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도 나의 삶을 이해한다는 믿음으로
지금이야 작은 집의 기억을 이렇게 아름답게 쓴다. 그 1년, 우리는 정말 행복했으니까. 마지막으로 집을 나오면서 다음에 들어올 사람도 우리처럼 이 집에서 좋은 일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비질을 했었다.
그 집을 처음 본 날은 그렇지 않았다. 막상 집을 보겠다고 우겨서 처참한 그곳의 상태를 본 후 우리는 가까운 음식점으로 점심을 먹으러 갔다. 만둣국 전문점이었다. 마침 점심시간이라 식당 안에는 사람들이 가득했고, 아이가 있는 사람은 우리뿐이었다. 아이들은 평소보다 더 흥분해 있었다. 시끄러웠고, 거슬렸고, 정신이 없는 와중에 만두가 너무 뜨거웠다.
“아이 씨!”
거친 탄식과 함께 뜨거운 만두를 퉤! 하고 뱉는 순간, 테이블에 정적이 흘렀다. 아이들과 남편은 깜짝 놀라서 나를 쳐다봤다. 나는 잠시 그 눈빛들을 보다가 목놓아 울고 말았다. 만두가 뜨거워서 울었고, 아이들이 떠들어서 울었고, 아무 말도 안 하는 신랑이 야속해서 울었고, 그 집이 너무 참혹해서 울었다. 그렇게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겨우 겨우 밥을 먹고 차에 탔을 때 아이가 물었다.
“엄마, 만두가 그렇게 뜨거웠어? 아기처럼 울만큼?”
엄마가 많은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꺼이꺼이 울던 모습이 가히 충격적이었던 아이는 결국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평소의 나라면 그렇다고 말했겠지만, 나는 그때 꽤 솔직하게 나의 마음을 이야기했다.
“엄마는 그 집이 싫은가 봐. 너무 더럽고, 너무 작아서. 엄마는 그런 집을 한 번도 상상해 본 적이 없거든.”
“아, 만두가 아니고 작은 집이 속상하구나?”
아이는 제법 어른처럼 나를 위로했다. 서투르지만 솔직한 말로 나의 마음을 어루만졌다.
“엄마 나는 집이 작아서 더 좋아. 우리가 계속 붙어있을 수 있잖아.”
아, 그렇구나. 작은 집에서 복닥복닥, 우리는 또 좋은 추억을 쌓을 수 있겠구나. 나는 깨달았다. 5살 아이는 더 이상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가 아니었다. 엄마의 마음을 헤아릴 만큼 충분히 자기 생각을 할 줄 아는 아이였다. 아기인 줄만 알았던 나의 첫째는 어느새 이렇게 많이 커 있었다. 그 날부터 '아기는 몰라도 돼.'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아이가 궁금해하면 대부분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어리니까 대충 숨기거나 얼버무리기보다 상황을 비교적 상세하게 설명하고 아이가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럼 아이도 나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 그것이 우리 사이에 싹텄다.
아이와 돈 공부
돈에 관한 이야기도 그랬다. 우리가 이제껏 살아온 방식이 아닌 다른 삶을 살아야 하는 지금, 돈에 관한 이야기는 아이에게 가장 먼저, 가장 중요하게 해야 할 이야기였다. 이직을 한 이후, 아이들이 원하는 사소한 것들도 함부로 사주지 않게 되었다. 우리가 가장 많이 다녔던 에펠탑이 그려져 있는 빵집도, 참새 방앗간처럼 들렀던 슈퍼마켓도, 장난감이 즐비한 노랑 마트도 더 이상 아이들의 천국이 아니었다. 이전의 나는 남편이 부재한 시간을 채우기 위해 필요 없는 지출을 많이 했었다. 그런데 마트만 가면 얼굴이 활짝 피던 엄마가 지갑을 닫았다. 갑자기 변한 엄마에게 항의도 하고, 떼도 쓰고, 울기도 했지만 엄마의 지갑은 열리지 않았다. 처음에는 그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서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는 이 전의 경험으로 꾸준히 아이들에게 설명을 했다. 엄마가 돈이 없는 이유에 대해서. 그 와중에 다행인 것은, 차를 타고 나가지 않는 이상 슈퍼조차 없었다는 것이었다. 배달도 오지 않는 곳인데 말해 뭐하겠나.
하루는 친구의 장난감을 본 아이가 똑같은 것을 사달라고 졸랐다.
“엄마, 진짜 갖고 싶어. 그거 사주면 안 돼?”
나는 안 된다는 눈빛을 아이에게 보냈다. 아이는 금세 포기했다. 아니 포기한 것처럼 보였다.
“엄마, 내가 빨래 개는 거 도와줄게요.”
“엄마, 힘들지 않아요? 안마해 줄까요?”
“엄마, 내가 신발 정리를 했어요. 한 번 봐요.”
아이는 평소엔 쓰지도 않는 존댓말을 하며 계속 나에게 어서 사준다고 말하라는 눈빛을 보냈다. 이러다 하루 종일 놀지도 못하고 내 눈치만 보고 있을 것 같았다. 편의점 장난감이 뭐가 그렇게 좋다는 건지. 강아지 마냥 졸졸 따라다니는 아이가 너무 귀여워 이번엔 사주기로 했다.
신나게 아이와 편의점으로 갈 때 까진 좋았는데, 그 얄궂은 장난감은 8500원이었다.
“연아야, 이거 너무 비싼데?”
“비싼 거야?”
“응. 이거 사탕 요만큼 들고 인형 작은 거 한 개 들었는데 너무 비싸. 엄마가 약속한 거라 사주고 싶은데 주아 거까지 사면 17000원이야. 파란 돈도 내야 하는 거야. 어쩌지?”
“그래도 살래. 엄마가 약속했잖아.”
“맞아, 엄마가 약속을 했지. 연아야, 그럼 엄마가 이 초콜릿을 사주면 어떨까? 이것도 장난감이 들어 있잖아?”
아이가 잠시 흔들리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냉큼 말을 덧붙였다.
“저거 하나 살 돈이면, 이거 4개 사고도 돈이 많이 남는데? 엄마가 2개씩 사줄게.”
“와!! 엄마 좋아!! 연아 이거 좋아해. 살래!!”
아이는 흔쾌히 나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 조차도 평소에는 잘 사주지 않았던 것이기 때문이었다. 동생 것 까지 챙겨서 기뻐하는 아이를 보니 기특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마음은 불편한지.
그날 밤, 아이에게 약속을 못 지켜서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다.
“엄마, 그런데 우리 집은 가난해?”
“왜 그런 생각이 들었어?”
“친구는 편의점 가면 엄마가 사고 싶은 것도 다 사주고, 게네 집에 장난감도 엄청 많거든. 근데 우리는 돈이 없어서 못 사잖아.”
“응, 맞아. 그렇게 생각하면 우리는 가난하지.”
“연아도 기억해? 아빠가 매일 엄청 늦게 들어오던 때가 있었잖아. 엄마가 전에 말했지? 아빠가 우리 딸들이랑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 돈을 조금 주는 회사로 옮겼다고. 그래서 우리가 쓸 수 있는 돈이 많지가 않아. 꼭 필요한 곳에 쓸 돈 밖에 없거든. 음, 연아가 오늘 못 산 장난감은 꼭 필요한 거였어?”
“아니. 갖고 싶긴 한데 그거 몇 번 놀면 시시하지.”
“아빠가 열심히 일해서 번 돈을 그런 시시한 거에 쓰면 너무 아깝지 않겠어?”
이 이야기는 그 뒤로도 내 마음에 두고두고 남았다. 아이에게 너무 야박했나 싶어서. 8500원이 뭐라고 아이를 실망시켰을까. 그럼에도 그렇게 이야기를 나눈 후 아이는 조금 달라졌다. 동생이 쓸데없는 물건을 갖고 싶다고 떼를 부릴 때였다.
“아빠가 열심히 번 돈이야. 이게 꼭 필요해?!” 동생을 쥐 잡듯 잡는 아이를 보며 마음이 짠하고, 고맙고 그랬다.
그런데 이상하다. 나는 분명 친절하게 말한 것 같은데, 내가 저렇게 무섭게 굴었나?
적게 쓰고 충분히 만족하기
우리는 더 많은 것을 얻으려고 하기보다, 적게 쓰고도 만족하는 법을 고민한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이 벌까를 생각하면 괴로울 수밖에 없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어서, 많이 가져도 만족하지 못하니까. 그래서 우리는 적게 벌고 적게 쓴다. 적게 쓰면서 충분히 만족한다면 그것도 좋은 방법 아닐까? 게다가 어떻게 하면 더 벌 까보다 어떻게 하면 안 쓸까를 고민하는 편이 훨씬 쉽다. 의지만 있다면 성공할 확률은 100%니까. 신기한 것은 세상에 돈 없이 할 수 있는 즐거운 일들이 너무 많다. 가진 것이 많을 땐 돈 없이 할 수 있는 것에 대한 생각을 해보지 않았는데 없어보니 알겠다. 약간의 전기세를 지불하는 것 만으로 내가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처럼, 세상에 벌어지는 놀라운 일들은 대체로 돈 없이 할 수 있다.
아이에게 우리 집은 가난하다고 말할 때 나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았다. 사실 이런 날을 간절히 바라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요즘은 아이들은 ‘결핍’을 경험하는 것이 꽤 어렵다. 어느 때보다 풍족한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런데 모든 것이 갖춰져 있고, 주어져 있는 곳에서 자라는 것이 과연 가장 최적의 환경일까? 우리는 아이들에게 ‘결핍’된 환경을 경험할 수 있는 선물을 선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간절함’을 가질 수 있는 가장 최고의 수단은 결핍이니까. 우리가 아이를 키우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도 "결핍"이다.
큰 아이가 7살 생일날 그런 말을 했다.
"엄마, 나는 정말 소중한 사람이야."
"그렇지. 넌 정말 소중하지. 그런데 왜 갑자기 그런 말을 해?"
“내가 태어난 날이 얼마나 특별하면 엄마가 돈도 없는데 나한테 선물을 사주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