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살기 (1)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살 수 있을까

by 나날 곽진영

사람들은 줄 곧 나에게 두 가지 질문을 한다.

"불편하지 않아?” 숲 생활에 대한 물음, “산에 산다면서 뭐가 그렇게 만날 바빠?” 내 생활에 대한 물음, 나는 두 가지 질문에 모두 “느리게 살기”로 답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불편합니다 - 욕구 지연


산에 사는 것은 때때로 많은 불편함을 준다. 근처에 마트 같은 편의시설이 없기 때문에 무언가 “소비”의 욕구가 일어나면 차를 타고 나가야 한다. 장을 보러 간다고 하면 일주일 동안 먹어야 할 것들을 사는 편이지만, 그렇게 장을 보고 왔다고 생각해도 막상 집에 가져오면 먹을 것이 별로 없다. 그래서 장을 보러 가는 것의 비중과 인터넷 쇼핑의 비중이 거의 반반이다. 산이어도 빠른 배송을 해주시는 택배 아저씨의 수고로움 덕분이다. 즉흥적인 욕구에는 바로 반응할 수가 없다. 물론 어떤 욕구가 생길 때마다 바로바로 산을 내려갈 수도 있다. (사실 마음만 먹으면 전혀 멀지 않은 거리이다.) 그럴 때마다 그런 생각을 한다.
'내가 굳이 그러려면 여기까지 뭐한다고 올라왔겠나'
그렇게 떠오르는 모든 욕구에 귀를 기울이기보다는 참을 수 있는 것들은 참고, 정 못 참겠는 것들 위주로 해결을 한다. 이것도 습관이라 어느 순간 욕구에 반응하는 속도도 느려진다. 지금 당장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몸이 아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 온다.

처음에는 이 것도 부작용이 있었다. 도시에 내려가는 일이 생기면 미친 듯이 소비의 욕구가 올라오는 거다. 대부분은 식욕인데, 온갖 군것질을 배 터지게 하다가 갑작스러운 복통과 소화불량을 몇 번 겪으면서 그 또한 익숙해졌다. 내가 아는 그 맛이었다. 그렇게 나의 욕구에 대한 지연 반응이 자연스러워지면서 느리게 살기는 시작되었다.


바쁘진 않은데, 하고 싶은 일만 합니다


나의 주된 역할은 한 가정의 아내이고, 엄마이고, 딸이며, 며느리이다. 나는 나에게 주어진 이 역할들을 거부할 마음이 없다. 내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가족”과 함께 책임져진 역할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 생활의 대부분은 세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의 역할이다. 그 외에는 매일 가볍게 운동을 하고, 글을 쓰고, 기타를 배운다. 블로그와 인스타 등 틈틈이 sns로 사람들과 소통을 한다. 아이들의 유치원과 학교 행사에 때때로 품을 낸다. 일주일에 한 권 정도의 책을 읽고, 좋아하는 작가의 북콘서트나 독서 모임 등도 참여한다. 일주일에 두세 번은 저녁에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한다. 중간중간 가족행사와 그런 이벤트를 제외하면 대게 이렇다.


대체 뭐가 바쁘지 않냐고 야유하는 사람들이 있다. 음, 많다. 그런데 정작 나의 아이들은 내가 바쁘다는 것에 동의하지 못할 것이다. 엄마는 대부분 자기들과 같이 집에서 빈둥거리는 사람이니까. 뒹굴 거리며 휴대폰을 보거나, 자기들과 깔깔 거리며 놀거나. 그러니 아이들에게 엄마는 한없이 놀고 있는 사람이다.


나는 책을 좋아하고, 음악을 좋아하고, 몸을 움직이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그것과 관련된 활동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신나서 한다. 언젠가 신랑이 함께 영어를 배우자고 했지만 단칼에 거절했다. 나는 지금 그것에 관심이 없고, 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정도는 해야지.’ 혹은 ‘이건 해야 하는 거야.’ 그런 마음은 결국 내가 아닌 남의 관점이다. 영어 공부도 자기 계발도 다 좋지만, 그게 정작 내가 좋아하는 건지 남에게 좋아 보이는 건지 구분이 없다면 쓸데없는 시간을 낭비하는 것 아닐까. 사람을 좋아하지만 에너지와 체력의 한계가 있어서 비중이 크지 않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 말고도 가족 안에서의 역할이 많기 때문에 모든 사람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없고, 원치 않는 관계에 매어있을 수가 없다. sns를 하는 이유는 시간은 없고, 소통은 하고 싶고, 관계의 끈을 놓고 싶지 않아서가 가장 큰 이유일 수가 있다.

하고 싶지 않은 일까지 열심을 다하며 살고 싶지 않다. 앞으로도 하고 싶지 않은 일에는 철저히 게으르게 살 예정이다. 혹자는 그런 나를 이기적이라고 할 수 있다. 착한 아이로 살고자 했던 어린 시절의 나는 원치 않은 일을 억지로 하느라 힘들었지만, 37살의 나는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해, 누군가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마음이 시키지 않는 일에 열심을 다하고 싶지 않다. 그 때문에 미움받을 일이 생긴다면 슬프지만 어쩔 수 없다. 얻는 것이 있으면 늘 잃는 것이 생기더라.


삶의 리듬감을 위한, 삭제


사는 것이 너무 바쁘고 정신없다고, 무언 가를 하고 싶어도 시간이 없다는 사람들이 많다. 요즘 세상이 얼마나 복잡하고 빠르게 돌아가나. 당연하다. 바쁠 수 있지. 그 일들이 중요할 수 있지. 그런데 정말 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 시간이 없는 사람들은 생각해봐야 한다. 하고 싶은 일이 있다는 것 자체가 어마어마한 일이라는 것을! 그렇다면 그건 꼭 해봐야 하지 않겠나.

자신의 시간을 잘 들여다보자. 어쩌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일, 남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일들의 비중이 많을 수도 있다. 만약 그런 일을 발견했다면 과감하게 뒤로 밀어보거나, 혹은 삭제해도 좋지 않을까? 즐겁고 신나는 일을 끼워 넣는 순간 삶의 리듬이 생긴다. 남들과 똑같이 살지만 발걸음이 가벼워질 수 있다. 삭제된 일로 인한 타인의 불만은 무시할 만큼 즐거워질 수 있다.


무언가 하고 싶다는 생각만 하며 37년을 살아온 여자가 있다. 늘 상상만 하며 미래의 언젠가를 꿈만 꾸던 여자가 있다. 돈이 없어서, 시간이 없어서, 아기가 있어서, 사람들 눈치가 보여서, 용기가 없어서, 수 만 가지 이유를 대며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여자가 있다. 누구겠나, 이 글을 쓰는 바로 나다. 뒤에서 수줍게 웃기만 하던 그 세월이 너무 아까워서 나는 한다. 채울 건 채우고, 삭제할 것은 과감히 지운다. 내 삶에 리듬이 생겼다. 음악이 흐르기 시작했다. 나는 지금만큼 삶이 짜릿하고 재밌었던 적이 없다. 그러니 이건, 진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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