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일오수-윤두서, 17세기 후반경
눈을 뜨니 새벽 4시 44분이었다. 씁쓸한 기분을 되새기면서 잠든 시간이 11시가 넘었었다. 좋아하는 중드를 보고(물론 이것을 볼 때에도 자꾸만 정신은 옆길로 빠졌더랬다.) 역시 좋아하는 타우누스 시리즈의 너무 친한 친구들을 펼쳐 들었다. 추리소설이니 당연히 집중해야 했지만 형사들이 추리하는 도중에도 나의 신경은 자꾸만 낮에 일어났던 일에 집중되었다.
에라이, 접자.
그렇게 스탠드를 끄고 잠을 청했다.
하지만,
하지만 잠이 올리 만무했다.
똑바로 누우니 바로 낮에 있었던 일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회사에는 관계가 좋은 사람도 있고 나쁜 사람도 있다. 같이 일을 하고 도움을 주고 싶은 사람도 있고 될 수 있으면 말조차 엮기 싫은 사람도 있다. 조직이 5명 정도로 작다면 모두 다 좋은 사람, 괜찮은 사람으로 채워질 확률도 배제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 조직이 10명이 되는 순간, 경험적으로 꼭 이상하거나 특이한 사람이 1명은 섞이게 된다.
사람을 충원하는 문제로 논의를 하려고 했는데 상대가 녹음기를 누르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아, 녹음하네요?”
대놓고 말했다. 상대는 당연히 민망해했다. 차라리 나 모르게 하지. 동작이 굼뜬 게 문제라니까.
각종 르포 프로그램이 넘쳐나는 가운데 항상 증거로 채택되는 것 중에 빠지지 않는 것이 ‘녹음 파일’이다. 요즘은 말을 하는 빈도도 많이 낮아져 메신저의 대화 내용도 종종 등장한다. 나도 많이 봤다. 내부 고발자들에 의해서 공개되는 녹음파일을 방송을 통해서 말이다. 그리고 그 화면을 보면서 생각했다. 내가 누군가와 나눈 말도 녹음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게 정상이겠지.
이렇게 그 일이 내 일이 아닐 때에는 제법 배포도 크고 대범하게 생각했다.
그러려니.
하지만 그건 남의 일이니까 그런 거였다. 내 앞에서 누군가가 나와의 대화를 녹음하는 것을 목격하니 기분이 상당히 불쾌했다. 논의의 내용과는 상관없이 말이다. 그리고 내 앞에 앉은 상대마저 세상에서 제일 불쾌한 사람으로 느껴졌다. 가까이해서는 안될 사람으로, 될 수 있으면 말을 하고 싶지 않고 엮이고 싶지 않은 사람으로 말이다.
사실 논의 내용은 별 게 없었다. 채용을 회사에 얘기는 해 보겠지만 경영상의 이유로 거절될 수도 있으니 알고 있어라. 그렇다면 그는 뭘 녹음하고 싶었던 걸까. 고개가 갸웃해지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사람은 다 내 마음 같지 않습니다. 그러니 문제가 있는 사람과는 더 많은 대화를 나눠야 합니다.”
추석에 차담을 나눴던 인월 스님의 말도 뇌리를 스쳤으나, 스님, 그 사람이 항상 녹음기를 켜놓는다면 스님은 인간적으로 그 사람과 많은 대화를 나누고 싶겠습니까.라고 되묻고 싶어졌다.
그 5분도 안된 짧은 순간으로 나의 하루가 진흙탕이 된 것 같았다. 분노도 치밀고 만약에 '쌍욕방'이 있다면 그 방을 찾아가 욕을 하고 싶었다. 뭐 저따위가.
회사에 있을 때에도 수시로 화가 치밀었고 퇴근길에도 생각은 자꾸 그 녹음의 기억으로 회귀되었다. 집에 돌아와서 다른 일을 하면서도 자꾸만 생각은 그 사건에 집중되었다.
그래서 막상 자려고 똑바로 침대에 누웠을 때에도 사건이 생각나며 나도 앞으로 그와의 대화는 항상 녹음을 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리고 될 수 있으면 접촉을 최소화할 것. 녹음할 기회를 주지 않을 것 등등을 생각하며 부지불식간에 잠에 들었던 것 같다.
당연히 이런 생각을 하고 잠이 들었기 때문에 꿈 역시 편안하지 않았다. 어딘가 낯선 곳을 좀 심하게 헤매다가(그래서 몸은 엄청나게 고단했다.) 아, 안 돼, 이럴 수 없어, 일어나야 해!라는 자각을 하며 눈을 퍼뜩 떠보니 새벽 4시 44분이었던 거다.
여전히 씁쓸한 입맛을 다시며 다시 어제의 기억을 소환하니, 이제 잠은 오지 않을 것 같았다. 어딘가로 빨리 이 기분을 세탁하듯이 풀어버리고 빨리 탈출해서 나오자. 이렇게 생각했다. 순리에 맞게 행동한다면 누가 녹음을 하든 상관없는 거다. 나만 떳떳하면 된다. 그리고 진짜 레알로 모든 대화는 녹음되고 있는 거다. 아니 그럴 거면 그냥 모든 회의실에 자동 녹화 시스템을 만들면 어떨까? 회사 차원에서. 그러면 임의 편집도 막을 수 있고 더 좋아지는 거 아니야? 회사 복지 차원에서 꼭 되었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젠장, 잠은 다 잤네. 싶었다.
그런데 또 희한한 게 스르륵, 잠든 거 있죠? 친구들한테 하소연해야지. 이런 더러운 경우를 말하면 모두 나에게 공감해 줄 거야. 이런 달콤한 생각이 나를 잠으로 이끌었나 보다. 그리고 늦은 아침에 눈을 뜨니 어제나 오늘 새벽만큼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그래서 생각했다. 역시 ‘잠’의 치유력은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나 보다.
잠의 효용에 대해서는 이전에도 한 번 쓴 적이 있는 것 같은데 잠을 잘 자야 몸의 자율신경계가 스스로 여기저기 정상적으로 작동이 되고 있는지를 점검해서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신기한 인체의 신비다. 그리고 나는 가장 인간적인 관습으로 ‘시에스타’를 꼽는다. 점심을 먹고 식당을 나서는 순간부터 잠이 쏟아지는 나로서는 그 관습이 참 부럽다. 이른 오후에 30분. 개꿀일 것 같지 않습니까.
여기 여름 한 낮, 너른 나무 그늘 아래에서 편안하게 팔을 괴고 낮잠을 즐기는 한 신선, 아니 남자가 있다. 그야말로 신선놀음이 아닐 수 없다. 나무 그늘과 어디선가 불어오는 바람이 시원했는지 그의 발치에 있는 부채는 버림받은 지 오래인 듯하다. 낮은 평상에 누워 곤하게 잠을 자는 그의 얼굴은 평온하다.(녹음기가 없던 시절이라 가능한 얼굴?) 평상 뒤로 보이는 난간은 정교하게 만들어진 것이 집의 부를 가늠하게 한다. 후대를 사는 우리 집 난간도 저렇게 정교하게 정성은 안 들였는데 말이죠.
그는 어떤 꿈을 꾸고 있을까? 평온한 얼굴 표정으로 볼 때 어젯밤 내가 꾼 꿈처럼 어딘가를 헤매는 것은 필시 아닐 것이다. 꿈에서도 팔자 좋은 역할을 하고 있지 않을까. 시원한 사람이 살랑대고 멀리서 들리는 물소리를 감상하며 맛난 것을 먹는 그런 꿈. 입꼬리가 올라간 것이 어지간히도 흡족한 꿈인가 보다. 그 양반 입성하며 얼굴 흐름 하며 참 점잖게 늙었구나 싶다.
아무리 생각해도 문제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을 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도 답이 나오지 않을 때, 오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기분이 더러울 때, 그래서 나는 이 양반처럼 잠을 청한다. 한 잠 자고 나면 그 모든 것이 일장춘몽처럼 우습게 느껴질 수도 있다. 아무리 찧고 까불고 나댄다 한 들, 이 양반처럼 달관한 듯한 잠의 포스 앞에서는 맥을 못 출 것 같다. 치유의 능력이 있는 잠을 청하러 다시 침대로 직진하련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뜰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