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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시 Nov 12. 2021

거 좀 남의 월급, 훔치지 맙시다

도둑놈-페르난도 보테로, 1980년

덕수궁에서 그의 작품을 처음 봤을 때, 어머어머,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저렇게 ‘빵빵’하게 부풀려진 몸이라니! 

공기 가득 넣은 풍선처럼 터질 듯이 부푼 얼굴과 몸. 그때 본 그림은 행복한 가족류의 그림들이었다. 모나리자나 벨라스케스의 명화를 패러디한 것이 아닌, 같은 식이습관을 공유하는 가족답게 한 명도 빠지지 않고 살이 오른 모습이 시선을 강탈했다.


상당히 마른 것도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지만 상당히 뚱뚱한 것도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나는 그렇게 극단적인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무슨 사연이 있길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동대문 근처에서 다리가 내 팔보다도 가녀린 여배우를 만났을 때에도, 도대체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길래 저렇게 병적으로 마른 것인지가 궁금했다. 저 정도면 거식증이 아닐까 싶었는데 리얼리티 예능에 나와서 먹고 마시는 것을 보면, 그건 아닌가 싶기도 하고.(카메라가 돌아갈 때만 식이를 하는?) 하여간 그녀를 본 충격은 아직도 가시지 않는다. 동대문에서 쇼핑을 할 것이 아니라 병원을 가서 수액을 맞아야 하는 것은 아닌지, 옆에 있는 매니저도 하지 않을 걱정을 했다.(할 일이, 역시 없었군요.)

극단적으로 몸이 불어난 사람을 볼 때에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는 그렇게 많지 않지만 서양에 가면 심심치 않게 만난다. 걸어 다녀도,,,, 괜찮을까. 싶은 생각이 드는 사람도 있고 얼마나 답답할까 싶은 사람도 있다. 하지만 모든 것은 뿌린 대로 거두는 법. 아마 먹는 즐거움이 대단할 것이다. 나 역시 먹는 것에 사족을 못 쓰는 주제에 이런 말을 하는 것도 웃기지만.


고백하자면 나 역시 식이장애를 겪는다. 아니 어쩌면 호르몬 장애일 수도. 과자를 거들떠보지도 않던 내가 감자칩 한 통을 비우지 않고는 잠이 오지 않았다. 아, 스트레스 장애인가? 업무상 재해인 건가! 아무튼 저녁을 먹고 나서 배는 부른데 감자칩으로 향하는 손을 어쩌지 못했다. 먹으면서도 생각한다.

이렇게 먹으면 안 돼! 멈춰야 해!

하지만 그건 생각뿐이다. 스스로도 한심하다 생각하지만 나는 신경질적으로 감자칩을 우걱우걱 씹어대고 있다. 그리고 생각한다.

내일은 이러지 말자.

결과는? 

참담했다. 근육이 빠지고 체지방이 늘었다. 가장 최악의 케이스. 

이렇게 몸이 나빠지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 요즘은 그때처럼 미친 듯이 감자칩에 집착하지 않는다. 배가 불러서 기분이 나쁠 정도로 먹지도 않는다. 하지만 여전히 맛있는 녀석들처럼 먹는 프로그램을 좋아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을 사랑한다. 


우리 시대가 외향적인 ‘룩’을 중시하는 사회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에 대한 반대 운동도 일어나지만 그것은 하나의 반대급부로서의 현상에 그치고 만다. 그래서 그의 부풀려진 인물들을 보고 상당히 독특하다고, 특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나

남미 작가였다. 이런 그림을 그린 사람이 유럽 대륙에 있다고는 상상도 되지 않는다. 

페르난도 보테로는 1932년 콜롬비아 출생 작가이다. 그림 속 인물과 달리 그는 상당히 ‘샤프’한 외모를 자랑한다. 그리고 냉철한 작가정신으로 작품을 만들어온 사람이기도 하다. ‘아름다움’에 천착하기보다는 사회의 왜곡된 모습을 보여주고 그것을 폭로하고 비판한다. 그의 작품을 보고 사회는 반성하고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도 있다. 사이즈 ‘0’을 추종하는 시대에 경종을 울릴 수도 있다. 


"예술은 일상의 고됨으로부터 영혼을 쉴 수 있게 해 준다."


참으로 훌륭한 정신을 가지고 있는 양반이다. 우리는 매일매일이 고되지만 그림 한 장으로, 조각 한 점으로도 위안을 받는다. (솔직히 말하자면 예술적으로 잘 생긴 그의 얼굴에 더 위안을 받았다.)

그렇게 남미의 ‘풍만한’ 인물들에 눈을 뜨게 되었다. 지구 반대편에서 이런 시각으로 작품 활동을 하는 사람도 있구나. 그는 인물만 풍만하게 그리는 것이 아니다. 꽃도, 기타도 마치 오븐에서 빵이 구워지듯이 모든 것이 ‘빵빵’하게 부풀어 있었다. 둥그렇고 따뜻한 분위기, 뭔가 해치지 않을  편안함은 그런 부풀려진 넉넉함에서 나오는 것일지도 모른다.

[from : banrepcultural.org]

하지만 내 마음을 훔친 것은 ‘도둑놈’이라는 그림이었다. 붉은 기와를 얹은 지붕이 빽빽한 어느 마을, 그 지붕 위로 보테로의 시그니처, 풍만한 도둑이 그의 몸만큼이나 부푼 ‘장물’을 산타클로스의 선물 보따리처럼 짊어지고 지붕을 넘어오고 있다. 

나는 이 그림을 본 순간, 그의 얼굴에 ‘정부’가 겹쳐 보였다. 너무 많이 내는 세금에 대한 피해의식에서 나온 것이다. 도대체 왜, 정부는 이렇게 많은 세금을 나에게 징수하는가. 모두 조기 은퇴를 꿈꾸며 파이어족에 대한 꿈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 요즘, 나는 항상 월급 명세서를 보면서 절망한다. 세금과 국민연금으로 나가는 돈을 보고 있노라면 나라가 도둑이라는 말이, 절로 떠오른다. 한 숨이 나온다. 실수령액이 충분하다고 느낄 날이 나에게 올 것인가? ‘얇고 넓게’를 외쳤던 고대 로마의 선정이 우리나라에도 어서 빨리 정착되기를 바라며, 내년 대선, 정신 차리고 뽑아야지, 다시 한번 생각한다.


그래서, 이 그림을 보고는 나는 저 도둑놈이 아주 때려주고 싶을 정도로 화가 났다. 보통 보테로의 그림을 보고는 피식 웃고 마는데 말이다. 아 얄밉다. 숟가락만 얹은 저 도둑놈이! 정부와 자꾸 겹쳐서 생각하지 말자. 그냥 콜롬비아 도둑이라고 생각하자. 

그렇게 보면, 그의 얼굴이 또 만만치 않게 서글퍼 보인다. 벌어진 눈 사이가 더 그런 느낌을 주는지도 모르겠다. 얼이 빠져 있는 듯, 생기라고는 전혀 안 보이는 저 얼굴. 

한 건 했어!라고 주먹을 쥐어 보이는 것이 아닌, 이 짓도 못 해 먹겠군. 이런 인상을 받는다. 

누구에게나 밥벌이는 힘든 것인가. 사회에 비판을 가하는 보테로는 누가 이 남자를 도둑으로 만들었는가를 묻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사회 불평등을 고발하는 그로서는 시스템의 문제를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면도도 제대로 하지 않아 까칠한 그의 얼굴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좋지 않다.(피곤에 쩔어 손질도 못한 내 눈썹이 겹쳐져서 그런지도.)

개인도, 정부도 도둑으로 변하는 것은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보테로의 도둑놈이 더 이상 남의 집을 기웃거리지 않고, 우리 정부 역시 ‘얇고 넓게’의 자세로 조세 정책을 펴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게 되는 겨울의 초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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