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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시 Nov 21. 2021

아마추어여서 좋을 때

일본 의상을 입은 카미유-클로드 모네, 1875~1876년경

‘가르친다’는 것은 참으로 묘한 일이다. 천재가 잘 가르치는 것도 아니고 좋은 대학을 나왔다고 최고의 강사가 되는 것도 아니다. 누구나 비슷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학교 다닐 때 수면제 역할을 했던 선생님이 대한민국 최고의 대학을 나왔다는 사실에 경악을 했던 기억이.

하지만 분명히 남다른 교습법으로 학생들을 열광시키는 선생님도 존재한다. 흔히들 말하는 ‘1타 강사’는 그런 능력이 출중한 사람일 것이고 알기 쉽게, 머릿속에 ‘쏙쏙’ 들어오게 핵심을 짚어주며 공부에 대한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존경스러운 선생님들도 세상에 알알이 박혀 있다. 

골프를 배우는 나에게 ‘강사’, 통칭 ‘프로’라고 불리는 선생님들의 존재는 엄청나게 중요하다. 회사 근처에서 골프 레슨을 끊을 때, 많은 회사 사람들이 추천하는 ‘프로’가 있었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시간대와 맞지 않았고 ‘설마 그렇게 큰 차이가 날까?’라는 안일한 마음으로 나는 덜컥 36회라는 긴 시간을 시간대가 맞는 프로에게 레슨을 들었다.

결과는?

참담했다. 인생에서 본인의 선택에 대한 결과는 철저하게 본인이 책임져야 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뭔가 억울했다. 나는 프로가 나에게 하는 말을 못 알아 들었다.(나중에 회사 동료가 그 프로 무슨 소설을 쓰는 거냐! 고 말해줘서 위로가 되긴 했지만.)

프로님, 왼손 엄지 손가락이 너무 아픈데 뭐가 문제일까요?

어디 한번 보죠.

그리고 나는 스윙을 한다. 하지만 뭐가 문제여서 왼손 엄지 손가락이 아픈지에 대해서는 원인 분석은 없었고 따라서 안 아프게 칠 수 있는 방법도 끝내 찾아지지 않았다. 주변 지인들에게 하소연한 결과 누군가가 보내줄 링크를 통해서 클럽을 오른손으로 받치는 것처럼, 오른손으로 클럽 무게를 지탱했어야 했는데 왼손으로 그 무게를 들었던 것이, 엄지로 힘을 주며 무게를 감내했던 것이 원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프로님과 함께 레슨이 아니라 자율학습을 하는 느낌이었다. 물론 나의 학습 능력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 (왜 있잖아요. 몸치라고.) 

몸으로 박자를 느껴야 한다. 본인에게 가장 잘 맞는 박자로 치는 것이다. 그걸 연습해 주면 된다.

네? 어떻게요?

내가 원하는 것은 몸으로 박자를 느끼면서 치기 위해서는 발을 어떻게 움직인다거나 팔이나 몸통의 움직임을 어떻게 하라는 식의 구체적이고 실체적인 방법론이었는데 프로님은 야속하게 그것을 나에게 알려주지는 않았다. 그래서 결국 나는 왼손 엄지의 통증으로 3주간 골프를 쉬었고 36회를 끝내고 회사 동료들의 열화와 같은 지지를 받는 프로님께 24회 레슨을 끊었다. 왜 36회가 아니었냐고? 한번 데었기에 돌다리도 두들기는 심정으로, 만에 하나 또 나와 안 맞을 수 있다는 불안감에 24회로 끊은 것이다. 비록 내가 원하는 시간대는 아니지만, 또한 이전 프로님보다 10%가 비싸지만 세상에 돈은 정직하다고 그것은 레슨 스킬이 뛰어난 것에 따른 프리미엄이겠지?라고 스스로를 납득시키면서 카드를 긁었다.

그리고 떨리는 마음으로 첫 레슨을 받았는데, 역시 명불허전, 세상은 쓸데없는 이름을 남기지 않는다는 것을 몸소 체험했다. 

지금 회원님 왼쪽 팔을 몸에 꼭 붙이세요. 그 사이가 벌어지면 거리가 안 나요.

문제점이 뭔지, 그리고 해결방법이 뭔지 명확히 말해 주었다. 회사 동료들이 나의 이전 프로님의 교습법을 보며 ‘소설을 쓰는 것 같다’고 표현한 이유가 뭔지 알 것 같았다. 이전 프로님의 교습법은 마치 암호를 해독하는 것처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막막함의 연속이었는데 이번 프로는 첫마디부터 마음에 쏙 들었다. 이래서 사람들의 추천을 무시하면 안 돼. 나는 깊이 반성하며 두 번째 레슨을 마친 상황이다. 마치 골프를 다시 처음 배우는 것처럼 7번 아이언의 반스윙 정도를 하고 있는데 문제는 또 필드에 나간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거기에는 회사에서 ‘프로’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2명이나 있다. 아 떨려. 

프로…… 70타 정도의 안정적인 실력을 갖춘 사람들. 그래서 나는 요즘 점점 쪼그라들고 있다. 프로와 아마추어. 아니 나는 아마추어라는 말도 안 맞는 거 아냐? 새 프로에게 레슨을 받으며 이제야 비로소 새로 시작하고 있으니 아직 풀스윙도 배우지 못한 초등학생 아닌가. 물론 미리 일행에게 실력의 미천함을 알리며 양해를 구했으나 그런다고 해결될 일이 ㅜㅜ

[from : 한경비즈니스]

이렇게 심적으로 ‘쫄리고’ 있을 때 나는 카미유의 환한 미소에 마음의 평화를 얻었다. 빨간색에 도깨비같이 무서운 얼굴을 한 남자가 칼을 뽑고 있는 그림이 그려진 일본식 의상을 프랑스인인 카미유가 멋지게 소화하고 있다. 이 의외의 조화가 카미유 마음에도 들었는지 그녀의 얼굴은 기쁨으로 밝게 빛난다. 옷 하단의 무사의 비장함과 해맑게 웃고 있는 카미유의 대비는 그림에 재미를 더한다. 부채춤을 추려는 것은 아니겠지? 활짝 편 쥘부채는 역시 카미유가 타고난 직업 모델이었음을 다시 한번 보여주는 것 같다. 모로 서 있는 자세와 청중을 보며 짓는 미소와 쥘부채를 연출하고 있는 모습이 참으로 완벽하다. 이렇게 자체 발광하는 모델이니 모네와 사랑에 빠져 결혼했다는 것은 당연한 귀결처럼 느껴진다. 감상자인 나도 사랑스러운 마음이 솟구치는데 직접 대면하고 그림을 그렸을 모네는 더 '사랑사랑'하지 않았을까.

한 바퀴 ‘휘’ 돌며 부채를 ‘촥’ 펼친 그녀의 발치에도 부채가 떨어져 있고 뒤쪽 벽에는 부채 컬렉터의 집이라도 되는 양 다양한 부채가 ‘인테리어’ 되어 있다. 게이샤를 그린 것도, 일본의 풍경을 그린 것처럼 보이는 부채도 있다. 언뜻언뜻 인상파 화가의 건초더미 같은 느낌을 주는 부채도 보인다. 때는 한창 ‘일본풍’의 이국적인 색채와 표현양식이 관심을 끌던 때, 이렇게 이국적인 옷을 입고 멋지게 미소를 날리는 카미유의 여유에 나의 쪼그라들던 마음도 녹았다.

카미유는 이 옷을 입으면 안 어울리면 어쩌지? 이런 걱정은 애당초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난 외국인이니까 어차피 어울리지 않는 게 맞아. 하지만 재미있지 않겠어? 우스꽝스러우면 어때? 이런 대담한 마음으로 쥘부채를 쥔 손에 힘을 주고 모네 앞에 서지 않았을까?

어차피 어울리지 않을 것을 전제로 하고 어차피 잘하지 못하는 것을 전제로 하면 마음이 편하다. 그게 자연스럽고 그게 보통이기 때문이다. 때로는 아마추어여서 좋을 때도 있는 것이다. 부담 없이, 못 하는 게 당연하니까 일본 옷을 입고 여유 있게 ‘턴’을 하는 카미유처럼 나도 스윙을 ‘휙’ 휘둘러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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