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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시 Jan 09. 2021

'나'라는 브랜드에 이상이 왔을 때

도저히 출구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나는......

초/중/고등학교 시절, 나는 상당히 자신만만한 에고를 지니고 있었다. 

누가 뭐라든 나씨나길(나는 *발 나의 길을 간다)의 스피릿이 충만했다. 

너는 너고 나는 나야. 이런 생각이 강했고 옆에서 뭐라고 하는 것에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고 살아갔다. 

나는 나만의 라이프스타일이 있고 너는 너만의 라이프스타일이 있는 거겠지. 나는 나만의 생각과 신념을 지니고 있고 그와 마찬가지로 너도 하나의 객체로서 너만의 생각과 신념을 지니고 있는 것은 너무 당연하다는 생각.(율리우스 카이사르가 그랬듯이. 응? 또 어깨가 치솟는다고?) 

그래서 주변의 시선에도 무심했고 남들이 뭐라고 하는 말에도 그다지 신경을 쓰지도, 상처를 받지도 않았다. 

그랬기에 나는 ‘당당’ 그 자체였다. 아, 위풍당당이라고 해도 되겠다. 남들보다 떡대가 좋으니까; 

대학 동기 중에 '뜨르르'하지 않았던 애가 없었다.

대학교는 조금 상황이 달랐다. 

사람이 왜 큰 물에서 놀아야 하는지를 깨닫게 해 준 첫 번째 장소가 나에게는 대학이었다. 학과에 모인 친구들 중에 반장 안 해본 애가 없었고 성적이 쳐지는 애도 없었다. 

‘너도 반장이었어?’

‘걔도 회장이었니?’

이런 대화가 오가던 곳, 모두 각자의 지역에서, 학교에서 ‘뜨르르’하던 아이들만 모아 놓은 곳이 대학이었다. 

누가 나에게 대학을 왜 가야 하는지 물어본다면 나는 ‘시야를 넓히기에 그보다 더 좋은 곳은 없기 때문’이라고 답하겠다. 학문적인 것이든 인간적인 것이든 그것이 어떤 분야이든 상관없이 말이다. 

물론 그렇다고 내가 기가 죽었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었고 여전히 나씨나길(나씨족의 아름다운 길~). 

맹렬하게 나에게 집중하며 살아갔다.

‘어머, 너 나에 대해서 그런 생각을 했다고? 걔가 나에 대해서 그런 말을 했어? 오홍, 그렇구나~.’ 

이렇게 콧소리를 내며 웃어넘기면 End of Game. 

그렇게 넓혀진 세계에서도 아름다운 나씨족의 길은 계속되었다.

거침없이 직장의 문을 열고 들어갔었지. 흠흠.

직장에 들어왔다. 

사회 초년생은 투지가 넘치기 마련이다. 돈을 내고 다니는 것이 아닌 돈을 받고 다니는 생활이라니! 

그 황홀감이 주는 낯섦과 미지의 세계에 대한 기대와 흥분은 나를 Hyper 상태로 몰아넣었다. 

몰입하며 집중했다. 집에 오면 침대에서 뒹굴 수밖에 없을 정도로 시간과 열정을 회사에 몰아 쳐 넣었다. 

그렇게 살다가, 살다가 몸과 마음에 무리가 왔다. 당연히 Work & Life의 균형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때부터는 완급을 조절했다.


네 몸이 할 수 있는, 에너지의 70~80%만을 쓴다는 생각으로 살아봐라.

칠순을 넘긴 큰 이모부의 말씀도 나에게 하나의 브레이크가 되었다.

“아홉수를 조심해야 하는 이유는, 마음은 젊을 때와 똑같은데 이미 신체 기능은 노화가 진행되어 큰일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옛 어른들은 아홉수가 되면 숟가락 크기부터 줄이라고 조언하곤 했다.” 

마음과 신체의 간극을 경계하라는 은사님의 말씀에도 고개가 주억거려졌다.

몸과 마음을 살피면서 비교적 평탄한 삶을 살고 있던 나에게 인생 최대의 암흑기가 찾아왔다. 

난생처음 겪는 일이라 스스로도 이런 나를 보면서 당황하여 어찌할 줄을 몰랐다.

자신감, 너도 출입 금지당한 거니?

자신감이 없어졌다. 사라졌다. 흔적도 없이. 

그렇게 당당하고 자신만만했던 나의 모습을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나의 자신감이 행방불명되었다고 학창 시절의 친구들을 만나서 얘기하면 그들이 되레 고개를 저었다.


설마 네가? 자신감이 없다고?

친구들의 그런 반응에 배시시 멋쩍게 웃으며 나도 고개를 젓고 싶었다. 

이럴 리 없어. 자신만만함으로, 높은 자존감으로 버텨온 인생인데? 

하지만 아무리 고개를 도리질 쳐도 자신감은 소환되어 오지 않았다. 

그리고 마음에 짙은 그림자가 졌다. 의기소침해지고 수축되는 느낌. 이러다가 점으로 사라질 것 같은 불안감. 

내가 뭘 잘할 수 있을지 도통 알 수 없는 어마어마한 혼란. 

생각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이리 갈팡, 저리 갈팡이었다. 마음은 갈지자를 걷고 있었다.

하나에 집중하고 끈기 있게 해내던 마음은 어딘가로 스르륵 자취를 감췄다. 

친한 지인들에게 고민을 토로해도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철저하게, 그리고 뼈에 사무치게 고독하게도 나의 문제는 나의 것이었다. 

애당초 다른 사람에게 나의 길을 찾아달라는 것도, 나의 인생에 대해서 고민해봐 달라고 하는 것은 사치였나 보다.(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가 나에게 ‘너 그냥 이렇게 살아’라고 말해준다면 마치 그것이 구원으로 다가올 것 만 같은 유혹은 너무 강렬하다.) 

당신도 외로웠던 거 맞죠? 그렇다고 해줘요.

그래서 외로움에 치를 떨었다. 

몸을 떨었다.

결혼을 하나 하지 않나 외로운 것은 마찬가지라고 하지만, 인간이 이렇게 외로운 존재란 말인가. 

어디 하나 기댈 곳 없이 철저하게 혼자 암흑을 건너야 한단 말인가. 

신도, 인간도 답을 주지 않는 비정한 상태가 천 일이 넘게 지속되었다. 

그 시간은 웃어도 웃는 것이 아니었다. 뭔가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분위기를 바꿔볼까 싶어서 여행도 다니고 긍정적인 생각으로 나에게 스스로 최면도 걸어 보았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나는 그렇게 쉽게 속아지지 않는 사람이었고(젠장) 비극적 이게도 최면이 잘 걸리는 타입도 아니었다.(더 젠장) 

좋아하는 것을 잘하지 못했다. 좋아하는 것을 업으로 삼을 수 없다. 그래서 자괴감은 더 깊이 나를 파고들었다. 


그 길고 긴 암흑의 터널을

나는 지팡이도 없이 홀로 투덜거리며, 

외로움에 떨면서, 

꺼이꺼이 울면서 걸어 나갔다. 

답이 찾아지지 않을 것 같은 긴 여정. 딱히 목적지도 없는 그 길, 언제 끝날지 기약도 없는 그 긴 시간을 

누군가는 ‘우울증’의 시간이라고 이름 붙일 수도 있으리라. 


시간이 왜 약이라고 하는지 알아?
 자식이 죽고 부모가 죽어도 결국 시간이 흐르면 그 슬픔이 옅어져서 살아지거든.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게 시간이야……

그랬다.

시간이 마음에 바르는 연고였다. 

긴 시간을 날카로운 칼로 마음을 에는 것처럼 아프고 힘들었는데 

어느덧 나는 다시 암흑에서 광명으로 나아가는 계단에 발을 올려두려고 하고 있다. 


무슨 일이 있었냐고?

아니, 전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누가 도와줬냐고? 

아니, 전혀 그 누구도 나에게 구원의 동아줄 따위는 던져주지 않았다. 

그냥 철저히 오롯이 혼자서, 너무 힘들었고 너무 눈물겨웠던 사투를, 그 긴 시간을 견뎌냈을 따름이다. 

그리고 그 시간에 보답이라도 하듯이 마음이 스스로 방향을 잡고 다독이고 있는 것을 느끼는 요즘이다.


‘시간이 약’이라는 허망한 답이라고 평가절하하지 마시길. 

그 이전에 철저히 홀로 외롭게 답을 찾기 위해서 몸부림치는 시간이 있어야 비로소 시간이 약을 주기 때문이다. 혹시 모르겠다. 다른 사람들은 귀인의 도움을 받을지도. 

하지만 내 경우는 전혀 아니었고 울음을 홀로 이를 악물고 이겨내며 지금 이 자리에 있다.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요즘 스스로에게 고맙고 안쓰러운 마음이 드는지도 모르겠다.


“이류에게는 이류의 삶이 있다.”

참으로 맞는 말이다. 

삼류에게는 삼류의 삶이 있겠지. 

그리고 나에게는 나만의 삶이 있다.

나는 이제 머리카락이 보이는 자신감을, 나 자신을 찾으러 나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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