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을 선택하다
하수처리장 가봤니?
신랑의 이직 후, 우리는 이사를 준비했다. 건설 회사를 다닐 당시에도 현장을 따라 3번의 이사를 했으니 이사는 나에게 큰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번엔 결정이 쉽지 않았다. 정착을 해야 하니 신중하기도 했고, 생활비가 확 줄어든 터라 집을 선택할 때도 마음의 위축이 있었다. 계속 고민만 하다 보니 두 달의 시간이 흘렀고, 나는 여전히 집을 구하지 못했다. 그때 신랑이 지나가는 듯 이직한 회사에 사택이 있다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오빠, 관사가 있다고 했었잖아?”
“아아, 그랬지.”
“거기 우리는 못 들어가나?”
“내가 한 번 알아봤는데, 우리는 못 갈 것 같아.”
“아직 입사한 지 얼마 안 돼서 못 간대? 우리 이제 계속 거기서 살아야 하는데 그 동네 적응하면서 천천히 집을 구해도 좋지 않을까? 방법이 없는 거야?”
“아니 그건 아니고. 자리는 있어. 들어간다고 하면 갈 수는 있는데, 안 가고 싶을 건데? (웃음).”
“왜? 너무 별로야? 보기만 하자. 보는 데 돈 드는 것도 아니고?”
“여기야,” 신랑은 웃으며 스마트 폰으로 집의 위치를 찾았다.
신랑이 손으로 콕 찍은 곳은 공장과 병원 사이의 공터였다. 지도에 어떤 표시도 되어있지 않았다.
“공장 때문에 그래? 그래도 잠깐 살 건데 어때?”
지도로 대충 동네를 짐작하며 이 곳이 살기에 적합한 곳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 관사는 직원이 무료로 쓸 수 있는 곳이었다. 보증금이나 월세도 없었다. 못 갈 이유가 전혀 없었다.
“진영아, 여기 하수처리장이야. 지도에 표기만 안 되어있을 뿐이야.”
“하수처리장 안에 있어. 이 집이.”
“헉!”
깜짝 놀랐다. 하수처리장이라니. 그래도 한 번 구경은 해보고 싶었다. 다른 사람들도 살고 있는 곳이니까, 가지 못할 이유가 있나! 나는 지금 뭐든 할 수 있는 새로운 기운이 충만한 여자였다. 겨우 신랑을 설득해서 집을 보러 갔다. 지도에서 봤던 병원은 아주 큰 요양병원이었다. 그 요양병원과 창고 형 공장 사이로 들어가자 파랗고 둥그런 덮개들이 보였다. 길의 왼쪽으로 하수처리 시설들이 있었다. 하수처리장 안을 살면서 들어올 일이 있나. 그렇게 넓은 부지에 즐비한 하수처리시설들을 보며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거기에 2층짜리 12가구쯤 살 수 있는 가로로 긴 빌라가 있었다.
“와우, 정말 재밌는 곳이네.”
내가 본 집은 가로로 긴 빌라의 끝에 위치한 1층 집이었다. 유리문을 열고 들어가면 복도가 좀 길었는데 등은 나갔고, 거미줄과 먼지가 켜켜이 쌓여 있었다. 빛바랜 에메랄드 색의 현관문을 열고 들어갔다. 방 구석구석에 곰팡이가 피어 있었다. 세탁기를 놓는 아주 작은 베란다는 흙더미였고 창고 선반들은 부서져있었다. 집 내부에 있는 보일러실은 오래된 식당의 화장실에서 볼 법한 철문이 달려있었다. 심지어 문지방은 다 일어나 찢어져있었다. 어떻게 문지방이 부서진 것도 아니고 찢어져있지?라고 신랑에게 물었더니 몇 년 전 이곳에 홍수가 나서 사택이 물에 잠겼었다고 했다. 1층은 천정까지 완전히 물에 잠겼던 터라 그렇다고. 싱크대는 그때 교체가 돼서 깨끗하다며, 물론 둑을 높게 쌓아서 이제 홍수 걱정은 안 해도 된다는 말도 덧붙였다.
세상에! 후다닥 집을 나왔다. ‘못 볼 것을 보았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돌아와 잠을 거의 이루지 못했다. 눈이 퀭해진 나는 신랑과 며칠 만에 마주 앉았다.
“오빠, 그 집으로 이사를 가야겠어.”
“나는 살 수 있을 것 같아. 오빠는 살 수 없을 것 같아?”
“나야 상관없지. 그런데 진짜 살 수 있어? 나는 거기 안 갔으면 좋겠어.”
“왜 안 갔으면 좋겠어?”
“사는 건 상관없어. 그런데 가장으로서 가족을 그런 곳에 살게 하고 싶지는 않아.”
그런데 그 말을 하는 신랑이 그렇게 든든할 수가 없었다. 가장의 무게를 감당하고 있는, 가족들을 편안하게 살게 하고 싶어 하는 그 말이 나의 마음을 더 움직였다.
“오빠 나는 돈 주고도 못할 경험일 거라고 생각해. 우리가 살면서 그 보다 더 못한 집에 살 일은 없지 않겠어? 생각해보면 이건 굉장히 멋진 일이야. 새로운 시작을 전혀 생각하지 못한 곳에서 하는거야.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아 보는 거지!”
신랑은 굉장히 의외인 듯 나를 바라보았다. 집을 보면 이런 곳을 애초에 왜 얘기했냐고 난리 나 치지 않으면 다행이라 생각했을 테니까.
“이건 그냥 이상적인 이야기고 물론 현실적인 이유가 가장 커. 나는 오빠가 벌어다 주는 월급으로 충분히 살 수 있을 것 같긴 한데 아무리 계산을 해봐도 저축은 좀 하기 힘들 것 같아. 그럼 우리한테 미래가 없잖아. 행복하게 살고 싶지만 평생 가난하게 살고 싶은 건 아니야. 그렇지만 우리가 일생 중 어느 시점에 가난을 선택할 수는 있지 않겠어? 인생의 리프레시를 위해서. 어때. 멋지지 않아?”
어이가 없다는 듯 웃는 신랑에게 말했다. 나는 그곳으로 이사할 거라고.
가난을 선택하다
나는 가난을 선택했다. 그저 가난을 인생의 한 선택지로 받아들였을 뿐이다. 부자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다음 행보를 위해, 마치 소로가 숲 속에 나무집을 짓고 인생 실험을 한 것처럼 우리도 하수처리장 안의 작은 집에서 가난 실험을 하는 것이다. 사실 이런 거창한 명분이라도 있어야 내가 버틸 수 있었다는 것은 비밀 (웃음).
2016년 8월 그 뜨거운 여름, 신랑과 나는 귀신 나올 것 같은 집을 조금이라도 살만하게 만들기 위해 참 애를 썼다. 곰팡이 제거를 하고 도배와 장판을 새로 하고, 부서진 곳을 고쳤다. 흉물스러웠던 보일러실 문과 영롱한 에메랄드 빛 현관문도 코발트색으로 예쁘게 페인트칠을 했다. 복도의 등을 갈고 거미줄을 제거하고 먼지도 깨끗이 쓸어냈다. 그렇게 다시 보니 꽤 맘에 드는 집이었다. 우리만의 단독 출입구가 있고, 자전거를 신나게 타도 안전한 아주 넓은 마당이 있다. 우리가 꿈꾸던 전원주택의 모습과 비슷한가? 아참, 여긴 하수처리장이지.
전의 집의 반도 안 되는 아주 작은 집으로 이사를 해야 했기에 대부분의 가구들은 가져갈 수가 없었다. 꼭 가져가야 하는 짐의 우선순위를 매겨서 선택된 것들 빼고는 다 벼룩시장에 팔고 친정 시골집으로 보냈다. 그때 우리 집에서 소파와 텔레비전이 사라졌다. 안방에는 침대와 화장대, 거실에는 피아노와 장난감 상자, 작은 방에는 책상과 책장 그리고 창고 같은 방에 드레스 룸을 만들었다. 그 작은 집에는 꼭 있어야 할 짐과 우리 네 식구만 있었다.
“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그렇게 시작된 여름, 나는 또 다른 복병을 만났다.
들어는 봤는가, 돈. 벌. 레.
이 집은, 돈벌레의 천국이었다. 관리가 안 되던 집에서 몸집을 키우고 있던 돈벌레가 수 십 마리 기어 다녔다. 나는 그 벌레를 그곳에서 생전 처음 보았다. 하루에도 수 십 번씩 비명을 질렀다. 신랑은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벌레를 잡고 다시 자러 갔다. 이런 코믹하고 기가 막히는 상황 속에 우리 가족의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다.
작은 집에서 복닥복닥 하루를 보내고 6시가 조금 넘으면 집에 오는 아빠와 같이 밥을 먹고, 마당을 뛰놀다가, 아이들이 잠들면 배달도 안 되고, 텔레비전도 없는 적막한 집에서 돈벌레를 잡는 이 평화롭고 우스운 하루를 보내면서 우리도 조금씩 달라졌다. 그저 우리끼리만 있어도 웃음이 깔깔 나오는 즐거운 날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