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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시 Jan 08. 2022

정리 도우미

아를의 침실 - 우르주스 베얼리

소싯적에는 꽤나 정리를 잘하는 축에 속했다. 어쩌면 소유의 규모 자체가 지금과 달랐기 때문에 그랬을 수도 있다. 아니, 이건 핑계일 것이다. 성향이 변했다는 것이 진정한 이유일 것이다.

정리정돈을 하는 것은 상당히 기분 전환이 되는 일이기는 하다. 특히 이렇게 해가 바뀌는 시기가 되면 그런 생각이 더 절실해진다.

책상 정리를 한번 해볼까?

라고 생각하고 책상을 보면, 벌써 몇 년째 손을 대지 않고 있는 물건들이 눈에 들어온다. 나라고 왜 치우지 않았겠는가? 근데 한번 정리를 하다가 깨달았다. 결국 정리를 시작하기 전과 큰 틀에서 별반 나아지지 않았음을. 그런 큰! 깨달음을 얻고 난 뒤에는 더욱 정리에 소극적이 되었다.

이건 언젠가 쓸모가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버리는 것을 주저하게 만든다. 특히 각종 박물관에서 받아온 리플릿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 어쩐지 언젠가는 꼭 나에게 상당히 큰 도움을 줄 것 같은 생각에 쉬이 버리지를 못하겠다. 사실 따지고 보면 아직까지는 나에게 상당히 큰 도움을 준 적은 없다. 앞으로, 미래에 일어날지도 모를 ‘도움’을 위해서 나는 정리정돈을 못하고 있는 셈이다.

아, 이렇게 쓰고 보니 상당히 비효율적인 것 같다. 바보스럽기도 한데, 이게 또 막상 그런 것들을 들춰보고 있으면 버려야 할 것으로 가는 비율은 상당히 낮고 대부분은 keep으로 기운다. 

상대적으로 옷장 정리는 쉽다고 느끼는 게 결국은 몸매의 변화에 따라서 입을 수 있는 옷과 입을 수 없는 옷이 비교적 객관적으로 갈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난 3년간 입지 않은 옷은 과감히 버린다거나 나름의 수치 기준을 세울 수도 있다. 하지만 ‘언젠가는 쓸지도 몰라’라는 생각으로 쌓여가는 각종 안내 책자는 오늘도 내 방 책상과 책장의 상당 부분을 점령하고 있는 골칫거리다.

또 한 가지, 전자기기. 노트북과 휴대폰도 처리하지 못하고 쌓여가고 있다. 기계치이기 때문에 이쪽 방면의 정리는 특히 더 쥐약이다. 결국 시간이 흘러서 켜지지도 않으니 이게 정확히 내가 초기화를 했는지도 불투명해서 더더욱 버리기가 망설여진다. 언제 하루 날을 잡아서 서비스 센터에 가서 이게 지금 초기화가 되어 있는 것이 맞는지 만이라도 확인하고 버리던가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지는 몇 년이 되었으나 실행은 못하고 있다.

왜?

귀찮거든요. 어마무지하게.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지? 책상 앞에 앉으면 바로 왼쪽으로 보이지만 난 애써 무시한다. 언젠가는 꼭 서비스센터에 들르자. 저 일의 처리를 위해서 꼭 하루 정식으로 휴가를 내자. 다들 중고폰이나 중고 노트북을 팔기도 한다는데 나에게는 상당히 먼 나라 얘기다. 개인정보유출이나 되지 않을까 벌벌 떨고 있는 주제니 돈을 번다는 건 안드로메다로 날아가 버린다.

최근에 백수가 된 친구가 시간이 많이 남으니 당근마켓에 물건들을 올리면서 정리하고 있다는데 진짜 할 일이 없다고 느끼면 서서히 그런 것들을 정리할 수 있을까 싶기도 하다. 아 네, 물론 이 모든 것이 저의 게으름에 기인하고 있다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책상 위와 책장 등 눈에 보이는 것만 대충 나열해도 나는 수납 초과의 상태다. 근데 서랍으로 들어가면 진짜 들춰보지 않을 것들, 진짜 버려야 할 것들이 쏟아질 것이다. 그게 두려워서 서랍은 잘 열지도 않는다. 아마 여는 순간, 판도라의 상자처럼 갖은 몹쓸 것들, 쓸모없는 것들이 나올 것이다. 이제는 읽을 수 조차 없는 플로피 디스크부터 인화를 하지도 않을 필름 원본 등등. 

가끔 주변에서 누군가가 돌아가셨는데 유품 정리에 애를 먹었다는 말을 들으면 나는 괜히 마음이 쓰인다. 도둑이 제 발 저린 것처럼 ‘나도 정리 좀 해야 하는데.’라는 생각에 움츠러든다. 그런데, 그런데 참으로 희한하게 집에 가면 침대, 누울 자리만 보인단 말이지. 집에 얌전히 있을 때에도 정리할 생각은 하지 않고 난 가만히 침대에 누워있는 편이니 그저 게으르다고 밖에는 말을 못 하겠다. 한 때는 정리정돈의 끝판왕이었는데. 오늘 할 일을 내일로 잘 미루지 않는 성격이었는데! 지금은 내일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알 수는 없지만 할 수 만 있다면 할 일은 우주 저편으로 미루고 싶다! 무조건! 이렇게 생각하는 게으름뱅이가 되었다. 흐흐흑.

[from : 홍익대학교 웹페이지]

그런 내게 우르주스 베얼리의 깔끔하게 정리된 고흐의 ‘아를의 침실’은 어찌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반가움 이전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런 센스 하고는!

그가 정리한 것은 고흐의 침실 만이 아니었다. 피터 브뤼겔, 칸딘스키, 조르주 쇠라,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 등. 그가 세상에 정리하지 못할 것은 없어 보인다. 위트 있게 온갖 것들을 정리해버리는 그의 스킬에 나는 심쿵이다.

그가 스위스의 코미디언 출신 작가라는 것을 깨닫고는 더더욱 고개가 주억거려졌다. ‘정리’라는 뚜렷한 컨셉, 위트있게 해치우는 솜씨, 본질을 꿰뚫는 정리의 기술에 그에게 내 책상의 정리도 맡길 수 있다면 맡기고 싶어 진다. 

후대의 작가에게 ‘정리당한’ 미술 대가들의 기분은 어떨까?

“누구야?”(성질내며 고흐)

“다음번엔 더 어려운 과제를 내주마.”(더 어지러운 구상을 하는 브뤼겔)

“아무리 내 작품이 점묘법이라지만 이렇게 비닐봉지에 쓸어 담아버리다니.”(점묘법이 무시당했다고 기분 상한 쇠라)

“내 추상은 아무것도 아니었군.”(감탄하는 칸딘스키)

뭐 이렇게 내 멋대로 생각해본다. 현대로 올수록 화가들도 이런 발상의 전환에 더 후한 점수를 주지 않았을까? 르네 마그리트도 그렇고 말이죠.

일주일에 그래도 한 번은 책상에 앉는데 올해는 진짜 하나씩 정리를 해나갈 참이다.(진짜지?) 처음부터 다 하겠다는 무모한 계획은 세우지 않는다. 말하자면 이번 주는 책장 한 칸, (한 줄이 아니다. 절대) 서랍 한 칸, 이런 식으로 잘게 쪼개서 하겠다. 그래야 실천할 확률이 높아지니까. 

철이 바뀌고 해가 바뀌면 그래도 이렇게 ‘정리’할 생각을 하니 스스로 기특하게 여기며 이제 남은 것은 ‘실천’이라고, 우르주스 베얼리와 같이 나도 정리의 마법을 부려보자고 새해 다짐을 곱씹어본다. 연말까지 해보는 거야. 아직 1년이나 남았잖아? 그렇다고 게으름 피우면 안 돼. 날이 따뜻해지면 한다거나 이런 핑계도 되면 안 된다……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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