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째가 찾아왔다.

삶은 리드미컬하게

by 나날 곽진영
움켜쥔 손을 풀어내는 일


억지로 눈을 뜬다. 먼저 일어난 아이들은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집안을 엉망으로 만든다. 겨우 첫째를 어린이집에 보낸다. 대충 아침 겸 점심으로 라면을 먹고 둘째를 돌본다. 아이가 낮잠을 잘 동안 재빨리 청소를 한다. 저녁을 먹고 잠들 즈음 남편이 온다. 모두가 잠든 밤, 아무도 나에게 말 걸지 않는 밤, 드라마를 보며 군것질을 한다. 다시 피곤한 아침이 시작된다.

목 늘어난 옷을 입고, 라면을 끓이며 아이가 잠드는 시간만 기다리는 여자, 바로 나였다.

이 육아의 끝이 어딜까, 끝이 오긴 오는 건가, 나는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할까, 그런 불안함이 가득했던 날들이었다. 두 아이를 키우며 보낸 5년은 나의 손과 발을 모두 묶었다. 부족한 것은 없는데 늘 허기가 졌다. 따뜻하고 편안한 울타리가 생겼지만 정작 나를 잃어가고 있었다.내 의지로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이 모든 상황이 답답하다. 괜한 불똥이 여기저기 튄다.


신랑의 이직으로 가장 달라진 건 나였다.

나는 책으로 육아를 배운 여자라, 융통성 없는 육아의 정석으로 아이를 키웠다. 아이 둘을 15개월 이상 모유 수유했고, 큰 아이는 4살부터 천천히 원에 적응시켰다. 엄마들을 가장 힘들게 하는 육아의 가장 큰 산인 이 두 개를 해냈는데 다른 건 말해 뭐하겠나. 이 곳에 온 뒤 나는 육아서에서 배운 그 쓸데없는 고집들을 내려놨다. 그저 '좋은 엄마' 타이틀을 갖고 싶었을지도 모를 내 욕망은 거기에서 브레이크를 걸었다. 이 곳으로 오며 처음 한 일이 두 아이의 어린이집 등록이었다. 그때도 아무 어린이집이나 보낼 수 없다며 수십 통의 전화를 하고 상담을 받다가, 모두 관두고 그냥 평이 무난한 가까운 어린이집으로 보냈다. 이렇게 조금씩 내려놓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걱정이 무색하게 둘째는 어린이집에 적응기간도 없이 적응했다. 나의 모든 걱정은 기우였다. 조금씩 움켜쥔 손을 풀어내는 연습이 필요했다.



인생은 리듬감이 필요해


이사를 오며 대부분의 물건을 처분했기에 청소할 것도 없었다. 이건 정말 획기적이었다. 집도 작고 물건도 없어서 청소도 고작 몇 분이면 끝났다. 없는 살림에 책은 아주 좋은 놀잇감이 되었다. 책을 쌓고, 징검다리를 만들고, 온갖 놀이를 하다가 그마저도 심심하면 책을 읽었다. 놀라운 것은 아이들 뿐 아니라 우리도 책을 읽게 되었다는 것이다. 결혼 후 전혀 책을 읽지 않았던 신랑이 다시 책을 읽기 시작했다. 남고 남는 시간에 책을 읽었다. (웃음) 나는 굳이 미니멀 라이프를 하지 않아도 아주 미니멀한 삶을 살게 되었다.


가장 큰 변화는 내가 일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신랑의 급여가 워낙 적었기에 생활비라도 벌자는 마음으로 적극적으로 구직에 임했다. 주 3회 10-5시까지 사람을 구하는 곳이 있었다. 면접에 가서 적극적으로 나의 시간을 어필하였다. 주 5회를 나오는 대신 10-3시까지 일하겠다고 말했다. 일 하는 것도 감지덕지인데 시간 변경을 괜히 이야기했나 아쉬움도 잠시, 다행히 나는 다시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아침의 시작이 바빠졌다.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보내면서 출근을 했다. 가는 길에 음악을 듣고 책을 보는 시간이 그렇게 소중할 수가 없었다. 집에 오면 아이들이 하원을 했다. 아이들에게 엄마의 부재는 없었다. 달라진 건 나의 삶에 리듬이 생겼다는 것이다. 바깥 활동을 시작하면서 시들어 가고 있었던 나는 조금씩 생기가 돌았다. 과연 내가 다시 사회생활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은 사라졌다. 이 마음이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주 사소한 일에도 즐거웠고, 즐거우니 열심히 하게 됐다. 내 밥값을 하고 있다는 뿌듯함, 육아뿐 아니라 다른 일도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 이런 것들은 가정에도 영향을 줬다. 매일 아침 예쁜 옷을 입고 자기들과 나서는 엄마의 모습이 아이들에게도 즐거움이 된 것 같았다.


리듬감, 삶에는 이런 리듬이 필요했다. 아무리 편안하고 행복한 삶도 리듬이 없으면 지루해진다.


셋째가 찾아왔다


아뿔싸! 리듬감이 너무 넘쳤던 걸까.

아직도 생생하게 생각나는 그 날, 그 할 일이 없어도 너무 없는 긴긴밤에 신랑과 장난을 치다 잠깐 눈이 맞았다. 날짜가 영 마음에 걸렸다. 그다음 날, 출근을 했다가 병원에 갈까 잠깐 고민을 했다. '별일이야 있겠어?' 발길을 돌렸다. 바로 그때 내 뱃속에는 새 생명이 싹을 틔우고 있었다.


셋째의 존재를 알게 된 날, 멘붕이 왔다. 헉! 셋째라고?! 설상가상 신랑이 2주 동안 진주로 출장을 갔을 때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돌아오면 이야기를 하려고 하다가 도무지 마음이 진정이 안 돼서 신랑에게 전화를 했다.


“오빠, 큰일이 생겼어.”

“왜? 누가 다쳤어?”

깜짝 놀란 신랑이 다그쳐 물었다.

“아기가 생겼어.”

“................”

“어떡하지?”


그전에 생리를 안 한다며, 좀 불안한데? 하고 농담처럼 얘기했던 적이 있었다. 아, 나는 정말 분명히 농담이었는데 현실이 되었다니. 신랑은 한동안 말을 잃었다.


“나는 아무래도 괜찮으니, 네가 원하는 대로 하면 돼.”

한참을 말이 없던 신랑이 나에게 말했다. 알겠다고 전화를 끊었다.

몇 초 후, 다시 신랑에게 전화를 했다.

“뭐? 아무래도 괜찮다고? 야잇 #$%!#%!!"


마음이 막 교차했다. 셋째는 꿈에서도 상상해 보지 않은 일이었다. 나는 '너 자신을 알라.'는 소크라테스의 말을 새겨듣는 사람이었다. 내 깜냥이 그렇게까지 아니라는 것을 누구보다 내가 잘 알고 있었다. 외동딸이었다. 누구에게 희생하며 살아본 적이 없다. 그런 내가 세 아이의 엄마가 된다고? 게다가 나는 이제 겨우 막 육아에서 발을 뺀 사람이었다. 삶에 리듬이 필요하다고 방금 말하지 않았나. 나는 길고 긴 육아의 터널을 이제 빠져나왔는데. 아, 부정하고 싶지만 그런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앞으로 벌어질 일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나는 물론이거니와 엄마의 도끼눈이 떠오르면서 하필 또 나는 딸이 둘이고, 어, 음, 아들까지 낳아야 하는 거 아니야? 아. 나는 정말 어떡하지.


만약 내가 이런 삶을 살기 전이었다면, 나는 이 생명을 포기했을 거다. 정말 미안하지만 그랬을 거다. 나에게 그 만한 사랑도 여유도 없었다. 숨 쉬기조차 버거운 엄마였다. 이런 일이 벌어진 것에 대해서 신랑을 원망하고 비난했을 거였다. 그렇게라도 누군가의 뒤로 숨고 싶었을 거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그저 내가 세 아이의 엄마가 된다는 그 사실을 인정할 수가 없었을 뿐 이 생명은 귀했다. 귀하게 찾아온 발걸음이었다.


“아가야, 잘 왔어.”

배를 토닥이며 읊조렸다. 그 말을 내뱉는 순간 마음이 편안해졌다. 나도 모르는 새에 세 아이를 키울 만큼 나의 품이 커졌을 거다. 만약 그게 아니라면 이 아이로 인해 좁은 내 품이 늘어날 거다. 분명한 것은 나는 이 아이로 인하여 좀 더 어른이 될 거라는 확신이었다. 두 아이를 키우면서 느낀 것은 아이는 나를 한 인간으로 성장시킨다는 것이었다. 결국 우리 집의 복덩이가 된 셋째였다. 복이 넝쿨째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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