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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날 작가 Mar 01. 2021

엄마가 자유를 찾았을 때 생기는 일

나의 행복이 곧 너의 행복이야.


결혼으로 자유를 꿈꿨던 적이 있었다. 외동딸로 부모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살았던 나는 한 번이라도 좋으니 제발 내 마음대로 살아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끊임없이 했더랬다. 지금 남편을 만난 순간, 이 남자다라는 예감이 왔고 결혼을 하게 되었을 때 드디어, 꿈만 꾸던 자유를 누릴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현실은 늘 예기치 못한 사건과 함께한다. 결혼과 동시에 임신을 했을 때, 그것도 모자라 아이 셋을 주르륵 낳았을 때, , 이제 내 인생에 자유란 단어는 없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단 하루만이라도 온전히 혼자 있고 싶다.” 푸념처럼 하는 내 말에 잠시 아이를 돌봐주러 왔던 엄마는 기다렸다는 듯이 “누가 그렇게 애를 줄줄이 낳으랬니?” 톡 쏘아붙인다. 그 시절에도 아이 하나만 낳아서 키운 신여성 엄마 앞에서, 셋째를 낳겠다고 했을 때 기함한 엄마에게 내가 무슨 소리를 한 거야.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었어야 했는데, 엄한 데서 엉덩이를 붙이려다가 생채기만 났다.


과연 엄마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에게 자유가 찾아오는 시간이 있긴 한 걸까. 아이가 나를 찾지 않는 시기가 오면, 그러니까 마흔 중반 이후에. 누군가에겐 쉰이 가까운 나이에. 갱년기와 함께 찾아오려나. 맥없이 그런 생각을 했던 적이 있었다. 인생의 3막 즈음, 우리는 비로소 자유를 찾을 수 있을까.


내 오랜 버킷리스트에는 세계일주가 있다. 해외여행이라고는 신혼여행 때 다녀온 하와이가 전부지만 그래도 이 꿈을 놓지 않았던 이유는, 나에게 세계일주란, 미지의 세계로의 탐험이자 자유로운 삶의 결정체이기 때문이다. 발길 닿는 대로 다니다가 마음에 드는 나라 혹은 마을에서 몇 날 며칠을 보내고, 언제든 악기를 꺼내서 연주하고 노래를 부르며 다니는 여행. 그런데 셋째가 생기고 내 현실을 받아들이면서, 사실상 세계일주는 그저 막연한 꿈일 뿐 진짜 이루고 싶은 꿈은 아니게 되었다. 아이 셋을 데리고 무슨 자유로운 여행이 가능하겠나. 애 뒤치다꺼리만 하다가 오겠지, 휴양지나 가서 바닷바람이나 쐬고 오면 모를까. 그게 내 솔직한 마음이었다.


이런 내 생각이 완벽히 틀렸음을 알게 된 것은 세 아이와 함께 떠났던 제주 여행 덕분이었다. 아주 즉흥적으로 숙소 하나만 정해서 갔던 여행에서 우리는 올레길을 걸었고, 버스를 타고 시내를 구경했고, 시장을 돌아다니며 맛있는 걸 먹었고, 그렇게 숙소로 돌아왔다. 세상에, 아이 셋과도 이렇게 자유로울 수 있구나. 아이들은 제법 컸고, 나는 아이들을 꽤 신뢰하는 엄마라는 것. 그리고 믿음직한 남편이 함께 한다는 것. 그것이 나를 자유롭게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제주의 바닷바람을 맞으며 때로는 귤나무 밭은 지나며, 낮은 돌담 옆을 걸으며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무던히 걷던 시간을 잊을 수가 없다.

인간은 스스로 자유를 선택할 수 있다는 점을 잊어버렸다. 거창하게 말하면 인간의 자유의지이다. 자유는 환경이 주어졌을 때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자유 하고자 할 때 자유로울 수 있다는 깨달음이었다. 내 삶은 이전과 달라진 것이 없고, 세 아이는 여전히 어리지만 내가 지금 이 순간 자유를 선택함으로써 나는 자유로워졌다.

더 이상 아이들은 나의 자유를 가로막는 존재가 아니었고, 우리는 여행을 함께 즐길 수 있는 동반자가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좋은 것을 함께 보고 즐기고 나눌 수 있는 친구가 될 수 있음이었다. 그 날 이후로 나는 자유로운 엄마가 되기를 선택했다.


아이를 핑계로 하고 싶은 것들을 멈추는 엄마이고 싶지 않았다. 물론 내가 자유를 선택함으로써 가족들은 한동안 불편해졌을 것이다. 남편은 아내의 게으름이 불쾌했을 것이고, 아이들은 엄마의 거리두기가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감정의 혼란은 변화를 앞두고 누구나 겪어야 하는 일 아닐까. 결과적으로 내가 자유를 선택함으로써 우리 가족은 모두 자유로워졌다. 더 이상 나는 남편에게 언제 집에 오냐는 전화를 하지 않고, 아이 앞에서 하루의 스케줄을 읊지 않는다. 내가 자유를 선택한 만큼 그들의 자유도 인정하기 때문이다. 엄마로서 아내로서의 근무 태만이 아니라 모두의 행복을 위한 선택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저 오롯이 ‘나’로 존재하고 싶어서 자유를 갈망했던 나는 가족 구성원 모두가 그 자체로 존재하기 위해서 자유를 포기하지 않기로 했다.


그런 이유로 나는 엄마들에게 적극적으로 자유하기를 권한다. 아이로부터, 남편으로부터 한 걸음 떨어져서 자신의 삶을 살라고. 그래도 괜찮다고. 나를 가두는 건 그냥 나 자신일 뿐이라고, 당신이 자유로워져야 모두가 행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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