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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시 Dec 25. 2021

조각 투자 말고 홀 투자, please~

선으로부터-이우환, 1974년

미술품 투자에 관심을 가진지는 오래되었으나, 관심만 오래되었다. 잘 알다시피 쇼핑에 드는 가격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웬만한 명품 가격을 상회하기 마련이고 특히 마음에 드는 그림은 ‘국부’ 정도의 '부'를 가지고 있어야 살 수 있다. 작고한 화가의 그림은 뭐 기웃거리지도 않는다. 고흐나 호퍼나 보티첼리는 꿈도 꾸지 않는다. 아니 꿈은 꾸고 싶다. 다빈치의 뭐 하나라도...... 눈물 나는군요. 하지만 나도 생존 작가의 작품을 하나는 소장하고 있다. 유일한 콜렉팅이다. 이명호 작가의 ‘나무’ 시리즈 중에 하나를 가지고 있다.

“미술 투자의 좋은 점은 내가 좋아하는 작품을 즐기면서 투자 가치도 상승하는 데에 있죠.”

화상은 나에게 그렇게 말했다. 아마 미술품을 투자하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내가 좋아하는 그림을 실컷 보면서 나중에는 가격의 상승까지 기대할 수 있다니! 이런 로또가!

[내 컬렉팅은 아니지만 이런 식의 시리즈다. from 요시밀로 갤러리]

이명호 작가의 작품은 자연의 뒤에 거대한 캔버스를 대고 그것을 사진에 담는다. 그리고 그것이 하나의 작품이 된다. 이명호 작가는 캔버스의 역할을 ‘환기’라고 하는데 그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바로 이해가 된다. 그는 여러 개의 나무 시리즈 작업을 했는데 내가 가지고 있는 작품은 약간 zen 스러움이 묻어나는 작품이다. 그래서 좋았다. 뒤에 장난스럽게 스탭이 고개를 내밀고 있는 것도 위트가 있어 좋았고 가로로 긴 사진이 주는 여백의 미도 좋았다. 나무 뒤에 거대한 캔버스, 그것으로 하나의 자연이 그대로 작품으로 변하는 마술적인 시각.

“본질을 탐구하다 보니 예술을 이야기할 때 가장 상징적인 소재가 캔버스더라고요. 캔버스 위에 표현하면 그게 바로 작품이 되잖아요. 그 대상이 무엇이든지요. 대학 시절 캠퍼스 안에 앉아 있는데 늘 보이던 나무가 어느 날 너무 인상적으로 다가오는 거예요. 그날따라 말이에요. 예술이라는 건, 그런 게 아닐까 생각했어요. 지금 표현해야 하는 걸 들추어내는 것, 작가들은 그런 것들을 찾아내서 환기시켜야 하는 게 아닐까.”(마크 테토와의 인터뷰에서 발췌)

그는 서울대학교 수학과를 중퇴하고 중앙대학교 사진학과를 들어갔다. (들려오는 소문에는 중앙대학교 역사상 의대가 아닌 다른 학과에서 수석이 나온 유일한 사례였다고 하던데……) 본질에 대한 관심이 많았던 작가는 수학에서 그것을 규명하지 못하자 예술에서 그 길을 찾은 것 같다. 그래서일까. 그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생각.

사유에 들게 하는 것.

물론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 것도 예술을 좋아하는 이유이지만 생각의 폭을 넓히고 일상에서 빠져나와 다른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도 예술의 중요한 순화 작용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결국 예술의 두 축은 미와 사유, 이렇게 나뉘지 않을까.

그의 작품을 구매하고 나서 일본 쪽 판화에도 관심이 있었으나 판화 장인의 일손이 달려서 구매까지 연결되지는 않았다. 광클 후에도 품절 나는 사태를 만나게 된 사례와 비슷하지는 않지만, 아무리 노력을 해도 나와 그 작품은 인연이 없었던지 결국은 구매할 수 없었다. 그리고 지금은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유니세프인가 어떤 NGO 단체에서 피카소의 그림을 10유로에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했다. 물론 이렇게 모금된 기금은 좋은 일에 쓰이고 기부자 중에 한 명만 추첨하는 방식으로 피카소 그림의 주인공이 되는 것이다. 기분 좋게, 부푼 기대를 가지고 10유로를 쾌척했으나 나는 그 그림의 주인공은 아닌 걸로. 그 이후로 유사한 그림 경매를 전면에 내세운 기부 방식이 좀 반복되었던 것으로 안다. 나는 일단 엄청난 행운의 주인공이 아니므로 기부 한 번 하고 허황된 꿈은 꾸지 않게 되었다.

[from 테사]

요즘 화제가 된 작품이 있다. 이우환의 ‘선으로부터’ 화제의 이유는 테사라는 미술투자 플랫폼에서 이 작품을 공모한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조각 투자. 참 말도 잘 짓는다. 고가의 미국 우량 주식도 조각 투자를 하듯이 이 그림도 ‘조각 투자’를 한다는 소식이었다. 이우환 작가의 이름 앞에는 국내 생존 작가 중 가장 높은 몸값을 자랑하는 화가라는 투자자들의 마음을 자극할만한 수식어가 붙었다. 그런 경제적인 가치 외에도 그는 점과 선의 작가라고도 불린다. 점으로부터, 선으로부터 판화 시리즈를 보고 있으면 저절로 ‘사유’에 든다. 단순하다. 하지만 그 단순한 리듬감을 마주하는 순간, 호흡을 고르고 깊은 사유의 세계로 빠져든다. 단순한 그 농담에서, 그 절제된 표현에는 이루 말할 수 없는 담백함이 묻어난다. 화려하게 치장하지 않아도 마음을 빼앗기고 만다. 그것은 수묵화가 나를 끌어당기는 것과 같은 느낌이다. 좀처럼 시선을 거둘 수 없다. 마음은 고요해지고 참선을 하는 것 같은 평화로움도 찾아온다. 위작 논란이 일었을 때에도 그다지 큰 관심은 가지지 않았는데 이번에 ‘조각 투자’라는 재밌는 말에 이끌려 다시 그의 그림을 보게 되었다. 투자 대상이 된 그림은 만약 우리 집 거실에 둔다면 상당히 어울릴 것 같은 작품이다. 아니 우리 집이 아니어도 어느 집의 거실이든 이 작품은 상당히 잘 어울릴 것 같다. 클래식한 매력이 돋보인다. 쉬이 질리지 않을 깊이감을 지니고 있어 어느 때, 어느 장소에도 잘 어울리는 작품이다. 

이우환 작가는 1936년 함안에서 출생했고 서울대를 다니다가 일본에 있는 삼촌댁에 놀러 가, 그대로 일본에 정착한다. 처음에 그는 작가가 되고자 니혼 대학교에서 철학을 공부했다고 한다. 그림은 돈을 벌기 위해 그렸다는데 그렇다면 그는 소기의 목적은 넘치게 달성한 셈이다. 철학을 공부한 것이 그의 그림의 뒷배를 단단히 받쳐주고 있는 느낌이다. 그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그림만큼이나 묵직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한 길을 묵묵히 걸어가고 있는 사람의 자부심과 날카로움이 공존한다. 부디 건강하셔서 계속 사유에 들 수 있는 좋은 작품을  만들어주신다면 좋겠다.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조각 투자에 투자자로 참여했을까? 궁금하다. 테사가 후속 보도를 내면 알 수 있을 테지. 조각 투자가 아닌, whole 투자자로 나서게 되는 그날을 위해서! 다른 투자를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번 해봤다.(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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