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뚱뒤뚱 느린 걸음이었다. 며칠 전 밭일을 하다가 지네에게 물렸다더니 부은 자리가 아직 가라앉지 않은 모양의 이옥녀였다. 아이고오, 이놈의 다리몽댕이 바싹 분지르면 좋겄어. 비가 올라나 온 삭신이 아퍼서… 너스레를 떨며 빨래를 옆에 낀 이옥녀가 야무지게 소매와 치마를 걷어붙이고 주섬주섬 한쪽으로 자리 잡았다.
“왔는가? 다리는 아적도 안 좋은 거여?”
마을 중앙 마당 한 곁으로 흐르는 우물터에서 빨랫방망이를 척척 두들기던 황석삼이 말을 던졌다.
“김춘덕네 막내 아들 감옥 가게 생겼다며?”
이옥녀는 반기는 말에는 대꾸도 안 한 채 확인이 안 된 소문을 다 들으라는 듯이 큰 소리로 내질렀다.
빨래터에서부터 들리는 소리에 집안일을 하던 여자들은 낮은 담으로 귀를 기울였다. 몇몇인가는 아예 담 너머로 고개를 들이밀기도 했다.
“사업이 어렵다더니 기어이 그러나 보네.”
“나도 들었지. 관광회사를 했다더니. 말로는 사기를 당했다 하더라만.”
“사기를 당했는가, 사기를 쳤는가는 모를 일이고.”
“죄를 졌으면 감옥엔 가야지.”
“빨간 줄 가는 일이 보통 일은 아닐 것인디.”
여자들은 아예 우물가로 빨래를 가지고 모여들기 시작했다.
“송준태 갸가 그 와중에 바람도 폈다 하더구만.”
“걔가 어릴 적부터 머리가 좋아가지고. 말썽에 사고쳐도 송씨 큰 형님이 다 막아주고, 김춘덕이가 감싸고 돌더니… 싹수가….”
송준태는 아까 말한 김춘덕의 막내 아들이었다. 사람들은 송씨네 아들이라고도 할 법한데, 그냥 김춘덕의 아들이라고 불렀다. 그건 김춘덕이 둘째부인 자리에서 낳은 애인데다 송영석은 이미 죽어서 김춘덕만 남겨두고 본가의 자식들은 다 시내로 나갔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지르는 말에 황석삼이 빠르게 손가락으로 입을 가리며 단속을 시켰다.
“조심햐, 안 그래도 김춘덕이 화가 나서 그 집 앞만 지나면 침을 뱉고 다녀.”
“방귀 뀐 놈이 성낸다고. 누가 잘못했는데 되레 그 모양이래?”
“왜 결혼 전부터도 안 좋아했잖어. 제일 잘난 막내 아들 잡아먹을 며느리라고.”
“옆옆집 살면서 참 갸들도 딱해.”
“그니까 조심하라고. 그 여편네 입술이 삐뚤어졌는데 기분 나쁘면 더 이렇게 어긋나잖어.”
이옥녀가 입술 모양을 손가락으로 만들며 웃음을 지어내자, 여자들이 키들키들 웃었다.
“다들 입단속들 햐. 저번에 박후남이랑 머리채 잡고 싸우는 거 안 봤어?”
“야야. 조심들 하지요.”
황석삼이 나름 동네의 어른처럼 나서자, 여자들은 한동안 툭탁툭탁 방망이를 두들겼다.
김춘덕이 나타난 건 잠시 후였다. 김춘덕은 얼굴에 심술보가 잔뜩 앉아 볼이 아직 팽팽했다. 기분이 나쁘면 입술을 삐죽거렸고 눈초리가 옆으로 향하곤 했다. 그런 모습을 보아하니 오늘도 여전히 김춘덕은 심기가 매우 안 좋은 상태였다.
“오늘은 어찌 기분이 나쁘신가?”
여전히 비꼬면서 말을 건네는 건 이옥녀다.
“아들래미 얘기가 동네에 파다허요. 형님, 괜찮소?”
여자 중 하나도 은근하게 말을 거들었다.
“내 아들이 사기당한 게 자네들 입에 그렇게 찰떡같이 맛나던가?”
김춘덕이 빨래를 꺼내어 세게 바닥에 던지듯 말하곤 방망이를 들었다. 퍽퍽 퍽퍽 이어지는 방망이 소리에 사람들은 서로 몰래 눈치를 주고받았다.
“그게 아니라, 준태가 애기 적부터 선생들도 알아주게 머리가 비상혔는디 그런 일을 당했다고 헝게.”
“망할년. 그년이 들어와서 우리 아들이 망조가 든 겨.”
드디어 김춘덕의 입이 열리자, 여자들은 고개를 숙이고 빙그레 웃었다. 한번 터진 입은 이제 며느리 욕으로 한참을 이어갈 터였다.
“내 아들은 먹고 살라고 그런 거여. 다들 알잖어. 아가 잘나서 지네 큰 형님 회사에서도 고졸 밖에 안 됐어도 다들 이거 해달라, 저거 해달라 그러던 애야. 잘사는 지주 형님들 사이에서도 기 안 죽고, 그 형들 뒷일 다 봐주고. 그렇게 똑똑한 아가 사기를 당한 게 재수가 없어서 그려. 그리고 사내새끼가 영창 한번 갔다 온 게 대순감.”
김춘덕의 시작은 늘 거기부터다. 김춘덕은 지주로 알려진 송씨네 둘째 부인이었다. 송씨네는 원래 일제 강점기에 돈을 잘 굴려서 버스회사를 시작했다. 그곳의 안 주인이 병에 걸리자, 병수발을 들기 위해 둘째 부인을 들였다. 그게 김춘덕이다. 김춘덕은 아들 딸 하나씩을 데리고 재가한 경우였다. 송씨댁에는 이미 딸 둘을 비롯해 장성한 아들이 서넛은 됐다. 그러고도 송씨와의 사이에서 아들 셋과 딸 하나를 더 낳았으니 참으로 자식복이 넘치는 경우긴 했다.
물론 송영석이 죽고 나니 이곳에 김춘덕 홀로 남게 되긴 했지만, 사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송씨네에서 주기적으로 쌀과 돈을 보내왔기 때문이다.
“금쪽같이 귀한 내새끼. 그년이 고등학교 때 꼬여내서 애만 갖지 않았어도.”
다들 귀에 못이 박히게 들은 얘기라 들은 척도 안하고 방망이를 두들겼다.
“생긴 거 안 봤어? 눈은 사내 꼬시기에 좋게 쭉 째져서, 입술은 얄팍하고, 얼굴도 새캄해가지고 가슴팍을 여기 돌을 얹은 것처럼 불뚝 튀어나오지 않았어.”
“그러긴 했지여.”
누군가 맞장구는 쳤다. 김춘덕은 송준태의 부인, 정순녀의 어미조차 매우 싫어했다.
“가슴팍 내밀고 다니는 거 봐. 젖탱이는 이만해가지고….”
언제나 그렇듯 김춘덕은 방망이를 손에 들고 가슴팍을 둥그렇게 모양을 그렸다. 바람에 방망이에 묻은 물방울이 여기저기 튀자, 여자들은 인상을 찌푸렸다.
“하긴 그 집 어미가 유독 가슴이 앞으로 툭 튀어나오긴 했어요. 엉덩이도 오리 같고. 뒤뚱뒤뚱.”
이옥녀가 평소 고깝게 보던지라 또 맞장구를 치고 나왔다.
“그밥에 그나물이고, 씨밭은 못속이는 거지. 그년 딸이니 똑같이 그렇게 안 생겼는가. 그게 사내들 꼬실라고 하는 거지, 뭐겄어. 내 아들 인생이 거기서부터 꼬인 겨.”
사실 마을 여자들은 알고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에 이미 낙태를 경험한 정순녀는 송준태와의 연애를 관두지 않았고 결국 두 번째 아이까지 만들고 말았다. 김춘덕도 그때가 돼서는 어쩔 수 없이 둘의 결혼을 인정해야 했다.
“내 아들이 돈 벌라고 못 먹고 못 입고 다니는 새에 그년은 보험 팔러 다닌다고 화장품 사고 옷 사고. 집도 내 아들이 모은 돈이었지. 그년이 모은 게 아니잖어.”
“하긴 형님도 한참 아들하고 소원했으니까요.”
김춘덕이 유독 정순녀를 싫어하는 이유였다. 막내 아들은 평소 김춘덕에게 퍽 잘했었는데, 언젠가부터 소원해지더라는 것이다. 김춘덕 역시 다른 아들들이 막 자란데 비해, 관광회사를 차려 사장님 소리까지 듣는 막내 아들이 그렇게 자랑스러울 수가 없었다. 그러니 아들이 좀 더 어미를 챙기길 원하는 건 욕심이자 본능이기까지 했다.
그때 저쪽에서 아이들이 손을 흔들며 김춘덕을 불렀다.
“할머니이이이.”
아이들은 셋이었는데 그중 둘은 폴딱폴딱 뛰면서 김춘덕을 불렀고, 가장 큰 아이만 고개를 숙였다.
“아휴. 준태네 큰 딸은 공부도 잘한다더만. 애가 조신해 가지고.”
“모르는 소리들 하지 마. 저게 지 에미 쏙 빼닮아가지고 속이 음흉하다니까.”
김춘덕은 큰 손녀에 대한 칭찬에 표정을 굳히며 말을 끊었다.
“그래도 쟤가 손주들 중에서 제일 똑똑하다 안 해요?”
“공부만 잘한다고 다 성공하던가? 둘째 봐. 우리 딸내미 애기 적하고 똑같이 생겼어. 저런 애가 어디다 내놔도 손도 야무지고. 잘 살어.”
김춘덕은 듣기 싫은 모양으로 귀까지 털어댔다.
“이쁨도 미움도 다 지게서 나는 법이여. 저 시커먼 것은 지 에미 탁이라 와서 살갑게 구는 적이라곤 없어. 정이 안 가. 행여 오늘 내 방 와서 잔다고 하면 심란하네. 내가 마다할 판여.”
허리끈으로 동여맨 한복 치마를 탁탁 치며 자리에서 일어난 김춘덕은 심술궂은 얼굴로 아이들을 빤히 바라봤다. 그래도 손주라고 슬그머니 미소가 스쳤다.
“둘째하고 손주 놈이 복싱아를 좀 잘 먹드만. 과수원에 한 번 들려야겠어. 내 먼저 일어나께.”
“첫째는 복싱아 안 먹어?”
“먹더니 저번에 탈 나서 동네 의원가서 침맞고 지랄을 한번 떨었다더만. 내 집서 안 자길 잘했지. 어째 하는 짓도 하나하나 안 이쁜가.”
김춘덕이 아이들을 향해 자리를 뜨자, 한동안 여자들은 김춘덕의 뒷모습을 빤히 바라보았다. 누군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어찌 저리 안 이뻐할 수가 있는가 몰라요.”
“아니 그래도 반절은 지 아들 새끼 피가 섞였는디.”
“얼마나 며느리가 맘에 안 들면 탁했다고 새끼까정 밉겠어요.”
여자들이 다시 떠들기 시작하자, 황석삼이 굳은 허리를 펴며 몸을 일으켰다.
“다들 배울 것만 배우거라. 저런 건 배우는 게 아니야.”
“저 심술이 배운다고 되겠어요. 저건 타고나야 되는 거네요. 행님.”
이옥녀가 끝까지 한마디를 더했다. 여자들은 이옥녀의 말이 맞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새 해가 점심을 향해 가고 있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