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습관-로렌스 알마 타데마,1909년
그의 그림을 봤을 때 나는 한없이 나른해짐을 느꼈다. 긴장이 확 풀리고 어딘가 눕고 싶은 노곤함, 따스한 봄날, 배부르게 밥을 먹고 툇마루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는 듯한 느낌. 그대로 몸을 어딘가에 누이고 싶게 만드는 것이 타데마의 그림에 있었다.
그림은 한없이 아름답다. 서양의 고전미가 돋보이는 하얀 대리석과 그 대리석보다 더 아름답고 고상한 여인들이 수두룩하게 등장한다. 꽃이며 배경의 묘사도 상당히 아름다워 그의 그림을 보고 있으며 쉬이 시선을 거두지 못하면서도 동시에 노곤함이 습격해오는 것을 당해내지 못한다.
도대체 어떻게 생긴 작가이길래 이런 그림을?
이름에 ‘sir’가 붙은 걸로 봐서 영국인인가? 하지만 그는 네덜란드 태생이었고 이탈리아로 유학을 떠나 그 길로 그만 고전 문화에 빠져버린 모양이다. 여기까지는 영국과의 연관성은 1도 없는데 영국의 화가 로라 앱스를 만나 재혼하면서 그 길로 영국인으로 귀화했다고 하니 뭐랄까 상당히 드라마틱하다고 할까. 열정적인 사람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인물이었다. 영국이 또 고고학이나 고대 로마 연구에 열심인 나라였기도 하니 타데마의 입장에서는 좋은 선택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그는 한 우물을 판 모양이다. 그것도 상당히 훌륭했는지 ‘sir’의 작위를 받았다. 지금으로 치면 엘튼존이나 데이비드 호크니와 같은 반열에 올랐나 보다. 그리고 그의 그림들을 보고 있노라면 그가 위대한 예술가의 반열에 올랐음을 인정하게 된다.
그의 그림을 관통하고 있는 고전미는 일관되며 아름답다.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의 풍경을 주로 제작했다고 하는데 단순히 그렇게 설명하기에는 좀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 분명 그의 그림을 보면 그리스/로마 시대가 떠오른다. 건축 양식이 그렇고 의복도 그 시대의 양식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미묘하게 ‘이게 그 시대라고?’라는 질문이 들게 하는 지점이 있다. 옷이 묘하게 화려하거나 그 시대의 양식을 차용한 현대적인 느낌을 줘서 그럴 수도 있다. 언뜻 보면 그들이 걸치고 있는 옷은 19세기 신고전주의 의상인 것도 같다. 제인 에어에서 봤던 옷 같은데? 엠마가 걸쳤던 의상 아니야? 또한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꽃장식도 내 눈에는 상당히 현대적으로 보인다. 포르투갈 포르투의 포사다에서 묶었을 때, 으리으리한 궁전에 어울리게 커다란 대리석 테이블 위에 있던 꽃꽂이를 보는 듯하다.
그래서 그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나는 갸웃거리게 된다. 미묘하게 어긋나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고 할까. 그래서 더 매력적으로 느끼는 지도 모르겠다. 마치 고대 그리스/로마 체험을 하는 현대인들을 보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그들의 표정에 나타난 ‘나른함’에 더 친근감을 가지는 건지도 모르겠다. 현실에서 벗어나 다른 체험을 하면서 한껏 풀어져 있는 사람의 얼굴에 내 얼굴을 포개면서 나도 저런 일탈을 해보고 싶다고 바란다.
특히 이 a favorite custom이라는 작품을 보고 나는 홀딱 반해버렸다. 확실히 이탈리아에 빠진 사람답게 그는 로마인에게 있어서 ‘목욕’이 차지하는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이 목욕하는 습성을 좋아하는 습관으로 명명한 것을 보면.
고대 로마의 유적에 가면 항상 있는 것이 목욕탕이고 그 규모의 크기와 시설의 다양함에 감탄하게 되는데 단순히 목욕탕은 몸을 깨끗이 하는 기능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정보를 교환하고 친목을 도모하며 비즈니스를 성사시키고 정치를 하는, 그야말로 만능 시설로의 기능을 했다. 물론 체력 단련을 하기도 했다. 냉탕과 열탕을 오가면서 몸의 짜릿한 반응을 얼마나 기쁜 마음으로 몸의 반응을 관찰했을까?(저,저만, 그런 건 아니겠죠?) 냉탕과 열탕 사이에서 멍하니 천장에 난 창을 보면서 ‘릴랙~~스’했을 것이다. 무아지경에 빠졌을 것이다.
“들었어?”
“뭘?”
“율리아가 결혼 한다잖아. 넌 도대체 여기 와서 사람들이랑 얘기도 안 한 거야?”
“뭐라고? 누구랑?”
“키케로랑. 그렇게 되면 율리아네 집은 한 숨 돌리게 된 거지.”
이런 식으로 가문대 가문으로 연결되었던 결혼에 대한 정보며 요즘 유행하는 패션에 대한 것, 잘하는 음식점, 해외 식민지의 작황 상황이나 전쟁에 대한 소식 등등 요즘으로 치면 커뮤니티와 같은 온갖 ‘썰’들이 들불처럼 일어나던 공간이 아니었을까?
“이번에 마르쿠스가 죽으면서 그 자리를 가이우스가 맡나봐.”
“어머어머, 그 걱정 많은 가이우스가? 아 난 완전히 죽었다.”
“그러니까 남자들도 걱정이 보통이 아니야.”
“일이 얼마나 꼬일지 안 봐도 가시밭길이네.”
이런 서민들의 직장 정보도 블라인드보다 더 빠르게 퍼지지 않았을까?
정보가 모이는 곳은 항상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지기 마련이고 정보가 돈이 된다는 사실은 고대나 현재나 별 차이가 없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그들에게 ‘목욕탕’은 그 어느 공간보다 소중한 공간이 아니었을까?
다시 타테마의 그림을 보자. 여자들의 목욕 공간이 방대한 스케일을 자랑하며 펼쳐져 있다. 맨 앞쪽에 있는 여인 두 명은 신나게 물 속을 워킹하며 일상의 피로를 풀고 있는 중이다. 중력의 저항이 최소화한 곳에서 자유롭게 물놀이 중이다. 오른쪽 장난기 많은 여인은 친구에게 물을 확 뿌릴 기세다. 조심스럽게 몸을 뒤로 빼며 막는 시늉을 하는 친구는 머릿수건까지 한 것이 여간 조심성이 많은 아가씨가 아닌 듯 하다.(보통 탕 속에서는 머릿수건을 하라고 하는데 고대 로마는 프리스타일이었던 듯.) 발그레한 그녀의 볼에서 목욕탕의 물 냄새가 나는 것 같다. 아마 오늘 밤은 숙면을 취하지 않을까?
탕 뒤편으로는 대리석 의자에 앉아 옷을 입는 여인도 보이고 이제 탕으로 입수할 준비를 마치고 걸어오고 있는 여인도 보인다. 그녀의 옆쪽 테이블에 보라색 꽃이 놓여있는 화병이 욕탕의 분위기를 고급지게 만든다. 수국일까? 꽃이 이렇게 생화로 꽂혀 있으면 손님들의 기분을 한껏 ‘업’해 줬을 것이다.
벽면에 뚫려 있는 구멍에는 다양한 소지품이 놓여 있다. 개중에는 손님들의 것도 있을 것이고 목욕탕에서 쓰이는 비품들도 있을 것이다. 그 당시에도 손님들의 몸을 세신하는 사람들도 있었을 테니 그들의 물건도 있었을 것이고. 우측에 우리에게 맨 등을 보이고 있는 손님의 몸을 흰 수건으로 닦아주는 이가 세신사 아닐까요?
저 뒤편으로 목욕커튼을 단 출입구가 보인다. 상당히 현대적이다. 천고가 높을 욕탕은 하얀 대리석으로 잘 꾸며져 있다. 그리고 밝다. 아마 천장에 채광을 고려한 천창을 잘 설계한 모양이다. 답답하고 어둑서니한 느낌은 전혀 없고 쾌적하고 습하지 않은 기운이 이 목욕탕을 감싸고 있을 것 같다. 나도 갈 수만 있다면 가고 싶은 곳이다. 고대로 내가 여행할 수만 있다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고대 로마의 목욕장으로 나를 데려가달라고 외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