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느리와 딸 사이

by 나날 곽진영

지난 추석, 코시국 첫 명절이었다. 정부는 고향 방문을 자제해 달라고 했다. 그동안의 기조와는 사뭇 다른 "자제"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아니 "자제"라고 하면 어떡해? 강제성은 없는, 스스로의 선택에 맡기는 그런 단어를 사용하다니. 발표가 나고 며칠 동안 전국엔 보이지 않는 줄다리기가 이어졌다. 누구 하나 먼저 말해야 했다. 그래도 이왕이면 어르신이 "이번 명절은 위험하니까 집에 있거라."라고 말해주길 바라면서.


"큰 어머니가 이번엔 각자 지내자고 하는구나. 언제 내려올래?"

시댁은 온 식구가 큰집에 모여 왁자지껄하게 명절을 보냈다. 하루 전날 모여서 음식을 하고 기름 냄새 잔뜩 벤 옷을 입고 윷놀이를 하고 새벽부터 일어나 함께 밥을 먹고 성당에서 미사를 드리고 산소로 간다. 물론 결혼 초에는 제사를 지냈기 때문에 훨씬 고된 일정이었지만 최근 꽤 단출해졌다. 이번엔 큰집으로 안 가니 그건 좀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올해도 마찬가지였다. 코로나는 여전하고 작년에 비하면 확진자 수는 어마어마하게 늘어났지만 처음보다 공포는 덜 해졌다. 평소와 다름없는 명절이었다.

"오빠, 이번 명절은 좀 일찍 내려가서 어머니랑 보내고, 추석 전날 엄마 집으로 움직여도 될까?"

남편은 흔쾌히 그러자면 본인이 전화를 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며칠 뒤, 남편이 꽤 침울한 얼굴로 말을 전했다. 어머니께서 추석을 혼자 보내라는 거냐며 화가 나셨다고. "응? 뭐라고" 어머니가 화가 날 이유가 무엇일까를 잠시 버벅거리는 머리로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간다고 했어. 엄마가 오늘 또 전화 와서 뭐라고 하긴 했는데, 이번엔 좀 특별한 상황이니까 알겠다고 하셨어." 남편은 뒷말을 더했다. 한참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나는 꽤 평화를 추구하는 며느리다. 조용히 웃으며 할 말 하는 나도 시어머니에게는 10년 동안 내 의견을 강력하게 내밀어 본 적이 없었다. '좋은 게 좋은 거지, 굳이 얼굴 붉힐 일이 뭐 있어. 일 년에 몇 번이나 본다고.' 그런 생각으로 분통이 터져도 남편을 잡았지 시어머니에게는 늘 고분고분한 며느리였다. 그랬는데, 이번 일은 좀처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니 왜! 그깟 추석이 뭐라고! 한참 씩씩 거리고 있는데 풀 죽은 남편의 모습이 보였다. 어머니의 불편한 기색에 못내 마음이 쓰였던 모양이다. 나는 아마도 남편의 저 모습이 보기 싫어서 그간 평화주의자 인척 했던 것 같다.

비꼬는 것처럼 들리겠지만, 진심으로 나는 효자인 남편을 사랑했다. 그가 효자여서 결혼을 결심하기도 했다. 엄마에게 항상 툭툭대기 바빴던 나와 달리, 한결같이 어머니에게 예의 있고 다정하게 대하는 그를 보면서 나에게도 그리 할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리고 그 생각은 결혼 10년 동안 달라지지 않았다. 언제나 가족이 최우선인 사람이었다.


"어머니, 저 추석에 산소 들렸다가 친정으로 갈게요. 괜찮은데, 그이가 괜한 말을 했어요."

다음 날 어머니에게 전화를 드렸다. 늘 그랬던 것처럼 명절을 보내고 가겠다고. 어머니는 이미 허락했는데 뭘 그러냐며, 엄마한테 얘기 안했냐며 말을 빙빙 돌리시더니 그러자 그럼, 기분 좋게 웃으며 통화를 마쳤다. 파란 하늘을 잠시 올려다보았다. 바람이 내 몸 어딘가에 난 구멍으로 스친 것처럼 시렸다. 나는 웃지 못했다.


추석에 태어나 당신의 엄마에게 한 번도 미역국을 못 얻어먹었을 엄마가, 아들도 못 낳고 딸 하나뿐이라 여전히 음식을 해놓고 기다리는 엄마가, 칠순, 조금 특별한 엄마의 생일까지 시어머니 눈치나 보는 모자란 딸을 둔 엄마가, 너무 가여워서. 이제야 보이는 엄마의 70년이 먹먹해서 눈물이 났다. 날짜는 그리 의미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미리 안마 의자 사드리면서 생색을 냈음에도, 그래도 괜히 속이 상했다.


결혼한 여자라면 누구나 며느리이자 딸인데, 그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여자의 마음을 가장 이해할 수 있는 것도 같은 여자일 텐데. 왜 아들을 가진 여자와 딸을 가진 여자의 온도차가 이리 나는 걸까.

딸을 셋이나 낳은 나는 어쩌면 오늘 일을 크게 후회할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어느 날, 아주 지독히 외로운 날에, 그날 남의 집 엄마 비위 맞추느라 우리 엄마 외면한 그 벌을 받는 거라고 읊조리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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