작했다. 대부분 별일 아닌 일이 많아 나는 슬슬 짜증이 났다. 집에서 쉴 때는 되도록이면 일 생각에서 벗어나고 싶었는데 시도 때도 없이 걸려온 전화로 신경이 예민해졌다.

이대로 계속 이 아이를 써도 괜찮나 의구심마저 들던 에 여지없이 전화벨이 울렸다.

"사장님..."

"네... 무슨 일이죠?"

"잠깐 나오셔야 될 것 같습니다."

"무슨 일 때문에...?"

"경찰이 사장님 나오시라고..."

"네? 경찰이요?"

나는 허겁지겁 대충 옷을 걸쳐 입고 편의점으로 뛰어갔다. 밖에서는 경찰 옆에서 분을 참지 못해 얼굴이 벌게진 중년의 아줌마가 씩씩대고 있었고 그 아이는 매장 창문으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누가 먼저 욕을 했냐라는 말로 아줌마와 그 아이가 시비가 붙었고 끝내 경찰까지 불렀다는 사정을 들은 나는 생각할 것도 없이 아줌마에게 넙죽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아르바이트생 교육을 제대로 하지 못한 제 불찰입니다. 죄송합니다."

나는 연신 죄송하다는 말 밖에 할 수가 없었다. 아줌마는 아무 잘못도 하지 않은 사장이 불쌍했는지 점차 화를 누그리고 돌아갔고 그렇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마무리가 지어졌다.

매장으로 돌아와 의자에 털썩 앉은 나에게 아이는 불만을 토로했다.

"전 정말 욕을 하지 않았습니다. 억울합니다. 왜 사장님이 사죄를 해야 합니까? 제가 잘못한 게 없는데 말입니다."

나는 허탈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시비를 따져서 무엇해요. 서비스를 하는 입장이니 손님에게 무조건 죄송하다고 해야죠. 앞으로는 이런 일 없도록 주의해 주세요."

아이는 해야 할 대답은 하지 않은 채 눈만 껌뻑이며 뚱한 표정만 내비쳤다.




점주는 매장 관리뿐만 아니라 매일 발주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품목당 매출 현황도 꼼꼼히 살펴봐야 하는 피곤한 직업이다. 초반에 컴퓨터로만 볼 수 있었던 데이터가 핸드폰으로도 연동이 되어 편하게 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매일 데이터를 들여다본 어느 날부터인가 환불이 많아진 것을 알게 되었다. 결제를 한 다음에 이어서 환불이 찍히고 또다시 결제. 아르바이트생이 실수로 결제를 한 경우가 있어 대수롭지 않게 여겼었는데 이건 빈도수가 너무 많았다. 마치 누가 장난이라도 치는 것처럼.

며칠 분에 날짜와 시간대를 조사하니 그 아이였다. 이상하다. 왜 이런 짓을...

나는 매장 안에 설치되어 있는 cctv의 녹화분을 보러 매장에 나갔다. 아르바이트생을 믿지 못하고 감시하는 것 같아 되도록이면 보지 않는 나였지만 실상을 알고 싶었다. cctv를 돌려보며 내 눈을 의심했다. 손이 벌벌 떨리고 벌렁벌렁 대는 심장소리는 주체할 수 없이 커져갔다. 그 아이는 상습범이었다.

우선 손님이 오면 흠칫흠칫 눈치를 본다. 손님이 결제를 마치고 나가면 환불 버튼을 눌러 취소를 한다(단, 현금 결제만 가능하다) 똑같은 상품을 가져와 바코드를 찍고 결제 버튼을 누른다. 그리고 본인의 포인트카드를 꺼내 포인트 적립을 한다. 비슷한 패턴을 보이는 그 아이는 포인트 적립 상습범이었다. 손님이 적립하지 않은 포인트여도 내 것으로 취하면 그것은 바로 절도로 해당된다.

나는 간담이 서늘해졌다. 배신감에 치를 떨었다. 내 앞에서는 온갖 미사여구를 날리며 싹싹하게 굴더니 뒤에서는 이런 짓을 하는 아이였다니. 포인트가 많다고 자랑했을 때부터 뭔가 싸하더니...

나는 당장 매장에 나와 달라며 전화를 했다. 어리둥절한 모습으로 나온 아이에게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며 추궁하는 내 앞에서 그 아이는 시종일관 모르쇠로 일관했다.

너무 화가 나 미칠 것 같았다. 죄송하다는 말 한마디 없는 아이에게, 이런 사람을 뽑은 나 자신에게 미치도록 화가 났다. 섣불리 믿은 내 눈을 찌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생각 같아서는 경찰에 신고해 뻔뻔한 사고방식을 고쳐주고 싶었지만 차마 그렇게까지는 하고 싶지 않았고 빨리 이 문제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나는 이쯤에서 그만 우리 가게에서 나가달라는 말과 함께 마무리를 짓고 싶었다. 하지만 그 아이는 부당한 해고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너무 어이가 없어 말도 나오지 않았다. 미치고 팔딱 뛰어야 할 사람은 네가 아니고 바로 나야!!! 나는 속으로 울부짖을 수밖에 없었다. 도통 둘이서는 얘기가 되질 않아 끝내 남편이 나와서 그 아이를 긴 시간 동안 설득을 했다.

더 이상 그 아이를 보지 않아도 된다는 것에 안도하고 속이 시원했지만 사람에게 배신당한 마음은 무엇으로도 지울 수 없었고 바로 다음 날부터 아르바이트생을 다시 뽑아야 하는 사실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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