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젊은 미혼 크리에이터들의 채널을 즐겨봤다. 드로우앤드류, 정혜윤, 이연, 김짠부 등 자신의 반짝임을 온몸으로 표현하며 살고 있는 이들의 영상을 꼬박꼬박 시청했다. 굳이 '젊은', '미혼'을 콕 찍어서 말하는 것이 너무 꼰대 인증 같다. 내가 구독하는 채널의 공통점을 나중에 알았기 때문에 굳이 언급했다. 단군 이래 가장 돈 벌기 쉬운 세상이라는 신사임당의 이야기는 듣기 싫었고, 좋아하는 일을 계속했더니 돈이 벌렸다고 하는 드로우앤드류의 이야기가 좋았다. '그놈이 그놈이야.'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온라인 세계에서 나의 스토리를 팔고, 콘텐츠를 만드는 나에게 그 둘은 다르다. 완전히 다르다. 돈을 벌게 해 주겠다고 사람의 마음을 현혹하는 사람과 좋아하는 것을 했더니 사람들이 돈을 벌어주는 사람. 굳이 구분하자면 이런 차이일까.
한동안 나는 눈먼 돈에 몹시 정이 떨어졌다. 별거 아닌 걸 주면서 엄청 좋은 것을 주는 것처럼 과대 포장을 하고, 뒷일은 책임지지도 못할 말을 잔뜩 해놓고 돈을 낸 나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수법에 넌덜머리가 났달까. 그래서 마케팅, 홍보라는 말에 잔뜩 날이 섰다.
한 발 앞서나간 내가 아무것도 모르는 너의 등을 칠 테니, 너는 너의 뒤를 따라오는 누군가의 등을 치렴. 온라인 시장은 무궁무진하게 성장할 거야. 그러니 걱정 마. 자본주의 세상은 원래 그런 거야. 수요와 공급이 명확하지. 수요가 있으니 가격이 올라가는 건 당연한 이치잖아. 안 그래?
스스로에게 계속 주입했다. 어느 정도 성과가 났으니 나도 본격적으로 수입을 올리는 데 열을 올려보자! 그런데 그런 사람이 된다고 생각하니 다 싫어졌다.
나는 그저 나의 이야기를 SNS에 남겼고 운이 좋게 책이 되었다. 내 책에 공감하는 사람들과 소통하며 나처럼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해보니까 별 거 아니더라. 너도 해 볼래?'라고 말했다. 만약 그때의 나에게 내가 돈 버는 방법을 알려줄 테니 이 정도는 지불해,라고 말했다면 나는 아마 시작도 못했을 거다. 세 아이를 키우는 주부는 자신에게 쓸 수 있는 돈이 별로 없었으니까. 설사 그런 돈을 마련해 지불했다고 해도 그 돈이 얼마나 어렵게 나온 지 알기 때문에 마지막까지 책임져야 한다는 무게감에 짓눌려 도망갔을지도. 각자 뻔한 사정을 서로 알면서 이게 자본주의야!라고 냉정한 얼굴을 할 자신이 없었다.
이런 이유로 나는 돈이 아닌 '꿈'을 이야기하는 이들에게 마음이 동했다. 어느 순간 돈과 관련된 채널의 구독은 다 끊고 남은 것들을 보니 좋아하는 일을 즐겁게 해내고 있는 이들의 채널만 남았더라. 그리고 그들이 좋아하는 일로 계속 자신의 영역을 넓혀가는 모습을 지켜봤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나도 저렇게 살고 싶은 거야.' 발전하고 성장한 만큼의 대가를 갖고 싶었다. 여기에 문제가 있다면 당연히 시간이다. 실력이 쌓일 때까지 돈이 벌리지 않는 시간을 어떻게 버틸 수 있을까. 그 시간이 짧을 수도 길 수도 있는데 나는 무슨 수로 그 가혹한 시간을 버틸 수 있지? 그리고 알았다. 내가 굳이 젊은 '미혼' 크리에이터 채널에 열광한 이유를.
내 또래의 사람들은 꿈만 이야기할 수 없다. 그러기엔 내가 거둬 먹여야 할 아이가 있고, 보살펴야 할 부모가 있으니까. 당장 먹고살 것이 걱정인데 빵구난 카드값이나 메우며 살 수는 없지 않나. 그들이 대단치 않다는 게 아니라 그들은 혼자여서 자유로울 수 있구나. 내가 아무리 그들이 되고 싶다고 해도 우리는 같을 수 없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연 작가의 <매일을 헤엄치는 법>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그게 20대의 특권이라면 특권이다. 지질한 것이 용서된다. 지질함에 세금을 매긴다면 20대는 면세인 셈이다. 이때 돈보다 소중한 경험과 용기를 많이 얻었다. 그래서 그 당시의 일기에 자꾸 이런 말을 하는 거다. "돈이 전부처럼 보이지만, 돈이 다가 아니야." 그래서 돈 버는 일 말고도 다른 도전을 할 수 있었고 끝내 지금의 내가 된 게 아닐까.
그렇다. 지질해도 되는 20대의 일을 40대에 하려니 이렇다. 나는 돈이 전부가 아니야!라고 할 나이가 아니다. 내가 이런 글을 쓸 때마다 나타나서 일 좀 하라고 악플을 다는 그녀의 댓글만 봐도 그렇다. 이렇게 살면 무능하고 무책임하고 무기력한 사람이 되는 나이다. 그래서 꿈을 포기할까. 나는 뒤늦게 찾은 읽고, 쓰고, 노래하는 즐거움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고도 찾지 못한 즐거움을 이제서 찾았는데 그걸 어떻게 놓을 수 있을까.
더욱 자본주의에 대해 공부하는 이유다. 지금 당장 돈을 벌 능력은 없지만 좋아하는 일을 놓치지 않고 계속해나가다 보면 스스로에게도 당당한 돈을 벌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그때까지의 시간을 벌기 위해 자본주의를 공부한다. 돈이 전부가 아니지만 돈이 대단하다는 것은 알고 있으니까.내 비록 아직 돈을 벌 노동력은 없지만 자본을 굴리는 사람은 되겠다고.
이렇게 큰소리쳐놓고 새해 벽두부터 자본주의 세상에 탈탈 털렸다. 그 얘긴 다음 글에 하는 걸로. (눈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