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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날 작가 Sep 03. 2020

제 어머니는 어디 갔나요?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던데.


저의 10대는 참 평탄했습니다. 


피아노를 배우다 공부를 하기 시작한 중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한 번도 성적이 떨어진 적 없이 완만한 상승을 한 후, 대학교에 입학했어요. 학교가 마음에 들지 않아 1학기에 자퇴를 하고 다시 수능을 볼 때도 부모님께 말도 없이 혼자 결정할 만큼 자신감이 넘쳤습니다.

그리고 수능을 보기 직전, "엄마, 사실 내가 자퇴를 했어."라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제가 원하는 학교로 갈아탔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저는 제 인생에 '실패'라는 단어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깜짝 놀랐습니다. 대학에 가니 좋은 집안에 공부도 잘하고 얼굴까지도 예쁜 엄친딸들이 왜 이렇게 많은가요? 유학파도 많고, 국제 학교 출신도 많고, 영어까지 유창하게 하는 아이들을 보며 기가 눌렸다고 해야 할까요? 그 아이들과 도저히 경쟁할 자신이 없어서 나도 모르게 한 발 뒤로 물러났습니다. '대학은 의미가 없어' 이런 어쭙잖은 소리를 하면서요. 그러다 학고를 2번 먹었습니다. (헉)


한참 친구들이 취업 준비를 하는데 저는 이미 망해버린 대학 성적으로 뭣도 할 수 없었어요. 그러면서 세상을 원망했지요. 저 아이들이 도서관에서 공부할 때 나는 과외하느라 공부할 시간도 없었다고. 정신을 차렸어야 했는데, 땅굴을 파고 말았습니다. 도피 유학이라도 가고 싶었지만 그럴 수 있는 형편도 안되었지요.


'아, 그냥 공무원 시험이나 준비해야겠다. (난 시험에 강하니까...)' 이런 자신만만함을 갖고 갑작스럽게 공무원 시험을 준비합니다. 동기가 없으니 의지도 없지요. 대충대충 공부하는 척만 하다가 두 번의 시험을 문턱에서 넘어지고 맙니다. 엄마는 0.5점, 1점 차이로 떨어지는 저를 보며 한 번만 더 해보자고 얘기했지만 '공무원은 내 적성에 안 맞을 것 같아, 취업을 해야겠어."라는 핑계를 대며 1년 만에 고시에서 발을 빼버렸어요.


그러면서도 합리화의 귀재인 저는, 저를 실패한 사람으로 정의하지 않았어요. 적성이 아니었다는 그럴싸한 변명 뒤로 숨어버렸습니다.


그렇게 무기력하게 실패한 저의 20대.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하는데, 제 어머니는 어디 갔나요?


시행착오라는 말의 의미는 이렇습니다.

학습 양식의 한 가지로,  시험과 실패를 거듭하는 가운데 학습이 이루어지는 일.

영어로는 trial and error


실패가 성공의 어머니가 되는 가장 중요한 핵심은 자기반성이에요. 그리고 반복적으로 시도하는 거지요.


저의 20대는 치고 빠지기의 반복이었습니다. 한 번 실패에 포기했고, 다시 시도하지 않았어요. 그 안에 나를 되돌아보는 순간은 없었어요. 다만, 변명만 있었을 뿐이지요.






2019년 여름, 작가가 되어 보겠다고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블로그 글도 제대로 못쓰는 사람이 글을 쓰겠다고 달려들었을 때, 뭘 알았을까요. 그냥 내키는 대로 썼습니다. 새벽 기상과 함께 시작한 글쓰기, 그런데 어느 순간 글이 막혔고 답답함이 밀려왔어요. 투고를 해봤지만, 돌아오는 대답조차 없었어요. 이유가 뭘까.


그때 브런치라는 플랫폼을 알게 되었어요. 당선이 되면 출판을 해준다는 광고를 보고 무작정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공고를 늦게 봐서 시간이 촉박했던지라 정말 미친 듯이 글을 썼어요. 12개의 글을 쓴 후 그 해 겨울까지 기다림의 시간을 가졌지요. 물론 당선이 되지 않았습니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할까, 굉장히 고민을 했지요. 뭐든 스스로 하기를 원하는 제 자아와 그간의 힘듦을 토로할 곳이 필요하다는 제 마음이 충돌했어요. 결국 책 쓰는 법을 가르쳐 주는 곳을 찾았지요. 이제야 목차 짜는 법을 배우고 열심히 머리를 굴리며 목차를 짜 봅니다. 이제 35 꼭지를 쭉 써 내려가기만 하면 되지요. 두 달의 시간, 매일 새벽 일어나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투고의 과정도 기다림의 과정도 틈틈이 하는 퇴고의 과정도 참 길고 힘들었어요.


그 와중에 애정 어린 피드백도 받고 신랄한 피드백도 받았어요. 완전히 마음이 무너져서 일어나지 못할 순간도 있었어요. 그냥 이거 버릴까? 싶어서 삭제를 해버린 적도 있어요. (다행히 메일에 남아있었어요. 휴.)

다시 새로운 주제로 써보자고 목차를 다시 짜고 글을 쓰기도 했어요. 그 글을 쓰면서 원래 내가 썼던 글의 문제점이 보여서 다시 쓰고 또 쓰고를 반복했어요. 퇴고가 아닌, 거의 새로운 글쓰기 수준이었어요.


코로나 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중에 저의 길고 지루한 시간들이 지나갔어요.


저는 끊임없이 실패했고, 계속적인 시행착오를 반복했지만 포기하지 않았어요.

자기 합리화에 빠지지 않았고, 비겁하게 발을 빼지 않았고, 두려움과 정면으로 마주했어요.

20대의 무기력한 실패를 반복하지 않았어요.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정말 내 이야기를 쓰고 싶었거든요. 자존심이 상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고, 더러워서 때려치우고 싶단 생각도 많았지만 글을 쓰고 있는 이 시간만큼은 너무 행복했어요. 이 기쁨을 놓치고 싶지 않았어요.


나의 과거와 화해를 할 수 있었던 것도, 내 스스로를 위로할 수 있었던 것도, 내 진짜 욕망을 알게 된 것도 글쓰기가 아니었다면 몰랐을 테니까요. 계속 쓰는 삶을 위해 견뎌야 할 과정이라면 지금은 힘들어도 이다음은 좀 더 쉬울 테니까, 그 마음으로 버텼어요.


그 길고 지루한 시간의 끝에 이제 제 책이 나와요. 신기한 건 그 간의 쌓였던 시간들이 저에게 보상이라도 하듯 얼마 전 EBS 나도 작가다 공모전에서도 당선이 됐지요.

<실패>가 아닌 <시작>이라는 주제로 말이에요.


저는 앞으로도 계속 실패를 하게 될 거예요. 끊임없이 넘어지고 까질 거예요.

저는 그만큼 계속 도전할 테니까요.


성공의 어머니가 될 나의 실패에게

오늘도 응원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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