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이름은 에디였다. 에디는 열두 살이 되던 여름부터 오랜 불면증에 시달렸다. 하루하루가 맞지 않는 슈트를 입고 있는 듯하고, 새로운 에덴으로 가고 싶어 하는 의지를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스스로를 불완전한 신체라고까지 했다. 에디의 아버지는 남자다웠고 어머니는 여성스러웠지만, 사실 자신은 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괴로웠다. 어느 날은 매일 예배를 드리곤 했던 교회를 찾아갔더니, 목사님은 다급히 말했다.
“ 젠더를 바꾸는 것은 존재하기를 멈추는 것입니다.”
그 이후로 에디는 조용히 교회를 떠났다.
에디는 상상했고, 결국 원하는 일이 실험처럼 이루어졌다.
도시에서 지내다 보면 못 견딜 정도로 시골에 가고 싶어 지고, 시골에 있으면 숨이 막혀, 도시로 가고 싶어지는 것처럼 에디도 그랬다. 토마스 베른하르트의 역설에 대한 묘사와 딱 들어맞았다. 젠더를 횡단하면서 에디와 애슐리에 잠시 다녀갈 수 있다는 것에 안심했다. 지나치는 정거장이 아닌 내려서 느껴보고 싶은 두 개의 역이었다. 에디는 유년기에 멈췄던 성장을 이제 시작하게 되었다(...)
유년시절 지금의 애슐리는 키가 컸다. 마른 몸집에 커트머리를 하고 있어서인지, 여자 친구들이 멋있다며 졸졸 따라다녔다. 그렇다고 터프했거나 묘한 눈빛으로 친구들을 쳐다본 적은 없었다. 친해지고 싶다고 고백도 종종 받았고, 친해지려고 자신이 친했던 친구에게 소원하여 되려 애슐리가 미안해지게 만드는 여학생도 있었다. 음악시간에는 기타를 연주하는 동안 복도에서 기다리는 여학생도 있었다. 카세트테이프에 감성이 퐁퐁 터지는 팝송을 앞뒷면 녹음해서 수많은 편지를 건네주었던 친구는 3학년이 끝날 때까지도 애슐리 옆에 꼭 붙어 다녔다. 무심히 한 말에도 까르르 웃어주면서 애슐리를 연인처럼 챙겨주었다.
에디였지만 지금은 애슐리였다. 애슐리는 유년기에 멈췄던 성장을 청년기에 시작했다. 머리도 기르고 플랫슈즈를 즐겨 신었다. 배낭보다는 에코백을 즐겨 맸다. 액세서리는 엄마가 주신 목걸이가 전부지만, 향수와 레이스가 달린 옷을 좋아했다.
누군가는 더 편하고 즐거울 것 같은 젠더로 살아보고 싶어 했다. 당신이 지금과는 반대의 젠더로 태어난다면 무엇을 하겠는가 하는 가상의 질문을 받는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