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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날 작가 Mar 22. 2021

우리 사이가 안전하다는 믿음

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첫걸음

올해 초 나에게 "할 수 있지만 하기 싫은 일"이 찾아왔다. 외면할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그 일을 떠맡게 된 건 그냥 귀찮아서였다. 거절을 해야 하는 상황 자체가 피곤해서 '에라, 모르겠다. 구차하게 변명하느니 그냥 하자.' 싶어서 수락한 일이었다. 수많은 단톡 방 사이에서 그곳의 이야기는 내 눈길이 머무는 곳이 아니라 슬렁슬렁 읽는 듯 마는 듯 그리 지나쳤다. 대부분의 대답은 "좋아요.", "그렇게 해주시면 감사하죠."였다. 다른 사람이 의견을 내주니 '좋아요'고, 나서서 일을 해주시니 감사할 뿐이었다.


나는 관계에 얽매이는 걸 굉장히 피곤해하는 성격이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관계를 그리 가볍게 여기지 못하기에 오히려 엮이지 않으려고 애를 쓰는 편이다. 어쩌면 그래서 이 일을 하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온갖 인간관계의 소용돌이 안으로 발을 밀어 넣는 일이기 때문에.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부랴부랴 이 일에 집중하기 시작한 것은 "사람"때문이었다. 내가 외면하는 그곳에 내가 겪어보지 못한 슬픔이, 낯선 곳을 헤매는 고단함이 있었다. 사람의 마음이 보이니 내 자리의 무게가 새삼 다가왔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내가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삐걱거리기 시작한 관계들이 비로소 보이기 시작했다.


관계에 문제가 생겼을 때, 첫 번째로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관계의 문제가 생기면 보통 그 문제를 유발한 사건에 집중하거나, 당사자의 감정에 집중한다. 당사자의 이야기로 끝나면 다행이지만, 뭐 때문에 그런 일이 일어났대? 왜 그렇게 화가 났대? 걔는 대체 왜 그렇게 말을 했대? 둘 중 한 사람의 입장에서 이야기가 퍼지기 시작하면 사태는 걷잡을 수 없어진다. 관계의 주도권을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가지고 있을 때는 더 참혹하다. 어떻게 손 써볼 수 도 없이 관계는 망가져버린다.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상대가 어떤 이야기를 해도 들어줄 마음이 있다는 믿음을 세우는 일이다. 일종의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것이다. 그 장치가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관계를 풀어나가려고 하면 쌓이는 건 오해요, 깊어지는 건 골뿐이다. 쉽게 풀릴 수 있는 문제도 뫼뷔우스의 띠처럼 영영 꼬여버리는 경우가 있다. 이 사람은 내가 어떤 이야기를 해도 들어줄 거라는 믿음, 방법을 찾기 위한 노력을 할 거라는 믿음, 그런 신뢰가 구축될 때 우리는 관계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그런데 그 신뢰를 대체 어떻게 구축할 수 있을까. 서로가 안전하다는 것을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 이미 우리는 다년간의 인간관계를 맺어오며 자기만의 벽을 견고히 쌓아왔다. 한치의 틈도 내보이지 않도록, 나를 지키는 방법을 찾아왔다. 그런데 일단 얘기해봐,라고 한다고 해서 그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을까. 상대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정공법이 아닌 돌아가는 방법도 필요하다. 문제를 털어놓으라고 재촉하기보다, 그저 몸짓으로 눈빛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누구도 관계의 문제를 피해 갈 수는 없다고, 나도 겪었고 모두가 겪고 있지만 지혜롭게 해결하고 있다는 것을 직접적이지 않은 말로 들려주는 것이다. 우리는 따뜻하고 안전하다고. 때로는 글이나 음악을 사용할 수도 있다. 사람의 마음은 그리 독하지도 그리 차갑지도 못해서, 아주 사소한 것에도 금세 온기가 채워진다.



해야 하지만 하고 싶지 않은 일에 진심을 다했던 날 밤, 나는 오랫동안 꽁꽁 감춰두었던 마음 하나를 꺼내기로 했다. 나에게도 해결하지 못한 관계의 문제가 하나 있었다. 오래도록 나를 아프게 했지만 끊어내지도 못하고 지지부진하게 잡고 온 문제였다. 그런데 그날, 누군가의 아픔을 어루만져주려고 했던 행위가 나의 마음까지 어루만져줬던 거다. 늦은 밤 전화를 걸었다. 하고 싶었지만 할 수 없었던 말, 황망할 만큼 미웠지만 차마 꺼낼 수 없었던 말, 그리고 그럴 수밖에 없었던 못난 내 모습까지. 어쩌면 그날이 아니었으면 절대 하지 않았을 그 이야기들을 그 밤 꺼내놓았다. 한숨과 눈물이 뒤범벅되었던 그 밤, 우리 사이에 신뢰가 남아있을 거라는 믿음으로 꺼내놓은 말 덕분에 나는 비로소 가슴에 무거운 돌 하나를 내려놓았다.





생명은 그래요.

어디 기대지 않으면 살 수 있나요?

공기에 기대고 서 있는 나무들 좀 보세요.


우리는 기대는 데가 많은데

기대는 게 맑기도 하고 흐리기도 하니

우리 또한 맑기도 흐리기도 하지요.


비스듬히

다른 비스듬히를 받치고 있는 이여.


몇 해 전 내가 사랑하는 멘토가 보내줬던 정현종 시인의 시다. 관계라는 것이 그렇다. 맑기도 하고 흐리기도 하다. 맑기만 하면 좋겠지만 흐린 날이 더 많은 것이 우리 내 사는 모양이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누구나 그렇다는 것이 때때로 위안이 된다. 그러니 서로를 향해 손을 뻗는 일을 놓치지 말자. 흐린 날에도 너와 나의 사이가 안전하다는 믿음이 있다면 괜찮다. 시간이 걸려도 결국은 다시 맑아질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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