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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시 Mar 12. 2022

큰일났다!

수태고지-프라 안젤리코, 1433-1434년

예수님만큼 극적인 생애를 살았던 사람도 없을 것이다. 일단 탄생 자체가 드라마틱하다. ‘말씀으로 잉태되다’라니. 예수님의 탄생에 얽힌 것을 생각하고 있노라면 예전 한 신부님의 강론 말씀이 떠오른다.

“생각해보세요. 지금으로부터 2천년도 더 전의 일입니다. 만약에 며느리 될 사람이 식을 올리기도 전에 임신을 했다고 하면 시댁에서 ‘아가, 혼수를 참 잘 준비했구나.’ 이렇게 요즘처럼 너그럽게 받아들였을까요?”

사실 깊게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그렇게 ‘부드럽게’ 넘어갔을리 만무하다. 아니 시부모님들의 입장까지 갈 것도 없다. 마리아의 남편인 요셉의 입장에서는 어땠을까?

성서에 따르면 마리아와 요셉은 약혼을 한 상태였다. 그런데 둘이 결혼을 하기도 전에, 합방을 하기도 전에 마리아가 놀랄만한 일을 고백한다.

“저, 임신을 했어요.”

내 신부가 될 사람이 임신을 했다는데 나는 아는 바가 없다. 분명히 나는 애 아버지가 아니다. 그럼 누가 애 아빠라는 말인가? 

하지만 따지고 보면 '임신되어진' 당사자 마리아가 가장 황당하지 않았을까? 약혼을 하고 결혼을 준비하기 위해서 이런 저런 준비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던 어느 날, 갑자기 천사가 마리아 앞에 나타난다. 마리아는 이 날도 느긋하게 정원이 보이는 의자에 앉아서 성서를 읽고 있었다.(음, 성서라고 생각해야겠지요? 심신이 깊은 사람이었으니까.) 날은 이미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풀밭에는 이름 모를 작은 꽃이 흐드러졌고 저 멀리 야자수며 시트러스 계열의 열매도 보인다. 붉은 치마에(우리 나라의 다홍치마처럼 이스라엘도 젊은 처자는 붉은 치마를 입었나 보군요.) 성스러운 하늘빛의 망토를 두른채 책에서 잠시 시선을 들어 멀리 정원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을 것이다.(지혜로운 마리아는 원경과 근경을 번갈아 바라보는 시신경 근육 운동을 하고 있었을 수도.)

그때 갑자기 바람이 일더니 뭔가 펄럭이는 소리와 함께 날개 달린 천사가 마리아 앞으로 착륙, “에그머니나” 놀라 소리를 지르는 마리아를 향해서 천사는 조용히 하라는 쉿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 마리아, 사실 얼굴만 보자면 아무리 잘 쳐줘도 십대 후반으로 보인다. 얼굴에 그냥 ‘아기아기’라고 써 있는 것만 같다. 솜털이 분명 보송보송할 것이다. ‘천사’는 성서에서나 읽었지 이렇게 ‘레알’로 보기는 처음이었을 것이다. 무릎 위의 책이 안 떨어진 게 다행이다. 

© Zenodot Verlagsgesellschaft mbH

하지만 가브리엘 천사가 내뱉은 말은 단순히 ‘에그머니나’에서 그치질 않는다. 인류의 역사를 바꿔놓을 위대한 분의 탄생을 예고한 것이다. 일단 가브리엘 천사는 장엄한 인사를 건넸다고 한다.

“은총을 가득히 받은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딱딱하게 인사를 건넸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가브리엘 천사의 옷을 봐도 그렇게 차가운 천사는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상대는 십대 청소년이다. 겁 많고 인생 경험도 적은 아가씨다. 천사의 출현만으로도 기함을 토할 일인데 보다 부드럽게 인사를 건네지 않았을까?

“마리아님, 안녕하세요. 제가 너무 느닷없이 나타나서 많이 놀랐죠? 천사가 아무래도 어떤 맥락을 가지고 나타나기에는 좀 애매한 부분이 있어요. 마리아님이 이해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아, 그리고 절대 당신을 해치지 않을 테니 무서워할 필요 없어요.”

일단 마리아, 이런 가브리엘 천사의 말을 듣고 나대는 심장을 조금은 진정 시킬 수 있지 않았을까? 지금 그림에 보이는 것처럼 순응하겠다는 뜻처럼 보이는 손모양 제스처를 하기 전에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기 위해서 오른손을 심장에 가지고 갔을 수도 있다. 그 때쯤이면 놀란 입도 반 정도는 닫혔을 것이고. 

“당신은 하느님의 은총을 가득히 받았으니 기뻐하세요. 주님께서 당신과 함께 계십니다.”

응? 뭐라고? 내가 왜 하느님의 은총을 ‘가득히’ 받았다는 거지? 왕족도 아니고 집안이 부유한 것도 아닌데? 그냥 주변의 친구들과 같이 특별할 것도 없는 삶을 살고 있는데? 마리아의 눈초리가 의혹의 눈초리로 바뀌지 않았을까?

“성령께서 당신에게 내려와 당신에게 하느님의 아들이 태어날 것입니다.”

“아니, 잠깐요. 저는 요셉과 약혼은 했지만 동정인데 어떻게 제가 아이를 임신한다는 겁니까?”

지금 가브리엘 천사의 입에서는 여러가지 말들이 나오고 있다. 마리아를 놀라지 않게 안심시키고 앞으로 일어날 일이 얼마나 복된 일인지를 얘기하고 걱정하지 말고 예수를 잉태하고 잘 보살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가브리엘 천사에게 부여된 일인 것이다. 너무 막중한 책임이다. 그래서 지금 그 천사의 입에서는 말이, 쉴새없이 흘러나오고 있다. 탑 시크릿이라는 듯이 왼손은 입으로 가지고 가고 이 막중한 비밀을 걸머지고 가야할 사람은 바로 당신이라는 뜻으로 오른손은 마리아를 겨냥하고 있다. 이 막중한 임무로부터 벗어날 길은 없다는 듯이. 가브리엘 천사도 이 일의 어려움을 알고 있었기에 특별히 분위기를 부드럽게 리드할 수 있도록 핑크빛 옷에 날개 역시 밝은 빛의 날개를 골랐겠지. 사실 천사와 마리아의 얼굴 표정만 빼고는 분위기는 그다지 심각해 보이지 않는다. 온화한 봄날의 평화로운 한 때다. 하지만 그 안온한 분위기를 깬 것이 바로 천사가 전하는 수태고지이다.

이제 마리아의 답변만이 남았다. 가브리엘 천사, 목이 탔을 것이다. 놀란 노루마냥 눈을 동그랗게 뜨고 천사를 주시하고 있던 마리아에게는 예언서의 글귀가 떠올랐을 것이다. 메시아에 대한 예언, 그리고 그분이 받게 될 고통까지도. 나에게 선택권이 있을까? 마리아라면 이런 인간적인 고뇌를 하지 않았을까? 분명히 선택할 수 있다면 안 한다고 말하고 싶지 않았을까? 저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하면 또 신의 미움을 받게 되려나? 마치 그런 마리아의 마음을 대변하듯이 그림의 좌상단에는 낙원에서 쫓겨나는 아담과 이브의 모습과 흡사한 스토리가 그려져 있다. 태초의 모습이 아닌 중세의 모습으로 각색되어 있는 것 같다.

결혼 후에 천사가 왔으면 훨씬 더 수월했을 텐데 하필이면 시기도 애매한 시기이다. 약혼자인 요셉한테 말하면 믿어줄까? 마리아는 깊은 고민에 빠졌을 것이다. 그런 마리아의 머리 위로는 벌써 ‘성령’이 도착해 있다. 마리아가 ‘네’라고 대답하면 바로 성령의 힘으로 뭔가가 일어날 참이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마리아는 순응의 뜻으로 가슴 앞에 손을 교차하고 천사에게 고개를 숙이려고 한다. 그런 그녀의 얼굴을 보자. 멍한 것처럼, 어쩌면 살짝 원망을 하는 것처럼도 보이고 포기를 한 것처럼도 보이는 절묘한 표정이다. 반항은 아니지만 아직은 뭐랄까, 백퍼센트 예수님의 어머니가 되려는 것을 수긍한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마치 꿈속을 헤매는 것 같은 표정이다. 수도자였던 프라 안젤리코의 뛰어난 점이 여기에 있지 않을까. 우리가 존경하고 인간을 뛰어넘은 인물로 추앙하는 사람도 결국에는 사람이었음을, 수태고지와 같이 어마어마한 소식을 듣고는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서 좋아하지 않았음을, 엄청난 일 앞에서는 모두 얼떨떨하고 엉겁결에 상황에 휩쓸리고 마는 존재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 같다. 마치 동화책을 보는 것처럼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에서 프라 안젤리코가 나에게 말해주고 있는 것은, 그러니 이 풍진 세상살이에서 ‘수태고지’급의 청천벽력과 같은 일이 벌어지더라도 너무 놀라지 말라는 것이다. 큰일은, 기원전부터 그 역사도 유구하게 인간사를 관통하는 한 가지 이벤트니 놀랄 일을 당했을 때 나(프라 안젤리코)의 수태고지 그림 속 마리아를 보면서 위로 받기를. 그래도 나에게 일어난 일이 인류사를 뒤흔들, 십자가를 지고 갈만한 일은 아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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