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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계현 Oct 28. 2023

반성은 일상, 자책은 필수

상담전문가가 되어도 반성문을 씁니다

(사)한국상담심리학회 소속 상담심리전문가. 

국가 공인이 아닌 민간 자격증이지만, 단언컨대 공신력 있는 자격증 중 하나다. 왜냐하면 상담 자격을 취득하는 절차와 과정이 꽤 복잡하고 힘들다. "상담 관련 석사학위 취득 이상의 학력과 최소 3년 이상의 수련과정 및 자격심사를 통과하여 개인상담 및 집단상담, 심리평가, 상담사 교육지도와 자문이 가능한 전문가(학회 홈페이지에서 인용)" 사실 처음에 문구만 봐서는 잘 몰랐다. '아, 상담전문가가 되는 길이 이렇구나..' 막연한 상상과 섣부른 판단으로 회원 가입을 하고 대학원 입시를 준비하면서, 주변 지인과 선배의 만류를 듣다 보면 조금씩 마음이 약해진다. 괜히 시작했나.


물론 좋은 점은 있다. 상담공부를 하면서 나의 어린 시절과 경험은 '살아있는 교재'가 되었고, 똥고집쟁이인 나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데 도움이 됐다. 주변 사람들을 이해하고 품으면서 관계도 좋아졌다. 특히나 상담 공부를 하기 전에 만났던 '나쁜 남자'들을 모조리 쳐내고, 상담 공부를 하고 나를 일으킨 후에 결혼을 한 건 참 잘한 일이지 싶다(연애가 힘든 모두여, 제발 자신을 우뚝 세운 후에 결혼하고 아이를 낳길). 


하지만 그 외의 모든 과정은 고되다. 대학원에서 강의 듣고 논문 쓰는 과정은 차라리 즐겁다. 초보 상담자에게 마음을 내어줄 내담자를 구하고, 상담에서 나눈 대화를 축어록으로 풀고, 돈을 들여 상담전문가에게 슈퍼비전(전문가의 지도 자문)을 받는 과정은 길고도 독하다. 상담료로 2만 원을 받는데, 10만 원을 들여서 슈퍼비전을 받는 수련은 계속됐다. 무료 상담을 하기 위해 서울에서 조치원까지 2시간을 들여 기차를 타고 오가기도 했다. 주변인들이 보기에는 '아직 정신 못 차린 30대', 이해타산을 모르는 바보 같은 짓. 대체 왜 그랬을까.    


초보이기에 매 상담 시간이 긴장이었고 내담자가 나아지지 않으면 속상했다. 반성은 일상, 자책은 필수. 슈퍼바이저의 평가에 따라 작아졌다 커졌다 반복했다. 상담에 대한 자신이 없으니 당연했다. 일부러 칭찬받을 만한 사례를 들고 전문가를 찾아간 적도 있다. 경제적 궁핍을 감수하면서 '상담사의 길'을 가고 있는 내게 부여할 수 있는 유일한 당위성은, '그래도 너 상담은 잘하는구나' 이런 칭찬이었다. 그거라도 없다면 '내가, 왜, 이 나이에, 기본시급에도 못 미치는 대우를 견디고 있는지에 대한 이유'를 찾을 수 없었으니.  


하지만 어느 날, 지독한 일상을 버티는 게 일상이 되어 버린 어느 날,
정말 중요한 건 '슈퍼바이저의 인정'이 아니라 '내담자의 인정'이라는 걸 깨닫게 되면서, 

그렇게 전문가가 되어 있었다.



'전문가가 되면 호두 까먹으면서도 상담하게 될 줄 알았죠'

상담심리전문가가 되면 누군가에게 상담에 대한 지도 자문을 해줄 수 있는 권한이 생긴다. 내게 조언을 구하는 초보 상담자들은 기대하기 마련이다. '전문가의 안목이니 맞겠지. 나보다 상담 실력이 뛰어나겠지' 나 역시 그럴 줄 알았다. 상담심리전문가가 되면 웬만한 상담은 호두 까먹으면서도 할 수 있겠다 싶었다.


예상과 달리, 전문가가 된 다음에도 반성은 일상이다. 스스로 상담이 잘되어 간다고 느낄 때도 한 번쯤은 의심한다. 나의 착각이 아닌지. 상담 회기를 마칠 때 내담자에게 상담이 어땠는지를 묻는데, 그 질문에 대한 대답에서 성의가 느껴지지 않으면 별 도움이 안 되었다는 의미다. 반대로 장황하게 대답해도 별 도움이 안 되었다는 거고. (이쯤 되면 내 성격이 문제인가 싶기도...)


내담자가 갑자기 상담을 취소한다고 하면 더 반성한다. '회사 일이 바빠서요. 친구랑 급한 약속이 생겨서요. 감기에 걸린 것 같아요' 물론 진짜인 경우도 있지만, 그런 핑계가 두어 번 반복되면 적신호다. 상담이 필요하면 바쁜 회사업무를 미루고서라도 오게 되어 있다. 기침 가래 때문에 컨디션이 안 좋아도, 마스크를 쓰고 텀블러에 도라지차를 담아가지고 상담에 온다. 친구가 상중이거나 병중이 아닌 이상, 친구와의 약속을 미뤄서라도 상담에 온다. 상담이 우선순위에서 밀렸다는 건, '더 이상 상담이 필요하지 않을 만큼 일상이 안정되었다거나, 상담이 도움이 안 되어서 필요 없다 느낀다는 것'


상담반성문

그래서 오늘도 '상담반성문'을 쓴다. 셀프슈퍼비전이라고 해야 할까. 표면적으로는 '회사 일이 바빠서'라고 하지만, 바쁜 회사일에 매진하고 싶을 만큼 '상담이 버거워진' 보이지 않는 이유가 있을 터. '단어 하나' '뉘앙스 하나'에도 기분이 상하기도 한다. 혹은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섣부르게 개입했을 수 있다. 내담자 스스로도 겉으로는 담담하게 말했지만, 그 문제를 파고들 준비가 미처 되지 않았을 수도 있고. 


상담 내용 전체를 찬찬히 복기하면서, 내담자의 반응과 표정 변화를 떠올린다. 나름 여러 가지 이유를 추론하고 대입해 본다. 사실, 그 이유가 맞는지는 당사자가 오지 않으면 확인할 길이 없다. 엄밀히 말하면, 상담반성문은 다음 내담자를 위한 거다. 다음 상담에 임할 나를 위한 거고.


'상담전문가'라는 자격 명칭을 받고서 다른 사람에게도 그렇게 알리고 다니지만, 여전히 나의 '상담반성문'은 길다. 어찌 보면 초보든 전문가든, 상담자에게 '반성은 일상이요, 자책은 필수'. 다만 초보 상담자였을 때와 달라진 게 있다면, 나의 상담반성문은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한 게 아니라 오로지 나와 내담자를 향해 있다. 우리가 함께 하는 상담 과정이 내담자의 삶에서 의미 있는 순간으로 기억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그래서 오늘도 기꺼이 상담반성문을 꺼내서 끄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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