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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계현 Apr 08. 2024

프롤로그 : 오다정

매일 5분 나에게 다정해지기

열심히 사는 너의 이름, 오다정


안녕하세요. 오다정입니다. 저는 열심히 삽니다. 왜 그러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초중고 개근상을 받았습니다. 부모님은 '아파도 학교에 가서 아프라'고 했습니다. 독서실에 '4당 5락('4시간 자면 대학에 붙고 5시간 자면 떨어진다'는 뜻)'이라고 붙여놓고 피똥 싸게 공부해서 대학도 갔습니다. 비싼 등록금 내고 대학에 다니는데 뒤늦은 사춘기가 왔습니다. 공부는 안 하고 동아리와 초록병에 빠져 살았지요. '왜 살아야 하나, 이렇게 사는 게 무슨 의미인가, 겨우 술 마시고 놀려고 대학에 왔던가' 답 없는 질문을 던지며 몇 년을 보냈습니다. 수십 번 낙방했지만 어쨌든 취업을 했습니다. 1년 후 '사회는 각박하다'라는 교훈을 얻고 실업자가 되었습니다. 몇 개월을 허우적대다가 뒤늦게 새로운 공부를 시작합니다. 이제야 뭔가 찾은 것 같은데, 이번에는 돈이 문제입니다. 나이가 차서 공부를 하려니 부모님께 손 벌리기가 미안합니다. 편의점 알바를 하면서 '그래도 원하는 일을 찾았잖아' 정신승리를 하면서 꾸역꾸역 버팁니다. 이루어 놓은 게 미약하지만 참, 열심히 살았습니다. 


열심히 산다는 건 나를 가만두지 않습니다. 뭔가를 빼먹으면 죄책감을 느끼고, 성과가 안 나오면 나를 비난합니다. 열심히 했지만 '더 열심히 하지 않았다고' 탓합니다. 잘 되면 그냥 그렇게 된 거고, 잘 안되면 나를 꾸짖습니다. '좀 더 공부할 걸, 조금 일찍 일어날 걸, 더 노력할 걸, 진작 시작할 걸' 과거의 미흡한 선택을 후회합니다. '그래, 이만하면 됐어. 난 잘하고 있어' 그렇게 자신에게 긍정에너지를 심어주라는데, 그러다 보면 뒤쳐질까 두렵습니다. 도로 한복판에 널브러져서 낮잠을 자는 느낌이랄까요. 사람들은 다들 바삐 어디론가 가는데, 나만 가만히 있으면 안 될 것 같습니다. 날쌘돌이 토끼도 낮잠 자다가 느림보 거북이한테 지잖아요. 전 날쌔지도 않고 재주도 별로 없고, 가진 돈도 없다고요. 열심히라도 하지 않으면 도저히 안될 것 같습니다. 


열심히 삽니다만 행복한지는 모르겠습니다. 늘 부족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걱정과 염려가 많습니다. 이대로 살면 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월급만 나오면 되는 건가, 이러다 집은 하나 살 수 있나, 노후는 어떻게 버티나. 남들은 하고 싶은 걸 찾은 것 같은데 나만 모르는 것 같고, 남들은 거저먹는 것 같은데 나는 거저 주는 것도 못 받아먹는 것 같습니다. 





오다정에게 : 매일 5분, 나에게 다정해질 것


오다정은 저이기도 하고, 제가 만난 누군가이기도 합니다. 열심히 사는데 부족하게 느껴지고, 이루어온 것보다 이뤄야 할 것이 먼저 생각나는 사람이지요. 쉽게 조급해지고 불안해집니다. 친구가 돌부리에 넘어지면 '하필 돌부리가 거기 있어가지고!'라면서 돌을 원망하지만, 내가 돌부리에 넘어지면 '하필 그것도 못 보고 넘어지니!'하고 나를 책망합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친절하지만 내게는 야박한 '오다정'들에게 제안하고 싶습니다. 매일 5분간 나에게 다정해지자고. 쉽게 지치고 불안해지는 나에게 매일 5분간 쉬는 시간을 주자고. 이 작은 위로의 날갯짓을 믿어보자고. '네가 뭔데 위로를 준다고 그러냐!'는 외침이 속에서 들려옵니다만, 살짝 무시하려 합니다. (제 기준에서) 완벽하지 않은 모습을 보이는 게 늘 꺼려집니다만, 그것도 무시해 보렵니다. 


나이스하고 완벽한 모습만 보이고 싶지만, 그건 꿈에서나 나오는 비현실적인 소망입니다. 현실에서 벌어지는 대부분은 불완전합니다. 울퉁불퉁하고요, 매끄러럽지가 않죠. 목표는 계속 어그러지고 부족하다는 생각은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나만 그러면 억울한데, 다행히 세상 대부분이 그렇습니다. 모든 걸 통제할 수가 없거든요. 출생과 죽음, 질병, 이별, 천재지변, 짝사랑 상대의 마음을 얻는 일, 사업 흥망성쇠... 원하는 걸 얻기 위해 '열심히 함으로써' 확률을 높이는 것일 뿐, 결과를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사십대를 넘어서니 '불완전한 게 참 많군!' 하는 생각이 들면서, 나에 대한 기준도 조금씩 느슨해지더군요. 여전히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만, 자책보다는 위로를 많이 합니다. 예전에는 '좀만 더 했으면 되잖아. 아직 부족해!'하는 마음이 많았다면, 이제는 '그래도 열심히 하겠다고 버둥대는 게 참 기특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가엽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합니다. '쯧쯧'하는 마음에 '잠깐이라도 쉬어봐. 떡볶이 사주까?' 하면서 나에게 다정하게 말을 걸게 되지요.


매일 5분, 나에게 다정하게 대해주는 나를 상상하면서, 이 글을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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