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날 작가 May 01. 2020

타인이 만들어 놓은 프레임을 깨자

너는 너고, 나는 나야


세 아이의 엄마이자 전업주부인 나,

오랜만에 만난 지인들은 빼놓지 않고 묻는다.

언제까지 집에서 놀 거야?

야, 내가 집에서 노냐?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삼키고 웃어버린다.

그러게 말이야. 하고 싶은 것들 준비하고 있어.

하고 싶은 게 뭔데?

글도 쓰고 싶고. 기타도 배우고 있고.

야! 돈을 벌어야지. 얘가 팔자 좋은 소리 하네.


마치 꿈을 꾸는 것이 무슨 큰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세상 물정 모르는 전업맘의 철부지 같은 이야기처럼

그렇게 매도당할 때마다 사실 좀 속상하다.

굉장히 마음이 상할 때도 있지만 이젠 그러려니 하게 되었다면, 뭐 그나마 다행이랄까?




는 사람들이 씌어준 프레임에 갇혀서 참 많이 애를 쓰며 살아왔다.

'외동딸은 이기적이다.'

혼자 자라서 이기적이라는 말이 왜 그렇게 듣기가 싫은지. 내가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면서 그저 외동딸이라고 하면, 아 너는 이기적이구나를 깔고 들어오는 사람들 때문에 너무 화가 났다.

그래서 나는 내 의견을 제대로 말해 본 적이 없다.
남들에게 화를 낸 적은 더더욱 없다.
'그럼 그렇지.'라는 표정을 보일까 봐 두려웠다.
너 외동이었어? 진짜?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성공했다고 생각했다.

대학교에 입학한 뒤론 학교에 쏟아지는 맹비난에 정신을 못 차렸다.
너네들은 명품에 사치에 어쩌고 저쩌고.
아니 내가 뭘 어쨌다고 나한테 그러는 거야?
나는 생활비도 내가 벌어서 쓰고 다닌다고. 반박하다가 어느 순간 입을 꾹 다물었다.
한 번도 내가 다니는 학교를 이야기한 적이 없었다.

자랑이 아닌 수치심 가득한 20대를 보냈다.

아이를 낳고 나선 아줌마라는 얘기를 듣지 않기 위해 애를 썼다.
아이가 하나일 때, 둘이 되었을 때까지도 항상 생각했던 것은 '아줌마처럼 되지 말자.'였다.
자기 관리 못하고 개념 없게 행동하는 아줌마가 되지 않기 위해서.
친구들이 아기 낳았는데도 똑같아~라는 말을 하면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곤 했다.

사람들이 아, 너는 다르구나. 했을 때.
그래서 너는 행복했니?라고 묻는다면,
그렇게 사람들의 편견에서 벗어나기 위해 내가 가진 것들을 부정하며 사는 것이 좋았어?라고 묻는다면,

"불행했어. 어디에도 진짜 내가 없어서."

라고 답할 것이다.



어제 두 딸이 그림을 그리는데 동생이 언니의 그림 그리는 방식이 틀렸다고 지적하니,
너는 너고 나는 나야!!

언니가 앙칼지게 대답한다.


옳거니.
너는 너고 나는 나다.

사람들이 나에게 어떤 잣대를 들이대도 나는 그들과 상관없이 나의 삶을 살면 되는 거였다.

어떤 편견을 가지고 나를 보든지 말든지,

내가 그런 사람이 아니면 되는 거였다.


내가 전업주부라 핑핑 놀고 있다고 여겨도

내가 아니면 그뿐이었는데

뭘 분노하고 설득하려 했을까.


타인이 만들어 놓은 프레임 속에 갇혀서 그걸 애써

부정하며 사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이제 안다.


나는 그냥 나일뿐.

매거진의 이전글 제 어머니는 어디 갔나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