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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시 Jan 23. 2022

능력의 한계치

크몽

멍하니 버스를 타고 있는 내 눈에 그야말로 개안할 만한 버스 광고가 들어왔다.

[쉘터 광고는 아니고 버스 옆면 광고]

"카페인까지 내 체력, 크몽까지 내 능력"

세상에, 맞지 맞지. 커피까지 내 체력이니까.(카페인이 받는 몸, 그 몸 쉬운 몸이 아니다.)

집 근처에 쉘터에 있는 건 그 광고판 하나였다. 덕분에 아침에 출근하는 길에 그 광고를 보면서 혼자 씩 웃음을 지을 수 있었다.

그런데 그거 말고도 다른 버전이 있었다. 버스 옆면 광고에서 본 내용은 이거였다.

[버스 옆면 광고는 아니고 쉘터 광고]

"깔창까지 내 키, 크몽까지 내 능력"

아, 갑자기 가슴 끝이 저려오면서 나와 키가 같던 전 남친이 생각났다. 사실, 키는 중요한 것이 아닌데도 그 친구는 항상 깔창을 깔고 다녔다. 항상 키가 컸던 나는 깔창의 존재 자체를 전혀 모르고 있다가 그를 통해서 알게 되었다. (그렇게 나의 인식 속에 들어오고 나니, 신문에도 깔창 광고가 많더군요…) 그리고 알았다. 이게 그의 아킬레스 건임을. 10cm는 되어 보이던 그 깔창을 신고 그래도 그는 꿋꿋하게 잘 걸었던 것 같다. 건강을 생각해서 그 깔창을 벗어버렸더라면 더 좋았을 것을. 나는 그의 자존심이 상할까 봐 그만 깔창에서 내려오라는 말은 끝내 하지 못했다. 그래서 이 광고를 보면서 그의 깔창이 떠올랐다. 그 높다랗던 깔창. 그래, 너도 깔창까지 너의 키라고 생각했던 거로구나. 그러니 내려올 수 없었던 거지. 

그 외에도 '화장까지 내 얼굴, 크몽까지 내 능력'이라는 광고도 달리는 버스의 옆면에서 본 것 같은데 정확한 카피는 아닐 수도 있다. 

대단하다. 이런 인사이트를 가지고 있다니! 한번 본 카피는 촌철살인이어서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사람의 마음을 후벼 파는 저런 카피를 누가 낸단 말인가.

화장도 능력이고 깔창도 능력이다. 카페인을 받는 몸을 만드는 것도 내 능력이다. 내 능력을 배가시키는 것들을 이리도 잘 알고 있는 회사, 그 비밀병기와 같이 스스로를 '내 능력'의 범주로 넣다니, 이쯤 되면 ‘크몽’이라는 회사에 대해서 호감이 생기고 알고 싶어 진다. 

사실 나는 알고 있었다. 노랗고 조그만 원숭이 로고가 보일 때부터 알고는 있었다. 프리랜서 마켓이라는 것, 하지만 나는 철저한 직장인 모드로 나와는 관계가 없는 곳으로 치부하고 있었다. 가끔씩 들어가 보면 디자인, 마케팅, 사이트 개발 등 다양한 분야에서 놀랄만한 가격의 프리랜서들이 득시글 거리는 것을 보면서 여기가 바로 ‘활황’ 임을 알 수 있었다.

자영업자가 많아지고, 특히 온라인 자영업자가 많아지면서 다양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한 수요도 증가할 수밖에 없다. 누구는 그럴듯한 브랜드 네임을 가지고 싶을 것이고 로고를 디자인하고 싶을 것이다. 나만의 것을 이 치열한 경쟁의 장에서 각인시키기 위해서 필요한 필수 작업이기도 하다. 


“네이밍이나 디자인 잘하는 사람 소개해 줄 수 있어?”

“음. 어떤 걸 할 건데?”

지인이 온라인 의류 사업을 한다면서 문의를 해 왔지만, 내가 몸담고 있는 제도권에 있는 사람들은(회사들은) 모두 천만 원 단위 이상부터 시작한다. 하지만 1인 기업에서 시작부터 그런 돈을 투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나는 소개를 시켜주지 못했다. 

시간이 지난 후에 얘기를 들어보니 결국 지인은 크몽에서 네이밍과 브랜딩을 했다. 그것도 10만 원인가 하는 저렴한 가격에 했고 게다가 마음에 들기까지 했다고!


오, 그런 건가. 

가격이 낮으니 어쩌면 기대 수준이 낮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뭐 내가 봐도 나쁘지 않았다. 브랜드는 키워가는 거잖아. 결국은 어떻게 노력을 해서 아이덴티티를 지키면서 만들어 가느냐가 더 중요한 거지.

만약 회사에서도 크몽을 자유롭게 쓸 날이 있을까? 누군가는 벌써 이런 말을 할 것이다.

“퀄리티를 어떻게 보장하려고.”

하지만 급진적으로 해볼 필요도 있다고 생각한다. 항상 같은 방식을 고수하다가는 어떤 변화도 이뤄내지 못한다. 의외의 숨은 고수들이 크몽에 포진해 있을 수도 있다. 제도권 회사에 들어가지 못한 재야의 고수들이 우글거리는 곳이 크몽일 수 있는 것이다. 

바야흐로 앱 비즈니스는 기득권을 뒤흔들고 있다. 강남언니도 그랬고 로톡이 그랬으며 앞으로 이런 흐름은 걷잡을 수 없을 것이다. 특히 전문직 플랫폼일수록 그 갈등은 더 크다. 하지만 갈등이 있다고 해서 앱 비즈니스 성장이라는 큰 흐름을 막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크몽만 봐도 기득권 전문 회사들이 더 텐션을 가지고 일할 수 있는 좋은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결국 우리 모두 너나 할 것 없이 무한 경쟁의 시대로 접어드는가 싶기도 하고, 그런 경쟁의 시대에서 개인의 무기는 뭐가 될지가 궁금하기도 하다. 전문성과 믿음, 이것이 ‘같이 일하고 싶게’ 만드는 기본 동인으로 작용하지 않을까.

크몽은 일찌감치 프리랜서의 시대를 직감하고 비즈니스를 시작한 눈 밝은 스타트업이다. 취미가 직업이 되는 시대, 국민 N 잡러의 탄생을 직감함과 동시에 크몽이라는 플랫폼을 통해서 이런 세태의 변화에 불을 붙이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좋은 광고안을 집행하는 혜안도 가지고 있는 훌륭한 기업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시리즈가 더 많았다면 더 좋았을 텐데, 3개의 시리즈로 끝나서 그저 아쉬울 따름이다. 요즘은 명수옹이 스티브 잡스의 오마주로 나오던데 개인적으로는 이전 시리즈가 더 마음을 흔들었다.

여담으로 크몽 박현호 대표님이 지리산 어머님 댁에 내려가서 숙고한 후에 크몽을 창업했다고 하는데...... 내가 드는 생각은 2가지. 지리산은 역시 품어주는 산이라는 것과 뭔가 큰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숙고하고 헤매고 갈팡질팡 하는 일정기간 이상의 고난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크몽, 다시 어디까지가 능력인지 알려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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