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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날 작가 Jan 05. 2022

마음과 정성을 다한다의 의미

불안에서 멀어지는 일

여러분은 어떨 때 성취감을 느끼시나요?
뿌듯하거나 만족스러울 때는 언제인가요?

원하는 결과가 나왔을 때
다른 사람들의 평가가 좋을 때
내가 남보다 뛰어나다고 느낄 때

우리는 보통 이럴 때 자신감이 생깁니다.
스스로 대단히 만족스럽지요.

최선을 다했는데 결과가 좋지 않을 때
누군가에게 인정받지 못했을 때
나보다 더 뛰어난 이를 발견했을 때

이럴 때 사람은 보통 의기소침해집니다.
도전할 용기보다는 포기할 마음이 커집니다.
나는 역시 안돼,라는 생각이 올라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 후자의 경우에도
성취감이나 만족감을 얻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필연적으로 경쟁에 놓입니다. 세상엔 언제나 나보다 뛰어난 사람이 있고, 나보다 돈 잘 버는 사람이 있고, 나보다 가진 것이 많은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현실 앞에서 적당히 취하고 적당히 만족하는 사람도 있지만, 나보다 앞서가는 사람을 동력 삼아 그것을 넘기 위해 달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사람인가요?

저는 최근까지도 둘 중의 하나를 골라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안분지족에 가깝지, 란 마음이었죠. 그런데 정말 이상한 건 적당한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대화가 잘 안 통합니다. 어딘지 모르게 답답하고 해소가 되지 않습니다. 그런 경험 있으신가요? 여기에도 저기에도 속하지 못한 이방인이 된 것 같은 기분이요.

저는 이 답을 제 아이의 학교생활에서, 남한산 공동체의 일원으로 살면서 찾았습니다. 그리고 비로소 여러 가지 고민에서 자유로워졌어요.


저희 아이의 학교는 사교육을 하지 않습니다. 미디어도 사용하지 않고요. 물론 대원칙일 뿐 지키지 않는 가정도 많고, 이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 가정도 드물게는 있습니다.

제가 사교육을 지양한 이유는 엄마의 '불안'때문에 준비되지 않은 아이를 경쟁 속에 밀어 넣고 싶지 않았고, 아이가 진짜 좋아하고 잘 하는 것을 찾을 수 있는 시간을 주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이 마음에도 어쩌면 '특별한 욕심'이 숨어 있을지도 모릅니다. '아이가 공부 이외의 다른 무언가를 발견할 수도 있지 않을까', '숲에서 뛰어놀며 마음이 튼튼해져서 공부를 더 잘하게 되지 않을까' 기타 등등.

그런데 현실은 정반대입니다. 아무리 그렇게 마음을 다잡고 있다가도 수학 문제 하나를 못 풀어서 낑낑거리고 있는 아이를 보면 속에서 열불이 납니다.

'내가 아무리 공부를 안 시켰다지만 기본적인 사칙연산도 못해서 어떡해? 엄마가 사교육 시장에서 돈 좀 벌던 수학 선생님인데 왜왜 너는 산수도 못하니.'

"엄마, 나 방학 때 수학 공부를 꾸준히 해야겠어."
"갑자기 왜 그런 말을 해?"
"내가 글은 잘 쓰는데, 수학을 너무 못하니까 잘하고 싶어졌어."
"글 잘 쓰는 것도 대단한 거야."
"나도 알아. 그런데 수학은 내가 제일 못하는 것 같아서 그런 기분은 싫다고."

아이는 3학년 내내 수학에 대한 결핍을 느꼈습니다. 잘 풀리지 않는 문제 앞에서 한동안은 수학이 너무 싫다고 온갖 짜증을 내더니, 스스로 보충 수업을 하겠다고 손을 들고, 문제 푸는 걸 옆에서 봐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리고 드디어 방학, 아이는 지난 학기 배운 것을 제대로 다시 한번 풀어보겠다는 선언을 합니다. 예습도 아니고 복습을 이렇게 비장하게.

학년에 맞지 않는 계산법을 알려주지 않습니다. 온전히 교과서에서 배운 무식하기까지 해 보이는 방법을 가지고 스스로 원리를 이해할 때까지 기다려줍니다. 그 시간을 주려고 이곳에 왔구나, 엄마는 아이의 성장을 보며 서서히 알아갑니다.




얼마 전 졸업하는 6학년 아이들의 나 알 세 알(나를 알고 세상 알기) 발표회를 보다가 놀라움에 입이 벌어졌습니다. 나알세알은 아이들이 각자 잘하는 것, 못하는 것, 좋아하는 것, 이루고 싶은 것들을 이야기하고 스스로 배우고 싶은 것을 정해서 1년 동안 쌓은 결과물을 발표하는 자리입니다.

그중 한 여자아이는 '내가 못하는 것'에 친화력, 칭찬해 주기 같은 것이 있다고 말합니다. 친구 관계에 예민한 나이에 참 솔직합니다. 그런데 반 친구들은 아이의 그런 말에 웃음으로 화답합니다. 아이들은 꽤 객관적으로 자신을 파악하고, 강점과 약점을 스스럼없이 내놓습니다. 1년간 꾸준히 쌓은 자신의 결과물을 자랑스럽게 표현합니다.

여기에는 경쟁도 없고 비교도 없습니다. 그저 내가 선택한 것을 온전히 마음을 다해 해 본 경험과 그런 스스로에 대한 만족만 있습니다. 친구들은 아이의 노력에 열렬한 박수를 보냅니다. 그들도 같은 경험을 했으니까요. 너도 진짜 열심히 했구나, 나도 그랬어. 동지애 같은 거겠죠.

세상의 눈으로 봤을 땐 그저 그럴 수 있습니다. 뛰어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1등이라는 상장도 없습니다. 대신에 고민의 흔적과 땀 냄새가 가득합니다. 마음을 다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한 아이의 눈빛이 보입니다. 그것만으로 충분한 성취와 만족감을 느끼는 아이의 당당함이 있습니다.

내 아이를 흔들림 없이 키울 수 있는 이유는 저 당당한 눈빛을 한 아이가 살아낼 미래가 보였기 때문입니다.

덕분에 저는 아이를 바라보는 마음이 이전보다 유연해졌고, 제 책에서 썼던 다짐과도 같았던 '보여주고 기다리기'의 마음을 삶에서 실천하게 되었고, 그 마음은 저 스스로도 단단하게 만들었습니다.

아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저를 바라보는 시선이 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할 수 있는 만큼 마음을 다해 정성을 다해 만들어 내는 과정. 저는 앞으로도 그렇게 살려고 합니다. 또렷하고 맑은 눈빛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어른이 되고 싶습니다.




최선을 다했는데 결과가 좋지 않을 때
누군가에게 인정받지 못했을 때
나보다 더 뛰어난 이를 발견했을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용기 내고, 도전하고, 마음을 다하는 사람.
스스로의 성장에 만족하고 기뻐하는 사람.

그런 삶도 꽤 멋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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