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날 작가 Feb 15. 2021

흔들리면 흔들릴수록 단단해진다.

문제 앞에 섰을 때



올 겨울은 많이 추웠지만 가끔 따스했고, 자주 우울했지만 어쩌다 행복하기도 했다.

박완서 작가의 에세이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에서 읽은 이 문장이 계속 잊히질 않았다. 나의 올 겨울이 그랬다. 많이 추웠지만 가끔 따스했고, 자주 우울했지만 어쩌다 행복했다.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 올해 참 눈이 많이 왔다. 눈을 핑계로 집 밖을 나가지 않고 방구석에 가만히 있었던 모양도 작가의 그 겨울과 닮아서, 어떡해... 하며 눈물을 매단 채 미소 지었다.

그저 아이의 엄마로 10년 가까이를 살아온 내가 좋은 기회로 책을 내게 되었다. 때때로 작가님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이 나의 글을 읽고 공감해 주었고, 삶이 그들에게 영감을 주었다고 얘기했고, 책을 읽으며 자신의 아이를 들여다보았다고 말했다. 태어나 아마도 처음,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주목을 받았고 환대를 받았던 같다. 가끔 으쓱했고, 가끔 부끄러웠고, 대체로 행복했다.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주위에 새로운 인연이 늘어갈수록 나를 늘 응원하고 지지해주던 사람들은 나에게 날을 세우기 시작했다. 아주 사소한 일로 관계가 틀어지고, 오해했다. '왜 그런 오해를 했을까', '우리 사이에 이전부터 어떤 문제가 있었던 걸까', '내가 무엇을 잘못한 걸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길게 이어지다가 급기야 자괴감에 빠져버렸다.


<관계>라는 것은 어릴 때부터 늘 힘들었다. 살갑게 누군가를 챙기거나, 쉽게 마음을 주거나 하는 성향이 아닌지라 깊고 좁은 관계를 선호했고 그렇게 몇몇 사람에게 듬뿍 마음을 줬다가 도리어 상처 받는 일이 많았다. 어른이 되었다고 느꼈던 시점부터 나는 사람에게 그리 기대를 하고 살지 않았다.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생긴 뒤로는 더더욱 사람들에게 무관심해졌다. 어쩌면 그것은 더 이상 관계로부터 상처 받고 싶지 않은 마음의 벽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런 내가 세상으로 발을 내밀고, 다시 새로운 관계를 맺어가면서 이전과 달리 조금씩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그동안 내가 쳐놓은 벽이 관계의 문제만은 아님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미움받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던 지난날이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이제 한 걸음 성큼 사람들 안으로 들어갈 용기가 생겼다. 그것은 나를 사랑하고 나를 믿는 마음의 시작이었다.

그러다 덜컥 걸려 넘어졌던 거다. 화살의 촉은 모두 나에게 향했다. '그럴 줄 알았어. 내가 또 그럴 줄 알았어. 사람들은 널 좋아하지 않는다니까.' 마음의 소리는 수시로 나를 할퀴었다.



우리는 때때로 우리의 믿음이 위협을 받을 때, 신뢰를 깬 상대보다 스스로를 탓하며 우울의 구덩이로 자신을 떠 민다. 이전의 나였다면, 나는 다시 가족의 울타리 안으로 돌아가 누구도 침입할 수 없게 다시금 단단히 벽을 세웠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추운 겨울을 핑계로 방구석을 지키던 내가 비로소 깨달은 것은 결국 이 모든 일은 한 번은 일어나야만 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수없이 일어날 일이라는 것이었다. 이상은의 '삶은 여행'이란 노래에 이런 가사가 있다. '강해지지 않으면 더 걸을 수 없으니.' 결국 관계의 문제가 아니었다. 스스로에 대한 믿음의 문제였다. 숨을 곳을 찾고 뒤돌아서려는 약하디 약한 나를 단련시키기 위해 일어나는 일들이었다.


변화 앞에서 멈춰 설 때, 자꾸 벼랑 끝으로 내몰릴 때조차, 믿자. 이 시간은 내가 겪어나가야만 하는 시간임을, 좀 더 단단해지라고 나를 단련하는 누군가의 계획임을, 하늘이 준 선물 같은 시간임을, 그저 믿자.

흔들리면 흔들릴수록 단단해진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