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을 지새우는 사람들-에드워드 호퍼, 1942년
나는 도시에서 나고 자랐다. 서울 토박이인데 삶의 근거지를 서울 외로 옮겨본 적이 없다.
초등학교 시절, 여름 방학이 되면 외가가 있는 전라남도 순천으로 2~3주 정도 내려가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육아에 지친 어머니의 꿀맛 같은 방학이었을 것이다.
고속열차도 없던 때라 기차는 더디 갔다. 역에 설 때마다 사람들이 내리고 탔다. 기차는 서울을 빠져나가자마자 초록빛 일색이었다. 논과 밭, 산이 모두 싱그러운 녹색을 내뿜었고 복붙을 해 놓은 것 같은 풍경은 지루하리만치 이어졌다. 마치 끝이 나지 않을 두꺼운 책을 읽는 것 같은 곤혹스러움을 느꼈다.
바뀌는 것이 있었다면 사람들의 사투리였다.
그랬슈?
그랬당께라~
표준어가 아닌 말을 쓰는 아낙네들이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저희들끼리 자리를 잡고 앉아 신나게 수다를 떨었다.
그렇게 온몸이 답답함을 호소할 즈음에 순천에 도착해서 외가로 갔다. 외갓집도 당연히 근처에 뒷산이 있고 조금만 걸어가면 논과 밭이 펼쳐지는 시골에 있었다. 너른 마당에는 평상이 있고 저녁이 되면 잘려나간 드럼통에 모깃불을 크게 피우는, 서울에서는 보지도 못한 광경들이 이어지는 신기한 곳이었다. 삼촌이 뒤뜰 대나무를 베어다가 배를 만들어주는 것도 재미있었고 외할아버지가 모는 자전거 뒤에 앉아 장날을 구경 가는 것도 색다른 경험이었다. 외갓집에는 뜰이 넓어 봉숭아, 호박 등 다양한 식물을 키우고 있었는데 봉숭아 물도 항상 외갓집에서 들이는 것이 관례였다. TV를 보기보다는 언니 동생과 놀고 그러다가도 잊었다는 듯이 방학숙제를 하곤 했다. 외갓집에 있을 동안 방학숙제를 해야 한다는 약간의 압박감을 느끼면서.
그렇게 한참을 놀고 있으면 외할아버지 생신에 맞춰 부모님이 내려오셨다. 그리고 귀경길은 아버지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이동했다. 창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풍경은 기찻길의 풍경과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초록초록초록. 카세트테이프를 듣고 노래를 부르다가 밤이 이슥해서야 서울에 입성했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내가 도시를 많이 그리워하고 있었구나.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올 때에는 그런 느낌이 덜한데 중부고속도로를 타고 올 때에는 서울에 입성하자마자 한강변을 쫙 둘러싸고 있는 아파트며 빌딩의 불빛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그 반짝임에 호응하듯이 나의 가슴도 콩닥콩닥 뛰었다. 그리고 포근함을 느꼈다. 드디어 고향에 돌아왔다는 안도감, 편안함이 내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서울의 야경은 얼마나 아름답던지. 시골 모깃불과는 너무도 다른 불빛에 넋을 잃고 나는 이 도시를 사랑하고 있음을, 내가 태어난 고향에 끌리고 있음을 뼈에 사무치게 깨닫고는 했다.
여행을 다니면서도 도시 사랑은 이어졌다. 너무 높은 마천루로 볕이 잘 들지 않는 뉴욕의 빌딩 사이를 걸을 때도 좋았고 하늘은 찌푸렸지 길은 좁은 런던도 낭만적으로 느껴졌다. 서울처럼 천만 인구를 육박하는 도쿄도 서울과 비슷한 듯 다른 매력을 내뿜고 방콕의 끔찍한 교통은 쾌적한 빌딩이 주는 깔끔함에 비하면 불평할 거리도 없었다. 어디를 다니든 높게 솟은 빌딩과 불빛을 보면 나는 아름답다고 느끼며 고향에 온 것 같은 평온함을 느낀다.
하지만 이런 나도 불현듯, 종종 도시의 차가움에 몸을 부르르 떨 때가 있다. 서울이든 지방이든 어딘가 낯선 곳을 갔을 때, 그곳의 민낯은 숨긴 채 높은 빌딩들의 천편일률적인 창문을 보고 있노라면, 갑자기 세상에 나 혼자만 있는 것 같은 깊은 고독감에 빠진다. 특히 혁신도시에서 그런 인상을 잘 받는 것 같다. 혁신 도시니까 빌딩은 비교적 최신식이다. 그리고 높다. 그리고 혁신도시라 사람의 인구 밀도가 낮다. 그러니 눈에 들어오는 것은 그 높은 빌딩뿐이다. 당최 사람을 만나기 힘든 구조인 것이다. 그렇게 나는 버려진 느낌을 받는다.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홀로 내동댕이쳐진 느낌. 시멘트에 익숙한 나도 이 정도니 초록빛에 익숙한 사람은 더할지도 모르겠다.
이 그림을 처음 봤을 때, 영화의 한 장면이 생각났다. 그 정도로 이 그림은 아이코닉하다.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 아마 도시의 24시간 다이너인 것 같다. 이 식당은 요즘 말로 하면 코너 집으로 위치는 좋군요. 통창으로 내부가 시원스럽게 보인다. 우리에게 등을 보이고 있는 남자는 스툴에 홀로 앉아 뭔가를 마시고 있을 게다. 커피든 위스키든. 밤을 새울 이유가 있다면 커피를 마실 것이고 이유가 없다면 위스키를 들이켜지 않을까. 중절모를 쓰고 양복을 잘 차려입은 그 옆으로 스툴은 쭉 비어있다. 만약 그 옆에 동반자가 있었다면 쓸쓸한 느낌이 줄어들었을까.
꼭 그렇지만은 않다. 화면 위쪽으로는 커플이 보인다. 그들은 커피잔을 앞에 두고 있다. 신나게 얘기를 하고 있지도 않다. 서로를 마주 보고 있는 것도 아니고 손을 맞잡고 있지도 않다. 함께 있지만 함께 있다고 말하기 어려운 오묘한 상황. 붉은 머리 여자는 각설탕을 보고 있는 걸까? 남자는 묵묵히 앞에서 일하는 바텐더를 주시하는 듯하다. 이 커플은 왜 이 야심한 시간에 식당을 찾았을까.
흰 유니폼에 모자를 눌러쓴 바텐더에게는 익숙한 풍경일지 모르겠다. 홀로, 혹은 삼삼오오 야심한 시각에 식당의 문을 열고 찾아오는 사람들. 조용한 시간, 도심이 내뿜는 각종 소음도 잠이 든 시간, 홀로 바에 앉아 상념에 젖어드는 사람들. 바텐더는 그것이 좋아 일부러 야간조를 자처했는지도 모르겠다.
어두운 도시와 노오랗게 불을 밝힌 광고판 PHILLIES. 그 밝음이 오히려 손님들의 휑한 마음을 더 외롭게 만드는 것만 같다. 이 도시에서 먹고살기 위해서 누군가는 타인을 음해하고 짓밟고 걷어차는 무자비한 역할을 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도시가 잠시 숨을 고르는 시간이 되면 스스로 숨을 고르면서 괴롭다고, 혹은 외롭다고 몸부림치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것이 도시의 숙명이 아닐까.
에드워드 호퍼만큼 현대인의 고독감을 잘 표현한 작가가 있을까 싶다. 소외감과 고독감. 그의 그림에 그려진 우리들은 같이 있어도 유달리 외로워 보인다. 그렇게 물리적으로 같이 있어도 결국은 뼛속까지 함께 어울리지 못할 거라는 암시가 짙게 배어 있다. 현대인의 심리를 이처럼 잘 포착해낸 사람이 또 있을까.
뉴욕 휘트니미술관에 가면 그의 작품을 많이 볼 수 있다.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은 시카고 미술관에 있지만 현대인의 고독감과 소외감을 확인하고 싶다면 뉴욕에서는 휘트니미술관만 한 곳이 없다. 홀로 있어도 행복했네라. 과연 내가 이 말을 되뇔 날이 올 수 있을까. 앞으로 고독감과 소외감이 더 짙어질 것 같은데 고독과도 잘 지낼 수 있을 것인가. 자꾸만 식당에 홀로 앉은 남자의 뒷모습에 시선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