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빛작 Jan 21. 2021

과욕은 찰랑찰랑 넘치는 술잔과 닮았다



회식 자리에서 또는 집에서 술을 따라주어야 하는 경우가 있다. 소주잔은 작지만 고봉밥 푸듯이, 잔을 꾹 채워 따른다. 이크... 상대방은 왜 이리 잔을 가득 채우냐며 웃거나 잔을 급히 거둔다. 주도가 아닌가보다.



상대방의 이야기라면 뭐든 다 긍정적이고, 무슨 말이든 완전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때로는 받는 사람 입장에서는 겉으로는 웃지만 괜찮다며 사양을 하게 된다. 지나친 관심이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와인을 마실 때에 잔에 따르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르다. 잔의 꼭대기로부터 손가락 두 마디가 내려오는 높이까지 따르거나 반만 따른다는 사람도 있다.  와인을 처음 마시는 사람이라도 잔에 빈 공간을 남겨두어야 한다는 법칙쯤은 알고 있다. 와인을 따른 후 잔을 빙빙 돌린다. 잔의 공간을 남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잔을 돌리는 것은 왜일까? 이것은 향이나 맛을 최대로 끌어올리기 위한 것이다. 산소와의 접촉, 즉 산화 면적을 넓히기 위해 적게 따르고 돌리는 것이다. 그리고 첫 향의 기대감을 갖게 하는데 목적이 있다. 기대감이 고착되면 다음 미각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라고 한다.



챙겨주는 사람 입장에서는 하나라도 더 좋은 것을 주려고 한다. 혹은 자신의 첫인상을 강하게 남겨서  부디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고 오래 기억해 주었으면 하는 바램으로 힘껏 푸시할 때가 있다. 하지만 받는 사람 입장에서 누군가의 첫 느낌과 분위기가 지나치게 강하다면, 눈 앞에서는 안절부절 못할지도... 다음에 또 만남을 가져야 하나 고민할지도 모른다.





잔의 7할을 채우면 모두 밑으로 흘러내려 버리는 계영배가 있다. 계영배에 적힌 문구이다.


" 가득 채워 마시지 않기를 바라며, 너와 함께 죽기를 바란다."

 <조선의 거상 임상옥이 가지고 있었다고 함 >


계영배의 비밀은 잔 속의 기둥, 기등 밑의 구멍에 있다. 기둥 안에는 말굽자석 모양의 구부린듯한 관이 숨어있다. 술을 적당히 따르면 기둥 밑의 구멍으로 들어간 술이 기둥 안쪽 관의 맨 위까지 넘어가지 않기 때문에 술이 아래쪽으로 새지 않는다. 술을 가득 부으면 기둥 속의 관 맨 위까지 차서 관을 넘어가 아래쪽으로 빠지게 된다.잔 내부와 기둥 내의 압력 차이로 인한 원리이다. <사이펀의 원리는 집안의 변기에도 적용된다)



 '넘침을 경계하는 잔'이라는 뜻을 가진 계영배는 '과욕을 하지 말라'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다. 이 말은 술 뿐만 아니라 사람과 관계된 것들의 욕심이 지나치지 않아야함을 뜻하기도 한다. 일도 성공도 명예도 사랑도 말이다. 

과욕을 부렸다가는 언젠가는 깨지고 사라지는 것은 다반사였으니까.


술을 따르는 양을 줄이는 것이 사소할 수 있지만 음주량을 줄일 수 있다고 한다. 요즘은 술을 곁들인 식사 자리 자체가 많이 줄었지만 말이다. 음주량을 줄이고 건강도 챙기고 욕심을 줄이는 습관도 들이는 동서양의 '와인잔과 계영배'의 지혜가 무릎을 탁 치게 만든다.




잔 하나를 가득 채운 맥주의 거품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사람 사이에서도 마찬가지로 진심을 뺀 거품만을 준다면 그 사람을 믿지 못하고 좋아할 수 없는 건 당연하다. 사람을 만날때에 적당한 정성과 은은한 향이 품어나와야 사람이 모인다. 친구사이에서나 동료사이에서나 지나친 집착과 과욕은 찰랑찰랑 넘치는 술잔과도 닮았다. 사람들은 첫 향의 기대감을 좋아한다. 첫 만남의 설렘을 좋아한다. 사람의 향기와 맛이 은은해야 오래 간다. 술 잔을 반만 채워야 즐겁게 또 다시 자리를 가질 수 있다. 사람과의 만남에 있어 관심과 호응도 7할정도면 될까 생각해 본다. 



날씨가 모처럼 푸근하다 했더니, 빗소리가 들린다. 맥주가 먹고 싶다. 오늘 저녁 과하지 않게 맛과 향을 음미하면서 반 잔만 마셔야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