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화분 37세.
송화분이 호명에 따라 진찰실에 들어갔을 때 의사는 여전히 인상 좋은 얼굴로 모니터를 들여다보는 중이었다. 어쩐지 의사의 얼굴로 그림자가 스치는 것 같다고 생각하며 송화분은 동그랗게 생긴 환자 의자에 앉았다.
“잠시만요.”
의사가 송화분을 바라보는 것도 아닌데 송화분은 긴장으로 잠깐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였는데 꽤 긴 공백이 흘렀다.
“보호자 같이 안 오셨어요?”
“네.”
“보호자도 같이 오시지.”
“서른 일곱이면 혼자 뭘 못하는 나이가 아니니까요.”
의사의 시선이 슬그머니 송화분을 스친다.
[조직 검사 안하고 가신다고 하면 잡아다 놓고라도 시켜야 할 상황이예요.]
조직 검사를 해야 한다고 강요할 때, 돈 벌고 싶어 그러는 게 어디 여기 뿐이겠냐 싶었던 게 생각났다. 아 그런데 그게 진짜 였나 보네. 머릿속이 단박에 시끄러워지고 검은 거미줄이 복잡하게 얽히기 시작했다.
“결과… 말씀해주세요.”
밖으로 나오는 소리는 담담하다. 가슴에 혹이 만져진 건 육개월이 넘었다. 혹을 만져본 김영희가 성질을 부리며 몇 개월째 병원에 가보라고 했으니 이런 결과도 받아들여야 했다. 진즉 올 걸 이라는 생각보다는 여러가지 일정 조율 먼저 떠올린다.
“초음파 볼 때부터 짐작은 했지만, 역시나 암입니다.”
“…….”
“요즘 암이 그렇게나 위험한 건 아니라고는 해도….”
“암에 기수 같은 거 있잖아요. 그것도 알 수 있나요?”
의사의 말을 자르고 송화분이 물었다. 초기라면 딱히 위험할 것도 없겠지. 수술하고 약간의 휴식만 갖으면 된다.
“음… 일단 3기 정도로 짐작됩니다.”
“3기요?”
“네”
“3기면 어떤 상태인 거죠?”
“종양의 크기가 3센티가 훨씬 넘었으니 전이가능성이 있습니다.”
3기? 전이 가능성? 보통 드라마에서는 4기가 말기로 설정하던데…그럼 말기 전 단계란 말야? 약간 헛웃음도 돈다.
“정확한 건 큰 병원에 가서 확인해 보시는 게 좋겠습니다.”
맘모톰 전문이라고 쓰였는데 자신이 하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는 낙심과 위로를 적절히 번갈아가며 송화분을 바라봤다.
“당장은 어떻게 해야 하나요?”
약간 현기증이 돌았다. 그렇다고 눈 앞이 캄캄하지고 나락으로 떨어지는 기분은 아니었다. 책이나 드라마에서 보던 것처럼 힘들지 않다. 그저 조금 귀가 먹먹한 느낌일 뿐.
*
진찰실을 나왔을 때, 후배 김선미가 다가왔다.
“뭐래요?”
평온한 얼굴이지만, 단답형으로 묻는 게 불안한 모양이다. 김선미는 촉이 매우 뛰어난 편이었다. 그래서였나? 굳이 조퇴를 내고 병원 결과를 같이 듣겠다며 따라나섰다. 직장에서 이런 친분을 맺는 건 어떤 의미로 복이다. 문득 송화분은 같이 온 김선미가 있어서 퍽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마저 없었더라면 조금 울고 싶은 기분이었으려나.
“암이래.”
어떤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함부로 위로를 건네지 않는 게 김선미고, 나름 충격에 빠졌을 테지. 잠시 후에 김선미가 물었다.
“괜찮아요?”
“어때 보여?”
“괜찮아 보여요.”
“응, 의외로 별 느낌이 없어. 나 이후 상황 체크하는 거 듣고 올게.”
김선미를 두고 다시 카운터로 돌아와서 송화분은 간호사가 지시한 일을 잘 정리했다. 머릿속이 하얗게 되는 그런 경험은 아니었다. 순서를 정해야 한다. 약간 실타래 같은 기분도 들지만, 잘 펴서 순서를 정해야 한다.
문득 지난주 병원에 가라고 다그치던 김영희의 얼굴이 스쳤다. 그날은 출근하던 도중 집으로 돌아왔다. 공무원 생활을 하며 무작정 가고 싶지 않아진 것은 처음이었다. 송화분을 데려다주던 송준태는 ‘가고 싶지 않아.’ 라는 말에 뒤도 안보고 핸들을 틀었다. ‘하루쯤 집에서 쉬어라. 직장생활하다 그런 날도 있는 거지.’ 그렇게 돌아온 화분을 보고 김영희는 당황해했다. 모든 일에 성실이 가장 우선인 그녀는 딸이 직장에 가다가 뒤돌아온 게 꽤나 충격적이기도 했던 듯 했다.
[알았어. 그러니까 병원 다녀와.]
[쉬고 싶다고.]
[병원 다녀와서 쉬어. 적어도 병원 다녀오면 쉬는 일 한 거잖아. 같이 가?]
[아니. 오후에 가게 열 거잖아. 쉬세요. 됐어.]
그렇게 등 떠밀려 유방외과에 갔던 거였다.
엄마…한테 혼나겠네.
해결에 제일 앞선 건 그녀에게 이 소식을 전달하는 일이었다.
*
김선미는 똑똑한 사람이었다. 당차기도 했고, 송화분과는 달린 멋쟁이기도 했다. 같은 흡연자라는 이유로 친해져서 지금은 절친 비스무리 되어가는 중이었다. 송화분은 김선미와 까페의 흡연실에 앉아서 ‘유방암’ 검색에 들어갔다. 오늘따라 쓴 커피가 몇 잔이고 연거푸 들어갔다.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안 된다.
김영희에게 소식을 전달하려면, 그녀를 덜 당황하게 하려면 정보가 있어야 했다. 어떤 경우에라도 그녀에게 죄책감을 씌우지 않을 그런 게 필요하기도 했다.
“언니, 3기 생존 확률이 70퍼가 넘는다는데요?”
의외로 높네. 4기 아니면 안 죽는 건가. 사람의 생에서 3:7이라는 숫자가 주는 의미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다. 그리고 아직은 7이라는 숫자를 지키기 위해서 희생해야 할 시간의 몫도 송화분은 결코 알 수 없었다.
김영희에게서 전화가 온건 9시가 넘어서였다. 저녁 시간을 지나 가게가 조금 한산해졌을 시간이다. 연탄불에 고기를 구워주는 가게는 의외로 주변에서 호평이었다. 지역의 어느 맛집을 따라한 것이지만 소스도 달랐고 고유 양념을 만든 사촌 오빠의 가게 분점을 시작해서 곧 3년째였다. 송화분의 직장 동료들도 로컬 맛집이라면서 꽤 호평을 곁들여 나름의 자랑이었다. 그 가게가 이제 저녁 밥 손님을 치고 야식 손님들을 맞기 전의 짬이었을 터다.
“병원 갔다 왔어?”
“네.”
“뭐래?”
“엄마. 내일 아침에 와서 얘기할까?”
“…….”
“내일….”
“뭐라는데?”
이번에는 송화분의 입이 막힌다. 별거 아닌데 입이 차마 떨어지지 않는다.
“뭐라는데?”
“암이래.”
김영희가 다시 다그치고서야 짧은 대답이 나왔다. 긴 한숨이 이어졌다. 뭐라 말도 못하는 김영희에게 그저 미안하기만 했다.
“엄마… 미안.”
“알았어.”
“미…안….”
갑자기 울음이 몰려든다. 후두둑 눈물이 떨어졌다.
“병원에서 어떻게 하래?”
“내일이라도 대학병원 가라고 소견서 받았어요.”
휴- 다시 한숨이다.
“엄마.”
“저녁 먹어야 해. 알았으니까 끊어.”
더이상 아무런 소리가 나지 않게 되었을 때 송화분은 그대로 엎드려 울기 시작했다. 이렇게 엉망이 되고 싶지는 않았어. 이렇게 짐스럽고 싶지도 않았어. 엄마… 미안. 엄마… 죄송해요. 바닥을 쾅쾅 주먹으로 치다 그러쥐었다. 슬픈 일이 아닌데, 그렇게 힘든 일도 아닐 건데, 왜 이리 죄스러운지 알 수 없었다.
그다지 떠오르지 않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김영희를 처음 만났던 순간 서글프고도 선한 눈동자도. 여섯이 누우면 받디딜 틈조차 없던 단칸 방에서 활짝 웃으며 공기놀이를 하던 일도, 벽을 넘기 어렵던 수학 통분을 가르쳐주던 것도, 검고 지저분한 제 머리에 독한 살충제를 뿌린 후 참빗으로 쓱쓱 쓸어내리면 투둑투둑 검은 이가 떨어져 내리던 때, 처음에는 벌레에 질겁하던 김영희가 어느새 그걸 하나씩 눌러 죽이던 표정도, 도배 일이 끝나고 돌아와 피곤에 쓰러지던 모습도, 점점 독하게 바뀌어 가던 말투도, 송화분이 김영희의 기대를 버리고 가출했다 돌아오던 날 잠든 그녀의 발치에 떨어지던 눈물도. 송준태가 심근경색으로 쓰러졌을 때 겁에 질려 울던 모습도. 송화란이 아빠 없는 아이를 낳겠다며 우기기 시작했을 때 암담한 표정도, 아기를 낳은 송화란 곁에서 또 울었다던 이야기도 떠올랐다.
갑자기 모두 떠올랐다. 정말 거대한 파도처럼 몰려들었다. 빠져나갈 틈을 주지 않고 거침없이 부딪혀오는 기억의 조각들이 송화분을 구성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어떻게 살아온 시간인데. 어떻게 살아온 세월인데. 당신들 때문이지. 내 삶을 갉아먹었던 건 내가 아니야. 당신들이지.
눈앞으로 여러 여자들이 스친다. 하나가 아니다. 자신을 망가뜨렸던 하나하나가 스쳤다.
죽을지도 모르는 건가? 죽는다는 건 꽤 멀다. 이미 고등학교 시절 충분히 리스트 컷을 연습했다. 사람은 쉽게 죽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살기로 했었다. 살아지면 살아야지. 그렇게 살다가 열심히 살기도 했다. 운동권에서 맏딸에 대한 책임감을 버리라고 배웠을때, 그릇된 여성관으로 뒤틀린 세상을 깨달았을 때 송화분은 자신이 택한 삶이 무엇보다 옳다고 여겼다. 누구에게도 지지 않았다. 특히 남성에게는 지고 싶지 않았다. 여성에게는 너그러웠지만 그 안의 양면성은 늘 분명하게 깨닫고 있었다.
문득 신을 떠올렸다. 그러다 고개를 저었다. 신을 떠난 벌을 받는 거라면 받아야지. 돌아갈 생각은 들지 않았다. 굳이 애써서 비관을 연기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도 사실은 슬펐다. 담담하다 못해 단호하고 차갑게 전화를 끊은 김영희를 떠올리면 한없이 슬프기만 했다.
서른 일곱은 검을 정도로 짙푸른 청춘처럼 정의에 휩쌓이지 않는다. 서른 일곱은 달콤하게 속삭이는 연인의 입술에 연연하지도 않는다. 서른 일곱은 이제는 조용하고 한없이 안정되기만을 바랄 뿐이다. 이제 서른 일곱은 늙어가는 김영희와 함께 느긋하게 흘러가면 되는 거였다.
잘못했어요. 엄마. 내가 다 잘못 한 것 같기만 해.
*
맑은 가을 날 아침이었다. 김영희는 전혀 잠들었던 기색이 없었다. 다만 눈두덩 밑이 새캄했다. 피곤했을 건데….
“좀 잤어요?”
송화분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가자.”
김영희의 대답은 송화분의 의도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
“혼자 가도 돼.”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가자.”
김영희가 먼저 대문을 나섰다. 대학병원으로 향하려는 그녀의 뒷모습은 단단했다. 걸음이 여느때보다 딱딱하고 무겁다. 송준태도 김영희도 차속에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 김영희가 한달 간 밥을 거의 먹지 못했던 걸 알게 된 건 송화분이 두번째 암에 걸리고 나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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