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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날 작가 Aug 16. 2022

폭우가 남기고 간 것

평안을 빕니다

산 중턱에 터를 잡은 지 6년이 다 되어간다. "위험하지 않아?"라고 묻는 지인들에게 고개를 저었다. 일 년에 한 번 즈음 폭설로 길이 통제될 때 말고는 위험하다고 느껴본 적이 없었다. 그런 날마저도 신나게 썰매를 들고 마을을 배회하는 꼬마들을 보며 내 선택이 옳았다고 내심 흐뭇했다.


그러나 이번엔 달랐다.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상황의 심각성을 알지 못했던 나는 온라인 글쓰기 모임을 리딩하고 있었다. 들락날락거리는 남편의 소리가 거슬리긴 했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수업을 막 마무리할 때 즈음 인터넷부터 모든 전기가 나갔다. '무슨 일이지?' 스마트폰 불빛에 의지해 주변을 둘러보니 남편이 없었다. 전화를 걸어봐도 통화가 되지 않았다. 급하게 창문을 열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은 새카만 시야와는 달리 콸콸콸 흐르는 계곡 소리와 빗소리가 천둥처럼 고막을 때렸고, 빗물이 사정없이 얼굴로 튀었다.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겁이 막 날 즈음 남편이 홀딱 젖어 들어왔다.


"차를 뺄 수가 없어. 차까지 걸어갈 수도 없어. 도로에 계곡 물이 넘쳤어."


우리는 작은 개울 앞에 산다. 가정 책방을 열면서 가장 장점이라 여겼던 환경이다. 산새 소리와 졸졸 흐르는 물소리. 자연의 소리와 함께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이었다. 그러나 얼굴을 바꾼 자연 앞에서 힐링 따위는 없었다. 그저 이 밤 아무 사고 없이 비가 그치기만을 바라다가 동틀 무렵 잠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마주한 상황은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최악이었다. 뉴스에서 계속 물에 잠긴 도로와 차를 연신 비췄지만 그런 것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우리 마을은 계곡 물이 넘쳐 1층 식당들의 집기류가 쓸려 나갔다. 계곡 옆에 세워뒀던 우리 차는 말할 것도 없었다. 이 정도는 그저 감사해야 했다.






윗마을은 산사태였다. 산이 무너지며 토사물과 부러진 나무로 도로가 막히고 끊겼다. 산 아래쪽 집들은 뭐라 말하기도 어려울 정도였다. 벽도 창문도 무너지고 깨졌다. 물에 잠긴 집 소식이 곳곳에서 들렸다.

남일이 아니었다. 모두 우리 이웃이었다. 같이 학교를 보내는 학부모들이었다. 항상 느긋하고 푸근한 언니가 엉엉 울었다는 이야기까지 들리니 가슴이 무너졌다. 갑작스럽게 일어난 자연재해에 할 말을 잃었다.


도로가 끊겨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 그럼에도 수습을 하기 위한 손길이 분주히 움직였다. 지방자치단체나 국가의 손길은 오지 않았지만 조금이라도 나은 상황에 있는 사람들이 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함께 물을 빼고, 집에 가득 찬 흙을 퍼냈다. 순식간에 잘 곳을 잃은 이웃에게 자기 방을 내어주고 밥을 차렸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밖으로 재난 상황을 알리고 도와달라고 요청하는 일뿐이었다. 비는 멈추지 않았지만 사람들의 넘치는 마음도 계속되었다. 드디어 해가 떴고, 마을은 복구되고 있다.




살면서 이렇게까지 무기력함을 느껴본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어떤 일도 손에 잡히지 않고, 무슨 말을 할 수도 없었던 시간. 다른 이의 고통에 속수무책 수수방관해야 했던 괴로움. 그 절망적이고 부끄러운 마음이 나를 할퀴고 생채기 냈다. 그 감정을 잊지 않으려고 글을 쓴다.


어제는 성모승천 대축일이었다. 하느님이 성모 마리아를 하늘나라에 들어 올리셨음을 기념하는 날이라고 한다. 결혼 이후 남편을 따라 천주교로 개종한 나는 여전히 성당은 낯설고 교리에도 익숙하지 않다. 그래도 내 세례명이 성모 마리아를 뜻하는 '스텔라'이고, 스텔라의 축일이 8월 15일, 성모승천 대축일임은 알고 있다. 시댁 식구들에게 "스텔라 축일 축하한다. 너를 위해 미사 때 기도했단다."라는 전화를 받았다. 그 따뜻한 마음에 가슴이 뭉클해졌다. 비록 성당에 가서 미사를 드리진 못했지만 마음을 담아 한 가정에 축복을 보냈다. 가장 어렵고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을 그녀에게 나의 작은 마음이, 하늘의 손길이 닿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고마워요. 내가 살면서 조금씩 갚을게요." 울먹거리는 목소리에 전화를 끊고 마음이 먹먹해졌다. 따뜻한 마음에 은총을 빈다는 그녀의 메시지에 또 한 번 부끄러움이 밀려온다.


죄책감은 잊지 말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자. 무기력한 이 시간을 나중에 더 후회하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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