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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시 Apr 10. 2022

배 부르고 등 따시고

농부의 결혼식-피테르 브뢰헬, 1568년

백종원 대표의 음식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새마을 식당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을 때에도 나는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음 어떤 점에서 사람들이 열광하는 것인가. 나는 끓어오르는 김치찌개를 보면서 또 깊은 생각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나는 역시 소수 의견일 뿐, 사람들은 김가루를 뿌리면서 김치찌개를 밥에 수북이 떠서 맛있게 먹었다. 

하지만 백대표가 골목식당이나 맛남의 광장에 나와서 하는 얘기를 듣고 있노라면 상당히 수긍이 가고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며 그가 하는 일에 응원을 보태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생긴다. 개인 사업자를 도우려는 마음이나 어려움에 처한 전국의 생산자를 도우려는 취지도 훌륭하다. 하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프로그램은 그가 나오는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이다. 

푸드 포르노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지 모르겠다. 이제 우리는 음식을 그냥 먹지 않는다. 포스팅의 대상으로서의 음식도 있겠으나 이제 단순히 배를 채우기 위해 음식을 먹지 않는다. 맛을 음미하고 분위기를 즐기며 행복한 시간을 갖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먹을 것’에 심혈을 기울인다. 내가 못 먹는 다면 다른 사람이 먹는 것을 통해서 대리만족을 느끼기도 한다. 수많은 먹방 유튜버들이 인기를 누리는 것을 봐도 우리가 얼마나 먹을 것에 관심을 두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음식이나 음식을 먹는 모습이 노골적으로 담긴 사진 또는 영상, 푸드 포르노는 내가 미술만큼이나 좋아하는 장르이기도 하다. (솔직히 미술보다 더!) 식자재가 가진 본연의 색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가. 자연의 색만큼 아름다운 것은 떠올리기 어렵다. 거기에 셰프의 노력과 시간이 더해져 한 접시의 음식이 탄생하면 보는 것만으로도 탄성이 터져 나올 만큼 감동적이다. 

유튜브에서 먹방이 만개하기 전에 ‘맛있는 녀석들’을 보면서 나는 감탄에 감탄을 거듭했다. 와, 저렇게 먹을 수도 있구나. 맛있는 음식에 또 맛있는 뭔가를 더 한다. 그러니 이건 뭐 많이 안 먹을 수가 없다. 가히 천재적이다. 먹을 것에 있어서는 진정 진심인 녀석들이다. 재방송 채널이 넘쳐나는 만큼 요즘도 채널을 돌리다 보면 그 녀석들은 어딘가에서는 또 무엇인가를 먹고 있다. 입이 떡 벌어지는 먹방, 4명의 몸무게 합이 당연히 400kg은 넘겠지? 묵직한 중량감에서 나오는 먹부림, 물이 아닌 흰쌀밥으로 입안을 헹구는 신기함, 줄어들지 않는 그들의 식욕을 보면서 나는 다음 날 점심 메뉴를 고민하는 일이 없어졌다. 직장인의 가장 큰 고민이라는 ‘오늘 뭐 먹지?’를 나는 맛있는 녀석들을 보면서 해결한다. 좀 이상한 말이지만 종목만 정하면 후회하지 않을 식당은 널려 있는 게 또 우리나라의 환상적인 외식 환경이기도 하다. 항상 종목 정하기에 어려움을 겪었던 나는 이 ‘맛있는 녀석들’을 통해서 가뿐히 매일 점심 메뉴를 정하는 고민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아 얘기가 많이 샜다. 다시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로 얘기를 돌리면 그야말로 푸드 포르노의 끝판왕이라는 생각이 드는 방송이다. 카메라 워크도 그렇고 음악의 선정도 상당히 심오하다. 거기에 음식 전문가로서의 백대표의 해설이 곁들여지면 그야말로 비행기 안 타고 미식 여행하는 완벽함이 구현된다. 그의 외식업은 사랑하지 않지만 그의 음식에 대한 폭넓은 지식은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그의 입맛과 나의 입맛은 다르지만 이국적인 음식에 곁들여지는 그의 음식 해설은 나의 입맛을 다시게 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프로그램에서 음식 한 그릇을 역으로 돌려서 재료를 수급하는 과정부터 거슬로 올라가는 것을 보고 있으면 보는 재미도 쏠쏠하고 조리하는 모습을 극도로 클로즈업한 앵글을 보고 있노라면 푸드 포르노의 끝판왕을 보고 있는 느낌이다. 주문한 음식이 나왔을 때 음식명을 프리젠트하는 형식도 남다르며 음악 선택도 좋아 누가 만든 프로그램인지 궁금해진다. 그리고 이 좋은 고퀄의 음식 콘텐츠를 왜 책으로 낼 생각을 하지 않는지 아쉬운 생각을 하게 된다.

사실 먹는다는 것을 20대 때에는 중요치 않게 생각했다. 쓰러지지 않을 정도로 때운다는 생각 정도? 그다지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관심도 없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 들수록 인생은 먹는 것이라는 생각이 강해진다. 한 끼를 먹어도 맛있는 것을 먹고 싶고 길지 않은 인생, 맛있는 것만 골라서 먹고 싶은 생각을 하게 된다. 당연히 맛집에 대한 정보에 예민해지고 먹는 것에 까다로움을 부리게 된다. (가지가지하는군요.)

이 그림을 처음 봤을 때, 모든 것이 한없이 동굴 동글해서 마음이 무장 해제되는 것을 느꼈다. 농부의 결혼식? 나는 사실 번잡스러운 분위기와 사람들이 나르는 음식과 앞쪽의 술 주머니에 마음이 빼앗겨 신랑, 신부는 한참을 찾아서 발견했다. 그만큼 결혼식은 당사자가 아니면 분위기에 더 관심이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제사보다는 잿밥에 관심이 있는 것처럼. 화려한 데코레이션 케이크가 있는 것도 아니고 와인잔으로 피라미드를 쌓아 올린 것도 없다. 수프와 같은 한 접시 음식을 사람들은 먹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그 모습이 한없이 행복해 보인다. 그림 왼쪽 아래 접시를 들고 손가락을 빨고 있는 아이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16세기라면 농부의 삶이, 농촌의 삶이 풍족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결혼이라는 잔칫날, 이웃과 가족이 모두 함께 모여 소박하지만 모자라지 않는 음식을 양껏 나누는 것은 3단 케이크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피테르 브뢰헬은 이 외에도 다양한 농촌의 모습을 정겹게 묘사한 작품을 많이 남겼다. 농민 브뢰헬이라는 애칭도 얻었다. 그의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따듯해진다. 꾸미지 않은 풋풋함이 그대로 드러난다. 감추지 않고 ‘척’ 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그의 그림을 보면 ‘둥근’ 느낌을 받는지도 모르겠다.

오늘, 이 마을은 배 부르고 등 따실 것이다. 결혼식에 참석한 사람들은 오래간만에 포식하고 늘어지게 여유를 맛볼 것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인생은 먹는 것으로 점철되어 있다. 우리는 축하할 일이 있을 때 만나서 축배를 들고 위로할 일이 생기면 따듯한 밥 한 끼로 서로의 마음을 나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밥’을 함께 한다는 의미는 대단한 진일보를 의미한다. 차 한잔 마시는 사이와 밥 한 끼 먹은 사이는 관계의 '레베루'가 달라진다.

서인국 교수의 말마따나 행복은 사랑하는 사람들과 식탁에 둘러앉아 맛있는 음식을 나누는 것이라는 것에 격하게 공감한다. 오늘 사랑하는 사람들과 을지로 조선옥에서 한 끼를 먹은 것은 그런 의미에서 상당히 잘 한 선택이었다. 그저 내 주변의 모든 이들이 배 부르고 등 따신 인생을 살기를 바랄 뿐이다. 농부의 결혼식처럼 단 하루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 풍경이 인생 내내 지속 반복되기를, 사람이 있고 먹을 것이 있는, 의지할 것이 있는 멋진 인생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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