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았던 하수처리장 작은 집은 사실 아주 열악한 곳이었다. 공장과 대형 요양병원, 그리고 장례식장까지. 우리가 이사 한 이후 그 집에 아이가 없는 부부가 들어갔는데, 아내가 잘 때마다 귀신이 보인다며 못살겠다고 친정으로 갔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비로소 남편이 말했다. "네가 대단하긴 대단한가 보다. 그런 데서 그리 좋다고 살았으니."
나는 그곳에서의 1년이 나에게 주는 신의 목소리였다고 생각한다. 어떤 삶을 살 것이냐는 그의 물음이었다고 생각한다.
그 집은 많이 좁아서 우리가 가진 짐을 다 가지고 들어갈 수 없었다. 나는 반쯤은 중고로 팔고 반쯤은 엄마 집으로 보냈다. 그러면서 깨달았다.
'아, 이런 것들이 사는 데 꼭 필요한 물건이 아니었구나.'
예를 들면, 텔레비전과 거실장 그리고 소파는 내가 생각하는 거실의 붙박이 가구였다. 그것이 없는 거실을 상상해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이곳에는 그럴만한 공간이 없었다. 소파와 텔레비전 사이의 공간이 나오질 않았다. 어쩔 수 없이 그것들을 엄마 집으로 보내고 텔레비전은 벽에 붙였는데, 갑자기 뭔가 치밀어올랐다.
"에잇. 그래 소파 하나 놀 자리도 없는데 무슨 티비야."
인터넷 결합 할인의 유혹을 뿌리치고 과감히 케이블을 해지했다.그렇게 우리 집에 텔레비전이 사라졌다.
집안 가구들이 아주 단출해졌다. 삶에서 꼭 필요한 것들만 남았다. 그러고 나서 나에게 남은 것들을 둘러보았다.
'앞으로 뭔가가 필요하다고 느낄 때마다 나는 지금 이 순간을 기억해야지. 굳이 필요하지 않은 것들에 목을 매며 살지 말아야지.'
단순히 물건이 아니라 소비에서도, 관계에서도, 삶의 전반에서 저절로 미니멀 라이프가 되었다.
지금도 때때로 나는 그 집을 떠올린다. 그리고 생각한다. 이것이 내 삶에 필요한 것인가.
의도하지 않게 살림살이를 단출히 한 내가 그다음으로 한 일이 무엇이었을까. 당연히 소비에 대한 문제였다.
적은 월급으로 살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고정비를줄이는 일이었다.
일단 우리가 그 집으로 오면서 대출이자와 아파트 관리비가 사라졌다. 상상이 되는가? 주거에 드는 비용이 0원이 되었다는 것은 단순히 엉덩이에 깔고 있는 비용만 사라지는 것이 아니었다. 필요 이상으로 지출하던 비용이 사라진 순간 나는 유레카를 외쳤다.
나의 책 <우리는 숲에서 살고 있습니다>에서도 우리 집은 텔레비전이 없고 아이들은 스마트 기기를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나온다. 하수처리장 사택에서 나온 이후, 우리가 산으로 올라오며 그런 공동체를 찾아서 오긴 했지만 이때 이미 아이들은 예행연습을 했다, 어른인 우리도 함께.
그렇게 통신비(스마트폰 2대와 인터넷)를 10만 원 이하로 만들었다. 단지 통신비를 줄였을 뿐인데 놀라운 건 전기세가 함께 줄었다. 그곳에서의 일 년, 평균 전기세 11,000원 가장 적게 나온 달은 8000원대까지 줄었다. 전기를 쓸 일이 거의 없었던 모양이다.
또 하나 비용을 줄였던 것이 보험이었다. 이것에 대한 논쟁은 끊임없이 있을 테지만, 나는 미래의 비용을 현재에 지불하고 있는 이 시스템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가 이전 책에서 썼던 말이"행복을 미루지 마세요. 우리는 지금, 여기에서 행복할 수 있어요."이다.
내가 지금 월급 180만 원으로 살아야 하는데 미래의 언젠가 아플지도 모르니 지금 허리띠를 졸라매면서 보험료를 많이 내야 할까? 현재를 건강하게 살면서 그때가 오면 비용을 그 시점에 지불하겠다는 마음으로 나는 아이들과 나의 보험도 아주 가볍게 실비만 들었다. 지금도 그렇게 유지한다. 다만, 남편은 어머니가 젊을 때 들어줬던 보험이 있어 그것을 해지하는 것은 오히려 손해이니 그것은 건드리지 않고 들고 있다. 그렇게 우리 다섯 식구 (그 이후에 태어난 막둥이까지)의 보험료는 20만 원 정도이다.
사람들이 대부분 경악하는 지점이기도 하고, 미쳤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런데 아이들이 아파서 입원을 해도 90%까지 실비에서 지원되기 때문에 부담 없이 치료할 수 있다. 아이가 입원하면 오히려 병원비보다 보상받는 금액이 더 크다고하는데 오히려 돈을 내면 어쩌냐고 혀를 차는 지인도 있지만 그 또한 내가 냈던 비용임을 생각하면 나는 이것이 우리 집 형편엔 옳다고 여긴다.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보험이 해지 없이 지속할 수 있다.
고정비라 할 만한 것이 또 있을까. 이것저것 어린이집 비용과 세금을 더하여 그 당시 우리 집 고정비는 50만 원쯤이었다. 현재는 7-80 정도가 우리 집 고정비다.
감사한 것은 양가 집안에 용돈을 드리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고, 나는 이 또한 보험처럼 현재에 그것을 부담하기보다, 그 시점이 되었을 때 우리가 감당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미래 자산을 키우기 위한 노력을 한다.
180만 원으로 과연 네 식구가 살 수 있을까? 는 기우였다.
이 월급만으로감당할 수 없는 주거환경에 살 때라면 턱없이 부족하고 힘들었겠지만, 하수처리장의 작은 집에서 살기엔 충분한 돈이었음을 이제서 이야기해본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10만 원, 20만 원 조금씩 저축액도 늘어갔다.
이 이야기를 들었던 시어머니는 눈을 동그랗게 뜨시면서 뭘 그렇게까지 힘들게 사냐며 정 그러면 도와주겠다고까지 이야기하셨지만, 힘든 삶이 아니었다. 오히려 복닥복닥 소꿉놀이처럼 작은 살림을 꾸리는 재미가 있었다.
궁상맞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팩트만 보자. 이 글 어디에 궁상이 있나. 나에겐 그저 현재의 행복을 위해 알콩달콩 살림을 꾸린 지혜로운 가족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