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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날 작가 Mar 05. 2021

극단적 마음을 다스리는 루틴의 중요성


열심히 걷다가도 푹 주저앉고 싶을 때가 있고,

푹 주저앉았다가도 에라 모르겠다며 막 뛰고 싶을 때가 있다.

곁에 있는 사람이 좋아 하하호호 웃을 때가 있다가도

아무도 연결되지 않는 곳으로 사라지고 싶을 때가 있다.


이상한 건 이 극단적인 마음의 거리가 그리 멀지 않다는 것이고 시간 차도 없이 때때로 발생한다는 것이다. 나는 그래서 종종 스스로를 또라이라고 부르곤 한다. 예전에는 이 시간이 너무 창피해서 잠시 침묵했다. 혹시라도 누가 이런 나를 알까 봐, 멀쩡하게 생긴 여자의 조울증 같은 증상을 눈치챌까 봐.

그런데 최근 나는 이 감정 기복이 결코 나 혼자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걸 꽁꽁 감추려 하기보다는 써보기로 했다. 왜냐하면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니까. 예쁜 프레임 안의 풍경만 주야장천 이야기 하는 건 쓰는 사람의 정신에 위배되는 것 아니냐는 요상한 논리를 펴보면서.


어떻게 1분 전에는 곤두박질치던 감정이 1분 후에는 해사해질 수 있을까. 5분 전만 해도 미워 죽겠던 사람과 어떻게 아무렇지 않게 대화란 것을 할 수 있을까. 이 미쳐 날뛰는 감정이 내 문제라고 생각했을 때는, 돌아서자마자 다시 마음이 곤두박질쳤다. 그러니 일 년 중 반 이상은 밑바닥의 감정을 갖고 살게 되는 것이다.

지난 12월부터 시작된 감정의 소용돌이라는 긴 터널에서 한 달이 넘도록 빠져나오질 못하고 갇혀있었다. 이렇게까지 긴 침묵은 아주 오랜만이었고, 도무지 올라오지 않는 마음은 자꾸 나를 끝으로 잡아당겼다.


온라인 세상에서 사라져 버리자. 이제 다 끝내는 거야.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때로 돌아가는 거야.


어느 때보다 왕성하게 일을 벌이고 있는 요즘의 내가 바로 며칠 전까지 이 세상에서 발을 빼겠단 생각을 했다고는 아무도 믿지 못하겠지만, 실제로 그랬다. 나는 완벽하게 사라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내 인생에 이것 하나 빠진다고 그리 달라질 것 같지도 않았다. 그런데 나는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숨 한번 가쁘게 쉬지 않고 가볍게 달리고 있다.


이런 시기를 거치면서 깨달은 것이 있었다. 오르락내리락하는 감정을 정리할 수 있는 단 하나의 비법은 일상의 루틴을 지켜내는 것이다. 기계적인 습관의 반복이 나도 모르는 새에 나를 터널 밖으로 꺼내놓았다. 나의 습관들은 어떤 목적이 없었다. 단순히 반복적으로 했던 일상이었고, 그간 해온 게 있으니 아까워서 놓지 못했을 뿐이다. 하루 중 아주 잠깐의 시간이 만들어낸 일상은 기복이 뚜렷한 삶도 평범하게 바꿔놓는 힘이 있었음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내가 했던 루틴들을 적어보자면 이런 거다.

나는 6개월째 논어와 도덕경을 쓰고 있다. 고백하자면 그중 앞의 3개월은 일주일에 한 번 할까 말까였다. 몰아서 쓰기를 반복하며 겨우겨우 숙제처럼 해내고 있었다. 함께 하는 리더에 대한 의리로, 책을 낸 작가라는 체면으로 억지로 그렇게 했었다. 그렇게 꾸역꾸역 했던 것도 습관이 되었던 건지 나는 어느 날부터 정자세로 그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마음이 힘들 때 도덕경을 쓰는 것 자체가 나에게 큰 위안을 주기도 했다. 노자 아저씨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세상만사 다 괜찮다고, 약하고 약한 너를 사랑한다고 이야기해주는 것 같아서 그래서 난 그 시간의 기쁨을 조금씩 찾았다.

하필(지금은 아닌데 그때는) 가라앉기 직전에 만들었던 독서모임은 꾸역꾸역 나를 움직이게 만들었다. 2주에 한 번 이끄는 책모임을 위해 나는 책을 더 깊게 읽어야 했고, PPT를 만들기 위해 필사하며 정리해야 했고, 스피치를 해야 했다. 아니 내가 왜 이 돈도 안 되는 일에 이렇게 열과 성을 다하고 있냐, 이걸 왜 한다고 해가지고는, 온갖 불평들이 막 올라오다가도 그들을 만나고 나면 그런 마음이 사라졌다. 목적 있는 만남이 아니라 목적 없는 만남이어서 더 행복했다. 가르치려고 만든 모임에서 나는 오히려 매 시간 배웠다.

매일 같이 올리는 인스타그램과 블로그는 또 어떤가. 와, 이거야말로 대환장파티였다. 내가 그간 이 SNS들과 친해지기 위해서 들였던 노력이 있으니 여기서 손을 떼는 순간 얘네들이 어찌 되리라는 건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겨우겨우 살려온 이걸 어떻게 할 수 없어서 꾸역꾸역 또 그걸 쓰고 있었다. 아니 사라지겠다며, 이제 곧 사라지겠다며!!! 이율배반적인 행동을 하는 스스로에게 욕을 한 바가지 하면서도 짧은 글이든 긴 글이든 쓰고 나면 다시 차오르는 느낌이었다.


내 루틴은 읽고 쓰는 일이었다. 그것도 혼자가 아니라 함께 하는 일이었다. 이 중에 혼자 해야 하는 일이 있었다면 루틴이고 뭐고 다 때려치웠을 텐데. 함께였기에 가능했다. 어떻게든 꾸역꾸역. 몹쓸 사람은 되지 않기 위해서. 벌여놓은 일은 수습해야 하니까. 여러 가지 이유로 나는 그냥 무념무상 읽고 썼다. 온갖 잡념이 드는 순간에도, 마감기한이 있는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읽고 썼다. 이 외의 일은 도무지 쓸 에너지가 없어서 모두 스탑을 했다. 단톡 방의 긴 이야기를 읽는 것도, 사람들과 얽혀있는 이상한 문제들도 다 모르겠다며 집어치우고 내가 해야 하는 일만 기계적으로 그저 할 뿐이었다. 그렇게 하다가 돌아보니 어느새 눈이 찌푸려질 만큼 햇살이 비치고 있었다. 긴 터널이 끝났음을 알아챘다.


우울감이 시시때때로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나는 지금 뭘 하고 있지? 라며 멈춰버리는 사람들에게 나는 루틴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그냥 하는 거다. 매일같이 반복적으로. 무슨 엄청난 의미를 부여하지 말고, 밥 먹는 것처럼. 그렇다고 숨도 못 쉴 만큼 빽빽하게 채워서 자신을 괴롭히지 말고, 꼭 해야 하는 일들을 어떤 장치처럼 마련해보자. 함께의 힘을 믿고 가보자. 내 성격이 외향인이라면 떠들썩한 모임 안에, 극도로 혼자 있길 좋아하는 내향인이라면 있는 듯 없는 듯 굴러가는 모임 안에. 그렇게 나를 살짝 넣어두고 느리게 느리게 굴러가 보는 거다. 그러면 끝도 없이 극단으로 치닫던 감정들은 어느새 제자리에 와있을 것이다. 시시때때로 또라이가 되는 여자의 따끈따끈한 체험기이니 한 번 시도해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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