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 집은 냄새나
“엄마! 친구들이 우리 집에 냄새가 난대.”
아이가 현관문을 열자마자 버럭 소리를 지르며 들어왔다. 꼬마들이 어린이집에 입소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날이었다.
“어머나, 엄마가 밖에 나가서 기다릴걸. 우리 딸 속상했겠네.”
깜짝 놀라 말하니 금세 달려와 눈물을 글썽이는 아이의 등을 토닥거렸다. 영문도 모른 체 화가 난 언니를 쫄래쫄래 쫓아온 동생은 엄마가 언니만 안아주자 울음을 터트렸다. 나는 아이들을 달래며 울었다. 아마 나도 꽤 오랜 시간 울고 싶었는데 참고 있었나 보다.
그렇게 세 모녀가 부둥켜안고 엉엉 울다가 눈이 마주쳤다.
“크크 크큭”
이 상황이 그저 웃긴 동생의 웃음으로 우리는 또 울다가 웃었다. “뭐야, 진짜.”하면서 웃고, “엄마 눈이 토끼 같아.”하면서 또 웃었다. 이 곳으로 오면서 가장 고민했던 일, 걱정했던 일이었다. 그래, 우리는 그렇게 살 수 있다고 치자. 우리는 이 곳에서 즐겁고 행복할 수 있다. 그런데 다른 사람도 우리를 그렇게 바라볼까? 어른들은 뒤에서 수근거릴 뿐 얘기를 못할 수도 있다. 자기 마음에 솔직한 아이들은 그렇지 않을 텐데. 우리 아이들은 상처 받지 않을까? 그렇게 걱정했던 일이 터진 것이다. 처음에는 몇 걸음 되지 않으니 병원 근처에서 아이들을 하원 할까 하다가 일부러 집 앞에서 아이들을 하원 했다. 어린이집 차량이 하수처리장 안으로 들어오도록. 밖에서 등·하원을 할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한들 숨겨지는 것도 아니고, 숨길 일도 아니었다.
“친구들이 왜 그렇게 말했어?”
“몰라. 집에 들어오는 데 애들이 막 코를 막았어.”
“정말? 친구들처럼 연아도 냄새가 나는 것 같아?”
“아니? 엄마 나는 진짜 냄새 안 나는데.”
“엄마도 그래. 지금은 냄새 안 나는 것 같아. 그래서 연아는 기분이 어땠어?”
“기분 나빴어. 왜 우리 집에 냄새난다고 해?”
5살, 3살 밖에 안 된 꼬마들이었다. 아이들에게 우리가 사는 곳이 하수처리장이라고 얘기하지 않았다. 일부러 하지 않았다기보다는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실제로 걱정했던 것보다 냄새가 나지 않았다. 물론 비가 오기 전 무렵은 냄새가 나기도 했지만, 평상시에는 그렇지 않았다. 바로 옆 요양병원의 항의로 관리가 잘 이루어지고 있는 곳이었다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엄마 생각에는 아마 친구들도 누군가한테 듣지 않았을까? 거기는 냄새가 나는 곳이라고. 음, 그래서 냄새가 안 나도 냄새가 나는 것처럼 느껴지는 거지.”
“왜 냄새가 나는 곳이라고 했어? 진짜 냄새 안 나는데!!”
“사람들마다 생각하는 게 다 달라서 그럴 수 있어. 여기는 지저분한 물을 깨끗하게 만들어주는 곳이거든. 지저분한 것을 먼저 생각하면 냄새가 난다고 느낄 수 있고, 깨끗하게 만들어주는 곳이라고 생각하면 고마운 곳이라고 할 수 있어. 연아 생각은 어때?”
“연아 집은 고마운 곳이야! 깨끗하게 해주는 곳이니까!”
“그래. 혹시 친구들이 또 그렇게 얘기하면 설명해줘. 연아처럼 아직 잘 몰라서 그랬던 거니까.”
아이에게 이야기를 하면서 나도, 내 마음에게도 그리 말했다.
여기는 고마운 곳이라고. 우리의 새로운 시작을 힘껏 도와주는 곳이라고.
처음 이 곳에 와서 한동안 나는 나를 둘러싸고 있던 빛나는 갑옷들이 다 사라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마치 발가벗겨진 그런 기분, 그래서 그 안의 나까지 초라해진 것 같은 그런 슬픔 같은 것이 있었다. 본래 나는 타인의 시선이나 감정을 굉장히 의식하고 위축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이 곳에서 사는 것보다 남들의 시선이 나를 향할까 봐 눈치를 보는 것이 힘들었다. 어린이집 엄마들을 만날 때도 어디 사냐고 물을 때 자신 있게 말하지 못했다. 대충 말을 얼버무리곤 했다. 그렇게 돌아오는 길엔 내가 너무 바보 같아서 자책을 하기도 했다. 아이가 그런 이야기를 할 때 비로소 깨달았다. 나는 그동안 나를 둘러싸고 있는 것들, 내가 다닌 학교와 내가 사는 집과 내가 손에 쥔 물건들로 나의 존재를 평가하고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알맹이만 남겨진 나를 내가 스스로 얼마나 부끄러워했는지를 깨달았다. 그때부터였다. 누더기 옷을 입고 있을 지언 정 나 스스로 빛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우리 가족이 작은 집이라 부르는 그 집은 우리에게 사진 한 장으로 남았다.
무지개가 살짝 걸쳐진 그 집의 사진, 그것은 희망이었다.
우리는 어쩌면 돈을 위해 이 작은 집을 선택했다. 그 이유가 모든 이유의 99%를 차지하고 있었을지 모른다. 나는 이곳에서 1년을 조금 넘게 살았다. 그리 긴 시간도 아니었다. 그런데 그 1년이란 시간은 내 인생에 엄청난 방점을 찍었다. 그 이전이라면 돈을 주고 살라고 해도 못 살았을 이 집이, 아주 적절한 때에 우리가 인생의 항로를 변경할 때 우리 앞에 나타났다. 좀 더 철저하게, 좀 더 처절하게 자신을 단련하라는 누군가의 힘이 아니었을까. 집은 그저 우리가 편히 누워 쉴 수 있는 곳, 따뜻하게 앉아 이야기할 수 있는 곳의 기능만 하면 충분하다는 것을 알려줬다. 가난도 인생의 한 선택지가 될 수 있음을 알려줬다. 나 스스로의 힘으로 설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줬다. 결국 내가 이 글을 쓰게 된 동력도 그때의 그 귀한 경험 때문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