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발적 아웃사이더는 어떤 사회나 집단에서 스스로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 한다. 사회 안의 사람들이 본인을 어떻게 생각하든지 말든지 관계없이 스스로 그들로부터 한걸음 떨어져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나는 줄곧 나를 자발적 아웃사이더라고 소개해왔다. 누구로부터 떨어져 있는지 모르겠지만, 어떤 독자성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정말 그런가?라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나는 정말 아웃사이더를 자처하고 있는가? 이 글은 아침 필사를 하다가 생겨난 의문들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쓰기 시작했다.
사랑받으려고 하지 말라. 자발적인 추방자가 돼라. 너의 인생의 모순들을 숄처럼 몸에 두르라. 날아오르는 돌들을 막고 너를 따뜻하게 하기 위해.
이 시는 흑인 여성 작가 앨리스 워커가 쓴 <사랑받으려고 하지 말라>에서 나온 구절이다. 끝까지 필사를 하고 연필을 떨궜다. 너는 정말 너의 여행을 하고 있니? 다발에 묶이지 않고 한 송이 꽃으로 고고하게 살고 있니? 그런 삶을 지향하고 있니?라는 질문을 하게 되었다. 질문에 답할 수 없었다. 자발적 아웃사이더를 지향하면서도 초라해지고 싶지 않은 마음이 여전히 내 안에 부유하고 있다.
누군가는 나에게 "소프트 파워"를 보여줬다고 했다. 부드럽게 압도하는 힘이라고도 말했다. 그렇다. 나는 나를 단단하게 지키면서 유연하게 상황을 헤쳐나가기 위해 애를 쓰며 산다. 누구와도 큰 트러블 없이 상황을 해결하고 싶었다. 그런데 '유연하다'의 의미는 무엇일까. 다른 생각을 갖고 있지만, 추방되고 싶지 않아서 발 하나를 걸치고 눈치를 보고 있는 형편은 아닐까? 나는 요즘 나의 태도에 대해 자꾸만 의문이 든다. 누구에게도 미움받고 싶지 않아 욕심을 부리고 있는 것 아닐까? 정말 자발적 아웃사이더가 될 용기는 있는가?
이 시에 대해 류시화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사랑을 구걸하지 않으려면 고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군중의 물결에 휩쓸리지 않고 강둑에서 자신의 방향을 정할 수 있다. 사람들이 당신을 곁눈질로 쳐다보면 당신도 곁눈질로 보며 웃을 수 있어야 한다. (중략) 남들과 다르다는 것은 신이 준 선물이다.
사랑을 구걸하진 않지만, 미움받고 싶지도 않다. 남들과 다른 길을 가고자 하면서도 여전히 중도를 찾으려고 한다. 그래, 나에게는 아직 용기가 부족하다. 그걸 인정해야 한다. 그럼에도 나는 매일 조금씩 용기를 낸다. 호흡이 불안정하고 두 다리가 덜덜 떨려도 뒤꿈치에 힘을 딱 주고 내가 살고자 하는 방향으로 몸을 비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