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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날 작가 Feb 26. 2023

나는 작가라는 타이틀이 필요하지 않다.

마흔에도 진로 고민

반년의 시간 동안 가만히 멈추어 있었다. 멈추어 있었다기보다는 주춤주춤 뒤로 물러서고 있었다.


왜 글을 쓰는가.

나는 뛰어난 글쟁이인가.

그것도 아닌데 왜 종이 낭비를 하려 하는가.


책은 나와 사회를 연결시켜 준 끈이었다. 새로운 경력의 시작이었고, 다시 수익 활동을 할 수 있는 기회였다. 그런데 호기롭게 시작한 처음과 달리 점점 두려워졌다.

평생 글 쓰는 사람으로 살고 싶은가?
네, 죽을 때까지 글 쓰고 싶어요.

업으로 삼고 싶은 일인가?
음...

엄청난 문장을 쓸 수 있는 재능이 있거나
기존의 통념과 다른 생각을 전할 수 있거나
사소한 것에서도 깊은 통찰을  수 있거나
타고난 이야기 꾼이거나.

자신 있게 그런 사람이라고 답할 수 없었다. 내 삶의 경험을 글로 정리할 수는 있지만 그게 다였다. 나는 그 이상의 재능이 있는 것 같지 않았다. 그래도 이 일을 지속해도 될까? 마음이 무거워졌다.



지난 8월 이후 이 고민 앞에서 멈출 수밖에 없었다. 자꾸 결과물을 내려고 하던 생각을 잠시 접어두고 한없이 게으른 시간을 보냈다. 생산적이기만 했던 나를 반성했고, 비생산적인 시간의 의미를 충분히 만끽했다.

되돌이표처럼, '이 과정을 책으로 써야겠다. "게으름"의 유용함에 대해 말해야겠다.'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기획서도 만들고 목차도 짰다. 그런데, 완전히 멈추고 말았다. 한없이 게으른 시간을 보낸 후, 에너지가 차올라 생산물을 내려고 하는 이 행위 자체가 내가 쓰고자 하는 내용가 위배되는 것 아닌가? 혼란스러워졌다. 그럼 결론은 게으른 시간 이후 다시 차오르는 에너지에 대해서까지 써봐야겠다고 생각에 생각을 정리하는 동안 이전에 떠올렸던 주제와 미묘한 차이가 생기기 시작했다.


'경험'이 '통찰'이 되고 한 권의 '책'이 되기까지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림을 간과했다. 인간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존재라, 어제와 오늘의 생각이 달라지고 이랬다 저랬다 모순적인 감정이 생기고 그런 일련의 과정을 반복한 후에야 어떤 깨달음에 이르게 되는데 나는 책을 써야 한다는 강박에 아직 여물지 않은 생각을 글로 묶어고 있었다. 그러나 온전히 나의 것이 아닌 글을 성과랍시고 내뱉고 싶지도 않았다. 그건 정말 종이 낭비가 될 테니까.


그럼 난 이제 뭘 해야 하지?

사방이 꽉 막힌 것 같은 막막함... 그런 기분이었다. 당연히 무엇도 할 수 없었다. 마흔에 겨우 찾은 정체성이 다시 흔들리고 있었다. 끊임없이 질문하고 질문하다가 하나의 결론에 도달했다.




나는 작가라는 타이틀이 필요하지 않다.


애초부터 작가가 되겠다고 생각했던 적도 없다. 그저 내 시작의 포문이 글이었을 뿐. 내가 선택하고 행동하고 깨달은 것들을 정리한 것이 책이 되었을 뿐. 나는 하나의 직업군에 날 가둘 필요가 없었는데 어느 순간 스스로 작가라는 타이틀 안에 갇혀버렸다. 모든 활동을 글 쓰기로 제한시켜버렸던 것.

지금처럼 삶을 글로 쓰는 사람이겠으나, 억지로 글을 쥐어짜지는 않겠다고. 경험치가 쌓이면 어느 순간 포텐이 터지는 날이 반드시 올 테니 결과물에 연연하기보다는 삶을 살겠다고.


결국 나에게 가장 중요한 건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이냐가 아니라 어떤 가치를 가지고 사느냐였다. 내가 그런 사람이라는 걸 알게 한 것 또한 글쓰기였다. 나의 북극성이 글쓰기는 아니었음을. 잠시 혼동했을 뿐이라는 것을 알고 나니 후련해졌다.


요즘 나는 새로운 일을 준비하고 있다. 내가 옳다고 믿는 가치를 글이 아닌 행동으로, 사람들에게 직접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그래서 그 어느 때보다도 싱그럽다. 가만히 책상에 앉아서 글을 쓰기보다 두 발로 열심히 뛰고 있다. 이 과정을 언젠가 글로 쓸 수 있을 거란 기대와 믿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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