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날 작가 Nov 01. 2022

내 등을 지키는 사람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을 때

휴우. 한숨이 나온다. 그 나물에 그 밥 같은 글을 계속 쓰고 있자니 답답함이 밀려온다. 그럼에도 계속 써야 하는 건가. 나에겐 재능의 'ㅈ'이라도 존재하긴 하는 건가. 단어를 바꿔 써보기도 하고, 문단의 배치를 바꿔보기도 하고, 그러다가 틀렸구나 싶을 땐 참담한 심정으로 전체 삭제를 해버린다. 나는 지금 뭘 하고 있는 걸까.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왜 글을 쓰겠다고 노트북을 붙들고 있을까. 대답 없는 이에게 질문을 던지며 백스페이스 버튼을 다다다닥 누른다.

글 쓰는 것 자체가 즐거웠다. 머릿속에 뭉그러져있는 생각들이 활자로 정리되어 보이는 작업이 너무 신이 났다. 내가 쓴 글이 좋았고, 글을 쓰고 있는 내가 좋았다. 그랬던 적이 분명 있었다. 그런데 요즘은 전자도 후자도 다 별로다. 이렇게까지 별로일 수 있나 싶게 별로다. 내가 쓴 글도 별로고, 그런 글을 쓰고 있는 나도 별로다. 괜스레 의기소침해진다.


가슴이 꽉 막혀서 답답함이 밀려올 때 그를 찾는다. 운전하고 있는 그의 옆에서 속사포처럼 현재 상태를 쏟아낸다. "왜 그런 생각이 드는 건데?" 계속 이야기해보라는 신호가 왔다. 나는 내 삶에 대한 자부심이 컸다. 누군가는 꿈만 꾸던 삶을 실제로 살아냈고, 누군가는 주저하는 선택을 과감하게 실행했다. 책이 아닌 경험으로 얻은 삶의 지혜와 통찰을 글로 풀어낼 때의 기쁨은 말로 다 할 수 없었다. 그런데 거기까지였다.

"별 거 아니었더라고. 내가 특별하다고 생각하던 삶도 내 좁은 경험에 비해 특별했던 거더라고. 내가 하는 모든 이야기는 누군가 다 했던 이야기야. 내가 깨달은 것들은 이미 오래전에 많은 사람들이 깨달았던 거야. 그런 내가 무슨 글을 쓰든 그게 뭐 의미가 있겠어?"

긍정 빼면 시체였던 나는 어느새 회의주의자가 되어 있었다. 내가 하는 일에 지독한 회의감이 들었다. 재능 하나 없으면서 멋모르는 용기 하나로 이 계에 뛰어든 건 아닐까 주춤하게 되었다. 한참 내 이야기를 듣던 그는 뜻밖의 말을 했다.


"내가 별 거 아니었다고 생각하는 것부터 대단한 거 아닌가? 오만한 사람은 자기가 진리라고 믿어. 그럼 발전이 없지. 끊임없이 의심하고 반성하는 사람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거 아닐까? 책을 계속 읽다 보면 결국엔 그들이 다 같은 말을 하고 있다는 게 느껴져. 그 결론을 풀어내는 방식이 다를 뿐이지. 위대한 사람들도 결국 다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어. 진리는 그렇게 특별한 게 아니야. 다 알고 있는 내용이지. 그걸 어떻게 자기 삶과 연결해서 전달하느냐의 차이 아닐까? 자기 성찰이 대단하네."


그는 자존감이 바닥을 치고 있는 나에게 마치 문제집 뒤에 붙어있는 해설지 같은 대답을 내놓았다. 그럼 네가 뭐라도 되는 줄 알았냐, 그런 대답을 해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는 한 마디 덧붙였다. "당신이 한 단계 더 성장하려나 보다." 그의 말에 나는 아무 대답도 못했다. 다만 눈에 힘을 주고 한참을 그렇게 정면만 바라봤다.


별 일이 없을 땐 그가 나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종종 잊어버리곤 한다. 집에 있을 땐 아이들과 종일 어지르고, 옆에 없을 땐 카톡 메시지에 답장도 안 하는 사람이라. 눈에 보이면 얄밉고 안 보이면 서운한 사람이랄까. 그럼에도 이렇게 결정적인 순간에 그는 자신의 존재감을 키운다. 조금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때, 오히려 뒷걸음질치고 싶을 때. 더 이상 뒤로 밀려나지 않게 내 등을 단단히 지키는 사람이 있다. 그 묵직한 응원에 나는 오늘도 시답잖은 글을 쓴다. 성장하는 중이라는 달콤한 거짓말에 기대어 오늘도 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