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육아 휴직을 내다
아이들이 가장 기다리는 시간은 아빠의 퇴근 시간이다. 남편의 차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리면 강아지들처럼 현관 앞에서 “아빠! 아빠! 아빠!”를 외치며 춤을 춘다. 입이 귀에 걸려 들어오는 남편 모습이 보였다. 두 아이가 아빠 품으로 달려든다. 거의 돌격 앞으로 수준인데도 남편은 좋아서 어쩔 줄 몰랐다. 지금은 막둥이도 합세해 아빠를 외친다.
셋째를 임신하고 신랑과 했던 가장 큰 고민은 산후조리였다. 몸조리를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육아휴직을 낼게.”
“진짜? 그럴 수가 있어?”
“길게는 못 낼 것 같지만 한, 두 달은 내도 괜찮을 것 같아. 겨울엔 덜 바쁘기도 하고.”
신랑의 결단이었다. 지금 다니는 회사에서 남자가 육아휴직을 낸 케이스가 거의 없었다. 먼저 말을 꺼내 준 신랑에게 너무 고마웠다. 신랑이 이직을 했던 이유가 빛을 바랐다. 아이들과의 시간, 그것이 그의 최우선 과제였다. 이왕 그렇게 결심했으니, 이제 어떻게 그 시간을 가장 잘 보낼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했다.
나는 셋째의 조리를 위한 시간이 아니라 두 아이의 축제가 되기를 바랐다. 두 아이를 키워봤기 때문에 셋째는 혼자 돌볼 수 있다는 자신이 있었다. 요령도 있고 괜찮았다. 누군가의 돌봄이 필요한 사람이 아니었다.
"내가 아기를 마크할 테니 오빠는 연아, 주아를 전담하도록해!"
우리 둘은 전우애에 불타며 비장한 각오를 다졌다. 아이들에게 동생이 태어나서 아빠와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됐으니 동생이 생긴 걸 기뻐하는 마음을 갖게 해주고 싶었다. 신랑에게도 생각해 본 적 없는 휴식이었다. 건설회사에서 이곳으로 이직을 할 때도 쉼 없이 왔다. 잠깐의 휴식도 하지 못한 신랑이었다. 우리가 한 생명을 받아들이며 가족의 재정비를 할 수 있는 귀한 시간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셋째의 탄생을 준비하고 있었다.
2018년 12월, 막둥이가 태어났다. 하얗고 작은 아기였다. 세 번째였는데도 여전히 신기했다.
“나, 요리에 소질이 있나 봐.”
신랑은 산후도우미를 자처하며 주방을 떠나질 않았다. 아침을 먹으며 점심, 저녁 메뉴를 고민하는 그의 모습이 정말 낯설었지만 한 달가량 그의 주방은 문을 닫지 않았다.
“아빠! 너무 맛있어.”
“최고! 최고야!!”
“우리 아빠는 요리사야!”
매일 엄지를 들어 올리며 환호를 하는 한 달간의 식탁은, 사랑이 넘쳤다. 김치볶음밥 위의 계란 프라이마저 예쁘게 올리는 이 남자는 정말 이 쪽이 적성일지도 모른다. 갑자기 주부의 자리에 위기가 느껴진다. ‘빨리 주방을 사수해야겠어.’ 물론 속으로만 생각했다!
아빠의 자리는 어디입니까
아빠의 자리는 어디일까. 나에게 아빠는 그저 무서운 존재였다. 살가운 성격도 아닌 외동딸은 아빠와 거리가 있었다. 워낙 엄격한 집 분위기도 있었고, 나이를 먹어서도 아빠는 늘 나에게 어려운 존재였다.
그런데 첫 아이를 낳았을 때다. 아이를 데리고 친정을 가면 아빠는 그렇게 아이를 예뻐했다. 우리가 오기 전 화장실까지 청소를 하고 기다리셨다. 아이를 돌보는 아빠의 모습은 너무 낯설었다. 신랑이 출근 한 어느 아침, 아빠에게 문자가 왔다.
[진영아, 네가 어릴 땐 아빠가 일이 바쁘고 사는 것에 급급해서 너를 돌보지 못했어. 그때 못 준 사랑까지 우리 연아에게 다 줄게. 사랑한다.]
그 날 아침 그 문자를 보며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한 번도 아빠의 마음을 들어본 적도, 궁금해한 적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빠는 그저 아빠였고, 가장으로서, 남자로서의 그 마음을 들여다본 적이 없었다. 이게 말이나 되는 일일까.
왜 나에게 아빠의 존재는 그리도 작았을까. 워낙 살기 힘든 시절이었다고 한다. 처, 자식을 먹여 살리려고 일터에서 하루 종일 고생한 보람도 없지. 하나밖에 없는 딸은 이리도 배은망덕했다.
시대가 달라졌지만 여전히 아빠들은 바쁘다. 아침 일찍 나가고, 밤늦게 들어온다. 중간중간 사람도 만나고, 스트레스도 풀어야 한다. 잠깐 마주치는 아이들은 잘해주고 싶어도, 정작 아이가 뭘 원하는지 모른다. 아이와 소통이 되지 않는다. 나도 아직 아이를 다 키운 것이 아니라 잘 모르지만, 내 어린 시절을 떠올려 보면 아빠, 엄마를 찾았던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그 잠깐의 시간, 집에 아빠의 자리를 마련해주고 싶었다.
신랑은 일이 있지 않는 이상 일부러 야근을 하지 않고, 가능한 주말에는 당직을 서지 않는다.
"집에서 마누라가 바가지 안 긁냐?"
회사 동료들은 그런 신랑을 이상하게 여겼다. 야근을 하고, 당직을 빡빡하게 선다고 해서 그 전 회사에서 받았던 급여만큼 나오는 것도 아니었다. 적은 월급은 더 적어졌지만, 아빠의 자리는 적어진 월급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커졌다. 나는 이 또한 아주 탁월한 투자라고 생각한다. 나중에 아빠의 자리를 차지하려면 지금 애쓰는 노력과는 비교도 안 될 일이기 때문이다.
돈 몇 푼에 살 수 있는 자리라면, 충분히 그럴만한 가치가 있지 않나?
최고의 수혜자는 나야 나
아이가 셋이라고 하면 “어휴, 힘들겠다.”라는 말을 종종, 자주 듣는다. 아니 만나는 사람마다 그렇게 말한다. (웃음) 오히려 나를 가까이에서 보는 사람들은 그런 말을 하지 않는다. 아빠의 자리가 커질수록 가장 혜택을 보는 사람은 아이가 아니라 사실 엄마다.
아기가 어릴 때는 하나든, 둘이든, 그냥 힘들다. 아무것도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24시간 아이 옆에 붙어 나의 온 시간을 쏟아내야 하는 과정이니까. 아이가 셋이니까 그 시간을 세 번 겪는다는 점에선 물론 힘들다. 그 힘듦은 공통적인 힘듦이고, 그 이후는 별 차이가 없다.
남편은 주 양육자이다. 아이를 잠깐 봐주는 정도가 아니다. 처음엔 세 아이와의 시간을 부담스럽다고 했지만, 이제는 세 아이를 데리고 나들이도 가신다. 두 달 간의 휴직기간, 아이들과 부대끼며 보낸 경험치가 그에게 자신감을 주었다. 나는 신랑이 품을 내준 덕에 일주일에 2, 3번 정도는 저녁에 아이들을 가르치고, 가끔은 주말 하루 종일을 집을 비워 듣고 싶은 강의를 들으러 가거나, 지인들을 만나기도 한다. 아이들도 아빠와만 있는 시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아빠의 자리는 엄마와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는 서로 잘할 수 있는 부분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 신랑은 큰 변화 없이 한결같음이 있는 사람이다. 할 수 없는 것을 떠벌리거나, 자신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신랑의 말을 대체로 믿는다. 흔히 말하는 뻥카가 없는 사람이니까. 신랑의 이런 성격은 감정 기복이 큰 나보다 오히려 육아에 굉장히 제격이었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이 정서적 안정감을 얻었을지도 모른다. (웃음)
나와는 다른 방식으로 아이를 바라보고 누구보다 정확한 육아의 피드백으로 균형을 맞추는 것, 두 명의 주 양육자가 있는 우리 집의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