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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민 Sep 10. 2020

자존감

마음에 꽂힌 글귀

이런저런 이유로 코로나 바이러스 신규 확진자가  300~400명을 육박하자 아이들이 다니고 있던 학교는 온라인 수업으로 전환되었다. 일주일에 한 번이나 두 번 학교를 가게 되었다. 물론 바이러스 전파 차단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방법이다. 아이와 나는 또 찰떡같이 붙어 지내게 되었다. 정말, 내가 휴직 안 했으면 어땠을까 아찔하기만 하다.


찰떡처럼 붙어 지내고 싶어도 각자의 뇌를 장착한, 생동하는 인간인 나와 아들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갈등이 많고, 나는 화를 내고 혼을 내는 일도 많아졌다. 그러고 나서는 나 스스로 못된 엄마라고 자책하게 된다. 이런 일들이 자꾸 반복되다 보니 내가 진짜 문제가 많은 사람인가를 알아보기 위해 이무석 박사님의 <내 아이의 자존감>을 집어 들었다.


박사님을 만나 상담을 할 수 없으니, 책을 읽어 상담받은 기분이라도 내볼까 싶었다. 이곳저곳의 글귀들에 많이 꽂혔다. 그러다 이 글귀가 내 머릿속을 강타했다.





아이는 자기를 좋아하는 엄마를 보면서 자기를 확인한다.
'나는 예쁜 아이구나.' 이것이 자존감의 핵을 형성한다.
<내 아이의 자존감>, 이무석


내 어릴 적이 생각났다.

나는 엄마를 굉장히 무서워했다.

엄마가 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엄마가 된 경우가 드물었을 그 당시

친정 엄마는 엄마가 되었다.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몰랐고,

8남매의 틈바구니에서 자란 친정 엄마는 엄마의 손길을 느낄 겨를도 없이 어른이 되었다.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하는 가에 대해 고민하는 그때,

엄마와 가까이 지내던 친구분은 아이 키우는 비법을 전수해줬다.

아이는 엄하게 다스려야 한다

말을 듣지 않을 때는 매를 들어서라도 키워야 한다.


안타깝게도 나의 엄마는 그 말에 꽂혔다.

맏이였던 나를 정말 엄하게 다스렸다.

어릴 적부터 매를 맞기도 했고, 초등학교 때는 집 밖을 쫓겨난 적도 있었다.


맏이인 나를 키워보고 알게 된 것 같다.

아이는 엄하게 키우면 안 된다는 것을, 아이는 사랑을 줘야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내 밑으로 동생 둘은 다행스럽게도 덜 혼났고, 매를 맞지도 않았다.


그러나 나는 엄마의 체벌과 비난 섞인 말들에 자칭 쭈그리로 커버렸다.

나 스스로에 대한 사랑이 없었다. 자존감이 낮았고, 누군가의 눈치를 보게 되었다.

손을 들고 발표라도 하려면 가슴이 터져버릴 듯 콩닥거려서 발표 한번 제대로 해본 적이 없었다.


나와는 다르게 내 여동생은

덜 혼나서 그랬던지, 학교와 교회 행사에서 사회를 보기도 했다.

참 부러웠다.


어릴 적에는 내가 왜 이렇게 소심하고, 자신감이 없는지 알 수 없었다.

누군가 나에게 호감이라도 표현할라치면, 내가 좋다는 사실이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거리를 두기도 했다.

그럼에도 결혼을 했다는 사실이 참 다행스럽다.



여러 권의 책을 읽고, 아동 청소년과 관련된 수업을 듣게 되면서

나의 허약한 자존감의 뿌리가 엄마의 양육방식으로부터

시작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엄마가 원망스러웠다.


대학 때 학과 수업을 듣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너무 서러웠다. 왜 나를 따뜻하게 대해주지 않았는지,

왜 나를 그렇게 체벌했는지,

왜 나한테만 뭐라고 했는지,

머릿속에 불이 붙는 것 같았다.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서 들어온 그날

엄마에게 조목조목 따지고 들었다.


"나를 왜 이렇게 키웠느냐, 남들 눈치 보고, 자신감도 없게 키웠느냐."

이렇게 따지고 들었다.

무방비 상태로 저녁 준비를 하던 엄마는

비쭉 솟은 어투로, 다다다 쏟아대는 나를 보며 당황했다.


가스불을 끄고 이야기를 하자며 마주 앉았고,

엄마와 나의 동태를 살피던 아빠는 어쩔 줄 몰라하셨다.

이것저것 내가 느꼈던 것들을 감정의 동요 없이 나열하고 싶었으나

  "엄마는 왜,..."

라는 말을 남기고서는 말 대신 눈물 콧물을 쏟아냈다.



그러기를 한참,

엄마는 울면서, 나에게 한 마디를 남겼다.

  "나도 엄마가 처음이라 그랬나 봐."



헉,

반격을 할 수 없는 말이 날아들었다.

내가 엄마를 이해할 수밖에 없는 한 마디였다.



엄마를 미워하며 살 거라고 다짐했으나

나는 그러지 못했다. 엄마가 이해되어서.

그날 이후로

내가 아이를 낳게 된다면 자존감 높은 아이로 키우리라 다짐했다.



아이들의 모든 행동 하나하나, 옹알이 한마디에도 뛸 듯이 기뻐해야 한다.

자신의 말과 행동에 반응을 보이는 부모의 모습은 아이를 비추는 거울과 같다.

 '내가 별 것 안 했는데도 이렇게 좋아하네. 나는 진짜 사랑스러운 아이인가 봐.'

 '엄마, 아빠도 나를 이렇게 사랑스럽게 바라보는데 다른 사람들도 나를 그렇게

바라보겠지.'

존재 자체만으로 나는 사랑받는구나! 를 알게 되는 순간 자존감의 씨앗이 싹을

틔우기 시작해서, 무성한 이파리가 달린 나무로 자라게 된다.



나는 어릴 적 싹을 틔우지 못했다. 땅속에서 싹이 올라오면 누군가 밟아버릴까 봐

겁먹었다. 땅속에서 조용히 지내면 될 줄 알았다.

따뜻한 햇빛이 내리쬐듯

나 스스로를 생각하게 하는 책들이 나를 비추어줬고,

때 되면 충분한 비를 뿌려주듯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싹을 아주 조금 틔워서 빼꼼 내밀어보았다.

어느 누구도 나를 밟지 않았고,

각자 이파리들을 키우느라 정신없는 틈에

나도 싹을 조금 더 크게 키워봤다.


자존감의 핵이 세포분열이 가능하도록

어느 누구보다 나 스스로를 사랑하기 위해 노력하기로 마음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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