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르지만 성실합니다.
to do list 말고 done list
어느 한 부분 조임 없는 느슨한 옷을 입고 폭신한 이불을 대충 둘둘 말아 다리에 낀다. 벽에 기대어둔 책을 몇 장 넘기다가 스르륵 잠이 든다. 지금이 아침인가, 저녁인가? 잠시 구분을 못하는 몽롱한 시간 뒤 아직 오후 언저리의 낮잠이었음을 자각하고 나면 절로 입꼬리가 씨익 올라간다.
일상을 표현할 때 내가 유독 많이 쓰는 의태어는 '뒹굴뒹굴'이다. 하루를 곱씹다 보면 그런 순간이 늘 존재한다. 집과 일터의 구분이 없어서, 엄마와 일 사이의 경계가 없어서 그런 건가. 조금만 마음을 놓으면 어느새 가장 안락하고 폭신한 공간에서 뒹굴거리고 있다.
달콤한 기분과는 별개로 이런 내 모습이 썩 마음에 차지 않았다. 최근까지도 그랬다. 태생이 게을러터져 해야 할 일도 제대로 못하고, 오랜 시간 집중도 못하는 내가 답답하기도 했다. 깜깜한 밤이 되면 시간을 낭비한 것 같은 스스로를 자책하곤 했다. 처음엔 내가 뭘 하고 있는지 몰랐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업인지 취미생활인지 알 수 없어서, 남편이 벌어온 돈으로 자아실현을 하고 있는지 남편과 동등하게 집안 경제에 보탬이 되는지 전혀 구분이 되지 않아서 그랬다. 더 이상 주부만이 아닌 책방 주인이든, 기록 생활자든, 콘텐츠 크리에이터든 무엇인지 분명하진 않지만 어쨌든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자각한 후 나는 나의 게으름에 대해 더욱 가열차게 비난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남으면 좀 더 적극적으로 강연 제안을 하고, 책방 수입을 늘릴 만한 기획을 해야지. 밥벌이를 궁리하란 말이야!' 해야 할 일이 이렇게 많은데 종일 도대체 무엇을 했냐며 자체적으로 상사 모드가 되어 부하직원 꾸짖듯 꾸짖었다. 이불로 들어가고 싶은 날은 짐을 싸서 카페로 갔다. 일을 해, 일.
두 번째 책을 쓸 때 즈음 완전히 궁지에 몰렸다. 쉴 때도 쉬지 않을 때도 죄책감이 생겼다. 좀 더 부지런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산적인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나를 채근했다. 매일 새벽에 일어나 글을 쓰고, 아이들을 모두 등원시키고 나면 돈이 되는 일들을 했다. 시도 때도 없이 골골거렸다. 어느 날은 전원이 나간 로봇처럼 12시간 이상을 깨지 않고 잠들었다. 살인지 붓긴지 모를 것들이 나를 점점 비대하게 만들고 있었다. 이 고충을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으니 더 답답했다. 혼자 하는 일은 편안했지만 때때로 벽에 가로막힌 듯 외로웠다. 더 이상은 안될 것 같았다. 매일 새벽 일어나 쓰던 원고를 접고 남편과 요가를 시작했다. 처음엔 시간 낭비 같았다. 새벽을 날리면 안 되는데, 조급했지만 그것도 잠시. 영상에 집중해 한 동작 한 동작 버티고 땀을 흘리다 보니 어느새 몸만큼 마음도 이완되었다. '잘했다.' 처음으로 나에게 칭찬을 했다. 잠깐의 정지였지만 이 시간은 내 안의 소리에 귀 기울이게 했다. '나 사실은 꽤 성실한 사람이야. 나 잘하고 있어.'
24시간 cctv로 살펴보듯 바라보면 나는 한없이 게으를지 모르지만 일 년을 통으로 보면 나는 아주 성실한 사람이었다. 매일 글을 쓰지는 않지만 지난 4년 동안 글 쓰기를 멈춘 적은 없다. 일 년에 몇 백 권씩 책을 읽지 못하지만 책을 손에서 떨어뜨린 적은 없다. 브랜딩이나 마케팅의 관점에서 의도를 가지고 콘텐츠를 생산하지는 않지만 '나'라는 사람의 태도와 통찰을 꾸준히 기록했다. 설거지와 빨래가 밀릴 때도 있지만 가족이 안락하다고 느낄 정도의 청결함은 유지한다. 시도 때도 없이 연락하고 만나지 못하지만 주변 사람들을 챙기는 일에 소홀히 하지 않는다. 다만 영양제 챙겨 먹듯 꼬박꼬박 폭신한 이불속 시간을 포기하지 않을 뿐이다. 조금 허술한 계획과 루틴을 가지고 쉽게 질리지도 않고 느릿느릿 잘도 걸어가는 사람이었다.
언젠가부터 해야 할 일(To do list)을 쓰지 않았다. 잔뜩 많은 것들을 써놓고 하나도 실행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대신 한 일(done list)을 적기 시작했다. 해낸 일이 하루에 하나였던 날조차 의미를 두었다. 개수는 중요하지 않다. 얼마나 마음을 다해 제대로 몰입했느냐가 더 중요한 일이다.
애써 채근한 시간. 여유롭지만 여유롭지 않았던 마음에서 벗어나 한껏 게으름을 피우면서도 좋아하는 것에 몰입하는 사람으로 사는 실험을 하는 중이다. 그런 사람이 되었다고는 못하겠다. 여전히 사회는 불안을 조장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질책하고 빠른 성과를 내야 한다고 강요한다. 그런 사회 속의 나는 때때로 불안할 것이고 나를 의심할 것이고 또다시 나에게 매서운 채찍질을 할지도 모른다. 그럴 때마다 나는 "게으르지만 성실한 사람"이라는 나의 정체성에 대해 떠올릴 것이다. 한 번에 불타오르고 쉽게 지쳐버리는 사람보다 군불처럼 오래오래 온기를 가진 사람으로 사는 것도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