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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날 작가 Dec 27. 2021

나는 이제 아줌마라고 불려도 움찔하지 않겠다.

마흔 앞에서.

항상 긴 머리의 웨이브를 유지한다.

찰랑거리는 들꽃 패턴의 원피스를 좋아한다.

아이처럼 티 없는 목소리를 갖고 있다.

호탕한 웃음보다는 배시시 미소 짓는다.


이런 소녀스러운 취향을 갖고 있는 여자.

아줌마처럼 보이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하는 여자.

때때로 세 아이에게 괴기스러운 소리를 지르고, "아줌마!"하고 부르면 나일리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뒤를 돌아보는, 그럼에도 아줌마임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 입술을 앙 다물고 버티는 여자. 곧 마흔이 되는 나다.





한 해를 마무리하며 며칠 빈둥거리는 시간을 보냈다. 연말은 그래도 되는 때니까. 끝과 시작의 경계는 돌아보기에도 계획을 세우기에도 적절한 시간이니까. 빡빡하게 잡혀있던 일정은 예상치 못하게 찾아온 자가격리로 전부 취소되고 그야말로 나와 아이를 돌보며 시간이 흘렀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2021년이 한 주밖에 남지 않았다. 이제 일주일 뒤면 새로운 해가 시작되는구나, 생각하다가 잊고 있었던 아니 잊고 싶었던 '내 나이'가 떠올랐다. 나는 이제 마흔이 된다. 마흔. 세상 일에 정신을 빼앗겨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는 나이, 불혹. 세상 일에 정신을 빼앗겨 흔들리지 않는 사람은 아직 못되었지만, 내 나이 마흔에 이전과 달라지는 것이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 한참 고민을 하다가 하나가 떠올랐다. 


'나는 이제 아줌마라라고 불려도 움찔하지 않겠다.'


내가 마흔이 된다는 것은 비로소 내가 아줌마라는 것을 머리로,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는 말이다. 아줌마라는 단어가 갖고 있는 촌스러움은 둘째 치고라도 그 단어에는 여러 가지 부정적인 의미들이 포함되어있다. 사람에 따라 비하와 혐오 어디쯤의 편견을 가진 단어이고, 그게 아니더라도 사회적으로 별 영향력 없는, 얕잡아 볼 수 있는 대상을 통칭하는 호칭으로 불린다. 그렇기에 더더욱 아줌마라는 호칭으로 불리는 게 싫었다. 어떤 의도 없이 부르는 아이들의 아줌마 소리도 싫었다. 그런데 이제 그 단어를 호기롭게 혹은 유쾌하게 받아들이려고 한다. 내가 모름을, 많이 뒤처졌음을 쿨하게 인정하려고 한다.


지금 글을 쓰고 있는 '팀 라이트'의 첫 줌 미팅에서도 나는 그런 마음이었다. 사람들이 분명 우리나라 말을 하고 있는 것 같은데 나는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다. 네이버를 띄어놓고 알 수 없는 영어 단어들을 하나씩 검색하며 듣다가 나중엔 포기했다. 그러고 나서 나에게 마이크가 왔을 때 이야기했다.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천천히 알아가겠습니다." 그때 이미 나는 '아줌마'의 마음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실무에서 멀어진 지 10년, 그들과 내가 똑같기를 바라는 것 자체가 욕심이었다. 그냥 나는 내 경험과 감성으로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겠다는 마음이었고, 그렇게 이 활동을 이어간 지 일 년이 되어간다.



아는 척을 할 필요가 전혀 없다. '글쎄 아줌마라니까. 몰라도 당연하겠지?' 머릿속에서 전 영역 패스를 꺼내 드는 세상 아줌마의 이미지와는 반대로 여러 가지 일을 거침없이 해보려고 한다. 세상이 "아줌마니까" 하고 얕보고 있는 동안이 아주 절호의 기회다. (소년과 노인 사이에도 사람이 있다, 제인 수)



이 책을 읽다가 무릎을 쳤다. 그래, 바로 이 마음이다. 세상이 아줌마라고 얕잡아보는 동안 나는 그들이 말하는 '무대뽀 정신'으로 거침없이 세상에서 놀아보겠다. 내 나이가 어때서~를 흥겹게 부르면서 말이다. 내가 정의하는 마흔의 아줌마는 이렇다. 발을 동동 띄우고 이상만 바라보는 것도 아니고, 고개를 내려 땅만 쳐다보는 것도 아닌 발을 땅에 붙이고 하늘을 바라볼 수 있는 나이. 한 번씩 힘차게 땅을 박차고 점핑해서 어디까지 닿을 수 있나 시도할 수 있는 나이. 현실과 꿈 사이, 팽팽한 줄다리기에서 비로소 승리할 수 있는 나이라고 말이다.


조금 우습게 보이는 것쯤은 괜찮다. 그 정도는 내가 경험하고 누릴 수 있는 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세상에 무서울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그것 하나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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