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식-빌헬름 함메르쇠이, 1905년
나에게 있어서 가장 좋은 휴식이란 여행을 가는 것이다. 일상을 벗어나(이 말은 일상을 싫어한다는 방증인 건가?) 낯선 곳에 떨어졌을 때의 신선함, 신기함, 이색적인 느낌을 사랑한다.
물론 국내외를 가리지는 않는다. 상대적으로 국내는 ‘나중에라도 갈 수 있잖아?’ 이런 생각이 작용한 까닭인지 국외를 더 선호했다.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 같기는 하다. 왜? 더 드라마틱하잖아. 다른 언어, 다른 인종의 사람들이 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색다름은 최고점을 찍는다. 게다가 우리와는 다른 문화, 역사가 겹쳐지면 그야말로 나에게는 최고의 휴식이 된다.
고흐의 아를의 방에 있던 밀짚으로 엮은 의자처럼 생긴 노천카페의 의자에 앉아서 서서히 해가 지고 조명이 들어오던 파르테논 신전을 바라보고 있을 때, 난 깨달았다. 왜 그리스가 서양 역사의 시원이 되었는지를. 그 고고함과 견고함이 어떻게 시간을 견뎠는지를. 크게 꾸미지 않았어도 단순함이 주는 묵직함이 시공간을 초월해 나를 감동의 코너로 밀어 넣었다.
이런 순간은 곳곳을 다니면서 반복되었다. 이탈리아의 땅이 유쾌하게 웃을 때에도, 파리의 남색 지붕이 멜랑꼴리함을 흠뻑 자아낼 때에도, 뉴욕 미드타운을 걸을 때에도, 리지앙 수로를 졸졸 흐르던 물을 바라볼 때에도 그곳만의 분위기와 시간의 축적이 나에게 주는 에너지는 말로는 잘 설명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물론 내 방 침대에 누워 뒹굴거리며 히가시노 게이고의 추리소설을 보는 것도, 중국 현대 드라마를 보는 것도 좋은 휴식이기는 하다. 다시 재개한, 불가마에 들어가는 것도 못지않은 개운함을 준다.
잠?
잠 역시 좋은 휴식이었던 적이 있었다. 야근이 계속되는 밤, 12시가 넘어서 퇴근하던 시절에는 쉬는 날이면 폭력적으로 잠을 자곤 했다. 잠은 잠을 추가로 불러와 그때에는 눈을 뜨면 또 감고, 그야말로 침대를 떠나지 않았던 적도 있었으나......
이제는 나이를 든 것인지 잠 폭력은 행사하지도 못한다. 휴일의 낮잠도 몇 시간씩 이어지지 않는다. 쓰다 보니 뭔가 손해를 본 듯한 느낌도 든다.
여행도, 불가마도 접근이 쉽지 않은 요즘, 집에서 취하는 휴식의 끝판왕이 바로 이 여인이지 않을까.
빌헬름 함메르쇠이가 그린 ‘휴식’. 하던 일을 멈추고 잠깐 쉼. 여인은 의자에 걸터앉아 있다. 미끄러지듯이 엉덩이를 등받이 쪽에 밀착시킨, 허리에 좋은 자세가 아닌, 축 늘어진 자세로. 저 자세가 허리에는 안 좋을지 몰라도 쉬는 사람에게는 상당히 편안하다. 마치 눕기 직전의 자세와 같은 포즈여서 그럴까. 오른팔을 등받이 뒤로 완전히 빼는 것도 상당히 편한데 아직 그녀는 그렇게 까지 팔을 빼지는 않았다.
고요한 실내, 집안일을 하다가 쏟아져 들어오는 햇살에 잠시 ‘쉬어보자’는 마음이 든 것일까? 그녀 오른쪽의 테이블 위에는 하얀 조개 모양의 사기 접시가 그 속에 뭐가 들어있는지를 보여주지 않은 채 놓여 있다. 왼편을 보고 있는 듯한 그녀의 시선은 어디로 향하고 있을까. 무덤덤한 회색 계열의 벽지, 그녀가 입고 있는 옷 역시 무채색 계열이다. 이 공간에서 가장 밝은 빛을 발하고 있는 것은 조개 접시와 그녀의 흰 목덜미뿐이다.
빌헬름 함메르쇠이는 덴마크 화가다. 그래서 이렇게 무채색에 고요한 느낌이 난 것일까. 특히 다양한 실내 풍경을 그린 것으로 유명한데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실내는 고요하면서도 사람의 마음을 부드럽게 잡아끄는 매력이 있다. 시끌벅적한 소풍과 같은 느낌은 1도 없다. 극적인 드라마가 펼쳐지는 공간은 아니다. 그림에 등장하는 여인은 그의 아내가 모델이었다고 하고 실내 역시 본인이 살던 집의 풍경이라고 한다.
상당히 미니멀한걸? 가본 적도 없는 북유럽 특유의 미니멀 인테리어가 이런 것인가 싶기도 하다. 장식적인 요소가 적고 조용한 분위기가 감돌지만 그렇다고 따분한 느낌은 들지 않는다. 여기, 이 공간에는 좀 더 사람의 관심을 끄는 뭔가가 더 있다.
그녀가 전업주부라면(그림이 그려진 시대를 고려하면 그럴 확률이 상당히 높다.) 그녀에게 이곳은 일터일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가정이 휴식처일 테지만 그녀에게는 아닐 것이다.
직장에서의 휴식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학창 시절의 40분 수업, 10분 휴식, 혹은 50분 수업, 10분 휴식이 얼마나 과학적인 시간 배분이었는지 나는 직장을 다니면서 감탄하는 중이다. 기계도 잠시 재정비를 하는 시간이 필요하듯이 우리 인간도 마찬가지다. 휴식에서 항상 다른 생각이 떠오른다. 다른 아이디어가 생각난다. 다른 돌파구가 보인다. 텐션을 가지고 집중을 하고 있다가 그것을 갑자기 풀어버렸을 때, 비로소 우리가 온 마음을 다해서 바라고 있던 것이 이뤄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녀는 청소에 지쳤을지도 모른다. 장식이라고는 1도 없는 집이기에 청결하게 유지하는 것만이 집안을 예쁘게 꾸미는 것의 전부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알고 있다. 집안일은 티가 나지 않는 일이라는 것을. 그래서 작은 한숨을 내쉬고 있는지도 모른다. 왼쪽에서 들어오는 빛 사이로 먼지가 날아다니지는 않는구나, 그런 생각은 그녀의 머릿속에 자동으로 떠다니는 걸지도 모른다.
청소를 하는 중간에 저녁 메뉴를 생각하고 있을 수도 있다. 집안일이 티가 나지 않는다는 특징도 있지만 끊이지 않는다는 특징도 동시에 지니고 있다. 참으로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훈제 청어가 있으니 호밀빵에, 미트볼을 준비하고…… 머릿속으로는 바쁘게 시뮬레이션 중일 수도 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탁, 하고 한숨이 풀려 햇살이 쏟아지는 창 너머로, 넘실대는 북해를 망연자실 바라보고 있다. 나도 휴가를 가고 싶다고, 어딘가로 떠나고 싶다고, 이 지친 몸과 마음을 충전하고 싶다는 마음이지 않을까. 그녀의 축 늘어진 뒷모습에서 나는 그런 인상을 받는다. 햇살 따뜻한 해변의 선베드에 누워서 훈제연어 생각일랑 걷어치우고 누가 해주는 음식을 맛나게 음미하며 한없이 늘어져 있는 달콤한 생각을, 그녀는 하고 있지 않을까.(네? 그건 너의 바람 아니냐고요?)
돌아서면 워크숍을 하는 것 같은 나날이 이어지고 있다. 보고도 돌아서면 있는 것 같다. 거기에 따르는 업무도 줄을 서 있다. 보통은 연말연시는 상당히 따뜻하고 여유로웠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작년은 아니었다. 그리고 올해 역시 뭐, 업무 구름이 잔뜩 끼어 있는 것 같다. 그녀의 직장에서의 망중한을 바라보면서, 나 역시 다음 주에는 망중한을 꼭, 기필코! 즐겨보자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