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날 작가 May 30. 2022

남편, 내 손을 잡아.

내 안에 또 다른 나

이전의 삶이 기억나지 않을 만큼 많은 것들이 변했다. 겉으로 드러나는 결과물도 그렇지만 진짜 변화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었다. 나에 대한 온전한 믿음, 내가 가진 것들을 오롯이 사랑하는 마음,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고 이해하는 마음.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자기 확신이 생겼다.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내가 되었다.

    

나를 찾아가는 여정의 시작은 언제부터였을까. 아마도 시간을 거슬러 한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하고 독립된 성인이 되었다고 생각했을 때, 아이를 낳고 기르며 나의 약하고 실망스러운 모습을 마주했을 때 그리고 남편과 다시 처음부터 우리의 삶을 살아보자고 결심했을 때. 여러 번에 걸쳐 나는 조금씩 진짜 나라는 사람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현실의 참담함을 마주했을 때 남편과 나는 새로운 꿈을 꾸기 시작했다. 비록 우리가 가장 밑바닥으로 던져진다고 하더라도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보자고 결심했다. 모범생으로, 착한 아들로 살아온 이전에는 상상도 못 했던 일들을 저질렀다. 이직을 했고, 하수처리장에서의 일 년을 보냈고, 여기, 남한산성까지 오게 되었다. 분명 그랬다. 같은 꿈을 꾸며 두 손을 맞잡고 왔다.


나의 기록은 거기서부터 시작했다. 우리가 변화를 꿈꾸며 걸어온 과정의 기록은 한 권의 책이 되었고, 주저하며 세상 밖으로 빼꼼 나왔던 나는 어느새 성큼성큼 걸어 여기까지 왔다. 그렇게 4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지금, 거울 속의 또 다른 나를 바라본다.


거기엔 예상치도 못하게 남편의 얼굴이 보였다. 함께 손잡고 던 그가 거기 있었다. 내가 나를 찾아 열심히 헤맬 때 온전히 그리 할 수 있도록 지지해 준 그가 있었다. 남편이 나의 또 다른 나라고 생각하는 내 무의식에 놀라면서도 희한하게 그가 거울 안에 있는 것이 내심 마음이 아팠다. 내 등을 열심히 밀어준 그는 아직 그곳에 있는 것 같았다. 손을 내밀었다. 어서 나오라고. 내 뒤가 아닌 내 옆에서 손을 맞잡고 싶어졌다.





글 쓰고 노래하는 엄마로 3년 넘는 시간을 보내며 내가 느낀 건 나를 표현하는 도구가 다양할수록 더욱 다채로운 나를 찾아갈 수 있다는 거다. 낯선 상황, 익숙하지 않은 행위에서 뜻하지 않게 새로운 나의 감정을 직면하게 되기도 한다. 오늘처럼 말이다. 내 안에 또 다른 내가 있다고 한다면 어떤 모습일까?라는 질문을 받고 스윽스윽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림이 서툴고 잘 그릴 줄도 모른다. 그저 마음이 이끄는 대로 오일 파스텔을 슥슥 문지르다가 문득 발견했다. 남편을 닮은 사람을 그리고 있는 나를. 거울 속 그를.


선생님은 그림의 의미를 글로 표현해 보라고 했고 나는 위의 글을 썼다. 크게 고민하지 않고 써내려 간 글을 낭독하는 순간 감정이 울컥 넘쳤다. 나도 모르는 내 마음의 한 조각이었다. 그에게도 시간이 필요했다. 그에게도 지지해주는 내가 필요했다. 아마도 나는 이 마음을 가슴에 품고 꺼내지 못하고 있었던 것 같다.

밖에서 남편을 이야기할 때 늘 그가 이 모든 일의 시작이라고 말하는 이유도 어쩌면 함께이고 싶었던 내 마음의 다른 표현이었음을 알 것 같았다. 남편의 말대로 어쩌면 나에게 조금 여유가 생겼는지도 모르겠다. 나를 찾는 여정을 잠시 멈추고 주위를 돌아볼 여유 말이다.





이제 내가 당신을 힘껏 밀어줄 테니.

내 마음이 변하기 전에,


지금 내 손을 잡아

그냥 내 손을 잡아

매거진의 이전글 크리스마스의 악몽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