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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시 Jan 16. 2021

'나'를 찾아서-1

나의 두드러진 심리코드 하나

‘나는 누구인가’를 붙잡고 사정없이 헤매고 있을 때 문득 책장 한 구석에 있던 ‘내마음 보고서’를 발견했다.

‘내가 누구인지 알려주는’(이 부분, 상당히 혹하시죠?) 내마음보고서는 마인드프리즘 기업연구소에서 제공하는 서비스다. 

일단 설문을 하게 된다. 여러 가지 흥미로운 질문들이 쭈욱 이어진다. 이때, 솔직하게 마음에 떠오르는 대로 답하는 게 중요하다.(꾸며서 대답하면 어떻게 되느냐? '나는 누구인가'가 나오는 것이 아니고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가 나온다.) 

그리고 그 설문을 바탕으로 마인드프리즘 기업연구소에서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나의 두드러진 심리코드에 대해서 분석을 해준다. 

당신이라는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 어떤 행동을 하기 쉬운지 등등을 설명해주고 

지금 나의 상황에 맞는 시를 한편 선정해서 한 권의 작은 책으로 만들어 준다. 

물론 더 열심히 나를 알고자 했다면 그 보고서에 있었던 가이드라인대로 보고서를 받고 3개월, 6개월, 1년 후에 보고서를 들춰가며 질문에 답을 부지런히 달아가면서 나를 관찰했을 것이다.

만,

나는 홀로 암막 커튼을 치고 눈을 치켜뜬 채로 헤매고 있었기 때문에 이 책을 들춰볼 생각 조차 하지 않았다. 

정말 마음만 먹었다면 봤을 텐데(바로 침대 머리맡에 있었다;) 마음이 먹어지지 않았다. 

왜? 

나름 정신없이 헤매고 있느라 엄청 피곤했거든요. 


때가 무르익었다. 운명이 나로 하여금 그 책을 열어보게 만들었다. 

만약 누군가 나처럼 홀로 헤매느라 바쁘다면 추천하고 싶은 서비스이다. 

설문에 근거한 분석으로 당사자의 심리코드를 다섯 가지로 설명해주는데 여기에는 좋고 나쁨이 없다. 

모든 것은 빛과 그림자가 있듯이 가치 평가를 내리지 않는다.(심리치유의 기본인가?) 

그래서 보고서에 쓰여 있는 단어도 중립적인 단어가 많고 상당히 선별하고 고심해서 만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각설하고, 보고서에 따르면 나는 자신의 감정을 잘 통제하는 사람이다. 

환경의 변화나 위기에 직면해도 ‘심리적 구심점’을 잘 유지한다. 쉽게 흔들리지 않으며 무게중심이 튼실하다.(그, 그런 거 맞죠? 이렇게 홀로 우왕좌왕 몇 년을 끈질기게 고민하는 인간은 원래 아닌 거죠?) 

평소 감정적으로 동요하거나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많지 않다. 어떤 경우에도 안정적인 태도를 보이며, 강렬한 분노를 느끼는 상황에서도 화를 잘 내지 않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여기서 나는 강렬한 분노를 느꼈다. 화가 났다!!!!!!!!!!!! 속이 터질 일 아닌가? 한껏 화내고 있는데 화를 내지 않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니.) 

주어진 상황이 화를 낼 정도로 자극적이지 않아서 그럴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감정을 잘 통제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런 성향으로 인해 나는 감정이 치밀어 오르는 상황에서도 체계적이고 논리적으로 접근하며 문제 해결 자체에 집중할 수 있다고 한다. 

내 마음이 소렌토 앞바다처럼 평온하단 말이지. 음......

나의 첫 번째 심리코드는 맞다. 법륜 스님의 영향일까? 아니면 새옹지마의 영향인지는 모르겠지만 

세상을 살다 보니 모든 일어나는 일은 그냥 하나의 ‘일어나는 일’ 일뿐이라는 사실을 절실히 느낀다.

가치 평가는 되도록 하지 않는다. 사실, fact일 뿐이다. 

세상에 좋기만 한 일도, 나쁘기만 한 일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좋은 일과 나쁜 일이 반복되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씨실과 날실이 교차하듯이, 인생은 좋은 일과 나쁜 일이 사이좋게 교대로 일어난다. 사이좋게…… 이 둘은 싸우지 않는다. 사이좋게 함께 지낸다. 

모자이크가 그렇듯이 한 가지 색으로만 이루어진 인생은 없다. 달고 쓰고 시고 아린, 신산한 것이 없는 인생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에 나는 비교적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는 것 같다. 

이렇게 알록달록 한 것이 인생이지.

좋은 일이 있나? 그렇구나. 지금 이렇게 좋은 것이 있으니 마음껏 즐기자. 좋아하지만 그 일에 ‘푸욱’ 빠지지는 않는다. 왜? 이것도 지나가고 곧 날실이 올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 둘은 사이가 좋으니까. 

나쁜 일이 생겼어? 도대체 이 일이 왜 생겼을까? 앞으로 어떤 점을 더 조심하면 될까? 뭘 더 신경 써야 하나? 이 일이 나에게 주는 메시지는 무엇인가?를 더 생각하게 된다. 

화를 잘 안내는 것은 화를 낼 기력이 없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것을 표현하기에도 나는 기력이 딸리는 사람이다. 그래서 화는 그냥 흘려보낸다. 하지만 조직에서는 화가 필요한 순간이 있기도 하니 참으로, 참으로 조직생활은 나에게 힘든 일이 아닐 수 없다. 


보고서는 나에게 이런 가능성도 생각해보라고 권유한다. 


하나, 감정적으로 흔들리지 않고 끈기 있게 일을 진행할 수 있다는 강점이 있다.

: 맞다. 감정에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 사소한 감정선은 과감하게 건너뛴다. 그리고 목적을 향해서 아주 성실하게 나아간다. 이것은 아버지로부터 온 속성이다. 이 부분, 항상 아버지에게 감사하는 마음 그득하다.


둘, 사물에 대한 가치 판단을 명확하게 내리는 특성과 맞물릴 경우 자신의 의견을 너무 강하게 드러내는 것처럼 보이거나 고집스러워 보일 수도 있다.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유연한 태도를 취하지만, 목적에 방해가 되는 상황에는 경직된 반응을 보이고 일상에서도 경직된 태도를 취할 수 있다. 과거의 경험과 자신의 판단에 대해서 별다른 의심을 하지 않게 되면서 다른 사람의 의견을 수렴하기가 어려워질 수도 있다.

: 고지식해 보일 수 있다. 이 두 번째 가능성은 스스로가 극단주의자처럼 씨알도 안 먹히는 사람은 아닌지, 가끔 어떤 일을 추진하면서 의견 충돌이 났을 때 브레이크의 역할로 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셋, 평소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느끼는 감정이 밋밋해질 수 있다. 혼란한 상황에서도 별일 아닌 듯 무덤덤하게 받아들이면서 감정의 폭이 좁아질 수 있다.

: 나의 엑스가 말했다. ‘우린 남자와 여자가 바뀐 것 같아.’ 시무룩하게 그 말을 내뱉는 엑스의 모습은 사랑스러웠다. 그랬다. 나는 좋다고 오두방정을 떨지 못했다. 하지만 엑스는 오두방정의 최고봉이었다. 좋으면 그 감정을 온몸으로 표현했다. 하늘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도 없이 말이다. 그랬기에 나의 반응은 항상 그의 기대에 못 미쳤다. 

제 손금, 아니 제 마음을 읽어보니 그렇단 말씀이죠?

나란 사람은 감정을 잘 통제하는 사람. 

하지만 내 생각에는 스스로 굳이 감정을 통제한다기보다는 성향 자체가 물과 같아서 그런 것 같다. 

좋은 일과 그렇지 않은 일이 ‘사이가 좋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씨실과 날실이 촘촘히 짜일수록 단단한 패브릭이 된다. 인생 역시 좋은 일과 그렇지 않은 일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면서 내 안의 심지가 단단해진다.(고 믿고 싶다.) 


그래서 다시 한번 나에게 들려주고 싶다. 

너는, 스스로 갈 길을 잃어 헤매는 상황에서도 심리적 구심점을 잘 유지하는 사람이래. 

그리고 무게 중심이 튼실한 사람이래. 그러니 이 암흑 같은 위기도 잘 헤쳐나갈 수 있을 거야.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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