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루시 Sep 12. 2021

새로운 출발

생라자르 역-클로드모네, 1877년

그러니까 레퍼런스 체크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직장 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당연히 이런 부탁을 받게 된다. 이직의 필수 조건으로 레퍼런스 체크가 따라오기 때문이다. 정년의 개념이 없어진 시대, 어느 때보다도 회사 간 유동 인구의 비율이 높은 시대니까 레퍼런스 체크가 늘어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특히 용감하고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은 이직을 하는 것에 대해서도 거부감이 상대적으로 적은 모양인지 이런 성향의 사람들에게 레퍼런스 체크 부탁을 받게 된다. 당연히 한 사람에 대해서 여러 번, 다른 회사의 면접 자료에 필요할 레퍼런스 체크에 응해주기도 한다.

헤드헌터들이 물어보는 것은 상당히 정형화되어 있다. 업무 스타일은 어떤지, 장단점 등등. 통화 시간은 그야말로 짧게 걸린다. 헤드헌터 회사에 다니는 사람들이나 채용 담당자들은 알겠지만 레퍼런스 체크는 당연히 비교적 친한 사람에게 부탁하게 되고 그렇다면 거기서 듣는 대답은 상당히 순화되어 나갈 수밖에 없다. 그러니 그런 레퍼런스 체크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어느 정도 상황을 감안하고 판단을 내리게 되겠지.

레퍼런스 체크에서만 끝나는 것도 아니다. 채용할 회사의 담당자가, 혹은 임원이 면접을 진행한다. 면접이 모든 것을 말해주지는 않지만(어떻게 그런 소시오패스를 뽑았어? 면접 때 몰랐어? 이런 사람, 회사에 꼭 있죠?) 그래도 직접 당사자를 마주하고 얘기를 나눠보고 질문에 답변을 하는 것을 보면서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우리 조직에 잘 적응할지, 업무는 어떤 식으로 해나갈 수 있을지 가늠해볼 수 있는 것이다.

며칠 전에도 예전 회사 동료로부터 레퍼런스 체크 부탁을 받았다. 나에게 그녀는 그야말로 온몸으로 부딪쳐 삶을 살아내는 여인이라는 인상이 강하다. 나이는 그야말로 이웃집 개에게나 줘버리는 과감성, 새로운 시도에 전혀 두려움 없이 도전한다. 아, 그 과감함과 용기에 건배라도 하고 싶어 진다. 백신 맞아서 못 마시지만. 그리고 취직도 잘하는 것 같다. 순전히 나의 느낌이지만. 

하필이면 회사의 자리 전화로 레퍼런스 체크 연락이 왔다. 두 번이나 회의 참석으로 받지 못했다. 모르는 번호가 연달아 두 번 찍혀 있는 것을 보고 고개를 갸웃하다가 그 번호가 그녀가 부탁했던 레퍼런스 체크 연락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놓친 전화는 오전에, 그리고 그 전화가 레퍼첵 전화일지도 모른다고 추측한 것은 퇴근하려고 전화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든 생각이었다. 그렇게 나는 그녀의 레퍼런스 체크를 해주지 못했다.

그래서 조금 불편한 마음이었는데 그녀에게 그 회사 면접을 망쳤다는 얘기를 들었다. 흠. 그렇다면 조금이나마 면죄부가 되려나. 나 역시 레퍼런스 체크 전화를 놓친 것 같다고 말했다. 며칠 후 레퍼첵을 의뢰했던 회사가 아닌 다른 회사에 합격을 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리고 ‘새로운 출발’을 할 그녀가 부러웠다.

새로운 출발. 새로운 출발이라는 느낌을 받았던 지가 얼마나 오래된 걸까. 대학 신입생 때, 그야말로 나는 ‘새로운 출발’이라는 마음이었다. 얏호, 나는 더 이상 교복을 입을 필요가 없다. 정해진 규율 따위는 없다. 물론 수업은 있지만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중고등학교의 빽빽했던 일과에 비하면 이건 뭐 천국이었다. 흘러넘치는 시간을 주체하기 어려웠던 대학교 시절. 참으로 그립네. 예전에는 취업에 그렇게 목을 매달던 때는 아니어서 사람들이 대학 캠퍼스에서 술 마시고 농땡이 부리고 멍 때리고 연애하고 웃고 떠들고, 진짜 호시절이었는데 말이다. 그 벅찬 시간의 여백 앞에서, 나는 진정으로 내 인생의 새로운 시대가 개막되었음을 알았다. 맘껏, 이라는 말이 무슨 말인지도 몸으로 알았다. 대학에 들어오길 참 잘했다고 생각했다. 즐거웠다. 

그리고 회사 1년 차. 이 역시 새로운 출발이라는 느낌이 강렬했다. 난생처음 내가 ‘월급’이라는 것을 받다니. 그 감격스러움. 앞으로 펼쳐질 밥벌이의 고단함보다는 뭔가 일을 하고 그 일에 대한 대가를 받는다는 것의 신선함이 좋았다. 이것이 바로 돈벌이의 즐거움이로구나. 쓰기 위해서 버는구나! 스스로 경제권을 가지고 통제하고 벌고 쓰는 것이 주는 자유로움, 이것 역시 대학생 때는 경험하지 못한 일이었다. 

하지만 직장 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이런 신선한 ‘새로운 출발’은 잘 나타나 주지 않는다. 물론 있다. 팀을 옮기거나 승진을 하거나 더 드라마틱하게는 이직을 하거나. 이직 정도가 대학 1학년생이나 회사 1년 차의 새로움을 선사한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과 희망이 공존하는 변화, 그것만이 줄 수 있는 짜릿한 경험을 클로드 모네가 ‘생 라자르 역’에서 보여주고 있었다.

[from:London National Gallery]

철골로 된 맞배지붕 아래 기차가 들어오고 있다. 증기열차가 내뿜는 증기가 대기를 채우고 사람들은 이 신 문물 앞에서 앞으로 펼쳐질 새로움에 설레고 있을 것이다. 마차밖에 못 봤던 사람들에게 검은색의 철로 된 긴 열차는 얼마나 신기한 존재였을까. 게다가 말이 없이 움직인다니. 참으로 놀라운 일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쉬지 않고 달린다고? 파리에서 낭트까지 얼마나 걸린다고? 지금 생 라자르 역에 모여 있는 사람들은 모두 가슴이 울렁이고 있지 않을까. 기차를 타고 즐길 새로운 출발 앞에서 얼마나 많은 기대감을 품고 있을까.

물론 그것 외에도 마음의 한 줄기, 불안감은 있을 것이다. 내뿜는 증기. 시야를 흐리는 그 증기. 새로운 출발은 항상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흥분과 설렘도 있지만 한 치 앞도 알기 어려운 것이 새로운 출발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렇기에 그건 우리를 끊임없이 유혹한다. 항상 가던 길로만 가지 말라고, 여기 네가 모르는 새로운 길이 있다고, 새로운 세계가 있다고 말이다. 

모든 것이 격변했던 19세기 말, 사람들은 어떤 심정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을까. 흥분되고 떨리는 마음도, 걱정스러운 마음도 새로움이 뿜어내는 증기 앞에서 뿌옇게 흐려지지 않았을까.

지인은 살던 곳이 아닌 낯선 도시에서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되었다. 아마도 이 그림이 내뿜는 증기보다도 더 짙은 증기가 그녀 앞에 펼쳐져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곳을 향해 내딛는 그녀의 새로운 출발이 왠지 모르게 부럽기도 하다. 새로 시작한다는 것은 누구에게는 가능성을 두드린다는 것이므로. 아무리 마음을 새롭게 다잡으려 해도 지금 있는 자리에서 새로운 출발이 안 되는 것은, 내가 너무 인간적이라는 뜻이라고 자위해본다. 스스로에게 지금 있는 자리에서 퀀텀점프를 해야 한다고 자꾸 되뇌게 되는 요즘이다.

작가의 이전글 사기를 당하더라도 미래는 알고 싶어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