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의 마지막에서
본태박물관의 4관에서는 피안으로 가는 길의 동반자라는 주제로 상여, 꼭두 등이 전시되어 있었다.
상여라고 하면 저 먼 기억 속에 외증조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동네에서 나가던 흰 상여가 있다.
기억은 희미해서 정확한 형태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때 시골에서는 마을 사람들이 엄청 많이 모였다.
외할아버지 생신잔치와 진배없었다.
삶과 죽음의 의미도 모르던 시절, 외증조할머니의 죽음이나 외할아버지의 생신은
두 개 모두 똑같이 소란스러운 마을 잔치였다.
삶과 죽음의 의미가 뭔지 알게 된 지금도 어쩌면 그 둘은 샴쌍둥이처럼
닮은 듯 다른 모습이라는 생각이 든다.
안도 타다오의 박물관 건물은 뮤지엄 산과 같이 차분함을 주면서도 사람을 짓누르는 위압감은 없었다.
뮤지엄 산은 그야말로 거대한 산 앞에 선 것만 같았는데.
그리고 그 박물관에서 뜻하지 않게 죽음의 동반자들을 만나게 되었다.
작년에는 이모님 두 분이 4개월도 안 되는 간격을 두고 돌아가셨다.
줄초상이 일어나리라는 것은 상상도 못 한 일이었다.
큰 이모는 90세니 평균 기대수명은 넘겼으나 그랬다고 아쉽지 않은 것은 아니다.
췌장에 염증이 심해서 시술이냐 수술을 놓고 본인이 한 선택은 수술이었다.
결과론적이긴 하나 만약 시술을 하셨더라면 더 오래 사시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재작년 12월 수술 이후로 요양병원에 들어가셨고 살이 빠지셨다.
요양병원이라는 곳은 아무리 서울 서초구에 있다고 해도 그냥 요양병원일 수밖에 없다.
사람의 몸은 먹지 않고 움직이지 않으면 퇴화한다.
나이가 들면 그 퇴화 속도는 급격하게 가속한다.
집에 가고 싶어 하셔서 작년 5월에 집으로 돌아가셨으나
그만그만하시다가 9월에 돌아가시고 말았다.
셋째이모는 78세로 평균 기대수명에 이르지도 못했다.
재작년 10월, 그 흔한 집안에서의 낙상으로 병원 신세를 지게 되었다.
폐가 약해서 수술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병상에 누워만 있는 생활이 작년 5월까지 이어지다가 돌아가셨다.
쉬운 죽음이 어디 있겠냐마는 생명이 사그라지는 것을 보는 것은 참 가슴 아팠다.
산소포화도가 떨어지면 자꾸 졸음이 올 수밖에 없다는데
질문을 해도 대답도 안 하고 멍하니 있었던 것이 돌이켜 보니
뇌로 산소가 제대로 가지 않아서 생긴 일이 아니었을까.
이모 몸속의 세포들은 생존에 필요한 활동을 하는 데에만도 힘이 부쳤던 거다.
해드릴 수 있는 것이라고는 찾아뵙고 옛날 얘기를 하며 빨리 퇴원하자는 말씀을 드리는 것이었다.
튜빙으로 영양소를 섭취한 지 너무 오래되어 살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이모를 보며
다시 집으로 돌아가실 수 있을까 싶은 의구심이 드는 것을
일부러 못 본 척하며 그렇게 대화를 이어갔다.
이모는 어려서 우리를 키워주신 분이기에 말을 건넬 때마다 목이 메어 오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이렇게 잘 키워주셔서 감사해요.
이모 덕분에 사람 구실하며 잘 살아요.
어서 빨리 나아서 우리 같이 맛있는 거 먹으러 가요.
이모 힘내요.
목이 메어서 말은 짧았고 여백은 길었다.
이모의 손을 잡고 예전의 모습이 그림자만 남은 이모의 몸을 보며
소용돌이치는 감정에 어쩔 줄 몰라하는 나를 두고
그렇게 이모의 삶은 마지막을 향해서 성실하게 흐르고 있었다.
이모는 특히 죽음을 두려워했다.
왜 안 그렇겠는가. 이 세상 사람들 중에는
내가 거기 가봤는데 말이야.
이렇게 경험을 나눠줄 사람 하나 없으니.
이 세상 얘기밖에 해드릴 수 없는 나의 한계에 답답함을 느끼며
죽음이라는 것은 어쩌면 이다지도 철저히 고독한 것인지 뼈저리게 느꼈다.
결코 나눠 짊어질 수 없는 것, 덜어질 수 없는 것이 죽음의 무게라는 것을
나는 이모의 죽음을 통해서 사무치게 알 수 있었다.
그 외로움에 대해서, 그 고독감에 대해서
감히 안다고 할 수 없고
알 수도 없으니
미지의 것에 대한 두려움이 더욱 커져가는 것을 느낀다.
옛날 사람들도 그 외로움과 고독감에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고자 상여에 꼭두를 넣었다.
저승길의 동반자가 꼭두이다.
정제되지 않은 날것의 목인형이 정겨운 것은 우리 삶의 동반자가 연예인이 아니라
그냥 내 옆의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생을 사는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저 생을 우리는 결코 알 수 없으리라는 것을.
하지만 알고 있다.
저승을 가는 길은 홀로 걸어가야 하는 것임을.
그래서 외롭지 말라고 꼭두를 넣었다.
그 마음에 외롭지 않다.
누군가는 나를, 저승에 홀로 갈 나를 배웅한다.
그리고 염려해 준다.
배려하는 마음이, 생각하는 마음이, 따듯한 그 무엇이
우리의 마지막 길을 안온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1인 가구인 나는 얼어붙을 것처럼 불안한 마음을 이렇게 애써 다잡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