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지 않으면 자리만 차지하는 쓰레기다.
삶을 책장에 비유한다고 생각해보겠습니다. 책장을 조립하고 원하는 위치에 잘 세워두었습니다. 비어있는 책장을 채워나가는 일은 누구의 몫일까요? 내 몫입니다. 어디에 무엇을 넣을지, 어떻게 배치할지, 어떻게 꾸밀 것인지 모두 내 선택에 달려있습니다. 책장이라고 책만 채울 필요는 없습니다. 책으로 가득 채우는 사람이 있는 반면 책과 함께 잡동사니, 인테리어 제품을 같이 넣어 좀 더 예쁘게 꾸미고자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혹은 창고처럼 물건으로만 가득 채우는 사람도 있습니다. 각자의 방법으로 책장을 채워나갑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책장이 뭔가로 채워지는 게 보입니다. 내 취향에 맞게 책을 채우고, 물건을 넣어두고, 책장 속 물건들의 위치를 변경하기도 합니다. 대청소라도 하는 날에는 책장에 물건을 다 빼내고 바닥부터 맨 위칸까지 깨끗하게 닦기도 합니다. 점점 채워지는 책장을 보고 있자니 내가 뭘 좋아하는지, 어떤 사람인지 책장을 살펴보면 구체적이지는 않아도 그래도 이런 사람이구나 하고 느껴집니다.
불의의 사고로 책장 받침대가 부러져 더 쓸 수 없게 된다면 기존 책장을 버리고 새로운 책장을 들여오기도 합니다. 혹은 추억을 간직하고자 수리해서 다시 사용하기도 합니다. 이런 행동들은 우리의 경험과 지식을 저장하고 기억하고자 하는 일과 다르지 않습니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책장을 보니 비어있는 칸이 없을 정도로 뭔가로 가득합니다. 새로운 무엇인가를 넣을 공간이 없어 책 위로 책을 눕혀서 쌓아놓기도 하고, 책장 칸이 아닌 책장 위에 책이나 물건을 높게 쌓아 올려놓기도 합니다. 이렇게 보관하는 것을 선택할 수도 있는 반면 오래된 책이나 물건을 선택해 버리고 새로운 물건들로 채워놓을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가득 차 있는 책장을 내 선택에 따라, 입맛에 따라 정리한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일련의 과정들이 반복되면서 우리는 삶이라는 책장을 만들고 채워나가고 버리고 바꾸면서 만들어 나갑니다.
무엇인가를 정리한다는 행동은 힘들고 고된 일입니다. 언젠가 정리해야지 마음먹은 일을 실행에 옮기기까지 의외로 많은 용기가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있는 것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정리하기 위해 준비해야 할 일이 많고, 정리 자체가 고되고 힘든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정리해야 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비워야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옷장도 그렇고, 가방도 그렇고, 컴퓨터도 그렇고, 냉장고도 그렇습니다. 아무리 많은 것을 가지고 있다 한들 비우지 않으면 의미가 없습니다. 역설적입니다. 많이 가지기 위해 노력했는데 이제는 버리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냉장고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최근에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로 언택트 문화가 생겨나면서 다양한 신종문 화가 생겨나고 있지요. 저는 그중 '냉장고 파먹기'를 흥미롭게 지켜봤습니다. 마트를 갈 수 없으니 사태가 진정되는 동안 집에서 음식을 먹어야 하는 상황이니 냉장고에 있는 음식들을 먹어야 한다는 환경에서 나타난 일종의 운동이지요. 흥미롭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지금 제가 있는 집에만 해도 냉장고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언제 샀는지도 모를 식품들이 있었거든요.
먹을 수 있는 음식과 먹을 수 없는 음식을 구분하면서 참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냉동고에는 포장을 뜯지도 않은 먹을 수 있는 음식도 있었지만 몇 년 전에 구매한 음식도 있었고, 유통기한이 3년 이상 지난 식품도 있었습니다. 냉장고 구석에는 다른 음식에 밀려 빛을 보지도 못하고 운명을 다해버린 식재료도 있었고, 다른 식재료에 짓눌려 형태를 알아보기도 힘들 정도로 뭉개진 두부도 있었습니다. 확실히, 냉장고 안에 음식 대부분은 먹지 못하는, 먹으면 안 되는 음식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분명 살 때는 '먹는다.'는 목적을 가지고 샀을 텐데 왜 이렇게 먹지도 못하고 버릴 수밖에 없게 되었을까요.
저는 평소에도 냉장고에 있는 음식을 꽤 열심히 먹는 편이거든요. 단지 제가 먹는 속도보다 채워지는 속도가 빨랐던 것뿐입니다. 먹는 사람 따로 있고 채우는 사람 따로 있다 보니 먹던 음식들이 자연스럽게 새로운 음식에 밀려 냉장고 안쪽으로 사라져 버리는 것이죠. 먹자니 먹을 상황이 오지 않았고 버리자니 아까워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찾아서 꺼내먹자니 귀찮기도 하고 새로운 음식, 맛이 궁금하기도 해서 자연스럽게 이전에 먹었던 음식을 잊어버리게 되는 일이 반복되었던 것뿐입니다.
제가 불편함을 조금만 감수했으면 될 일이었습니다. 내가 잠깐 귀찮고 불편한 것 참자 하는 그 작은 '의지'만 있었어도 냉장고에서 버려지는 음식들이 많이 줄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게다가 '언젠가 먹겠지. 조금만 먹고 버리면 아깝잖아.' 하고 그대로 두었던 것도 큰 역할을 했습니다. 진공포장 식품의 경우 진공포장을 뜯으면 아무리 잘 보관해도 정말 빠르게 상합니다. 언젠가 먹겠지 하고 방치하다 보면 먹을 때가 되면 이미 상하고도 남을 시간이 흐르곤 합니다.
사서 저장만 하면 뭐합니까. 먹지 않으면 자리만 차지하는 쓰레기가 되는데요. 어떤 일이든 주기적으로 정리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오래된 옷, 입지 않는 옷을 버리는 것처럼, 읽지 않을 책을 버리는 것처럼 말이지요.
일상에서도 이러한데 일생에서는 정리가 얼마나 더 중요할까요. 그릇에는 채울 수 있는 양이 정해져 있습니다. 한계를 초과할 정도로 뭔가를 담으면 나중에 담는 물건은 그릇 밖으로 떨어지게 됩니다. 기존에 담겨 있던 무엇인가는 고착됩니다. 아무리 새로운 물건을 넣어도 그릇에는 담기지 않습니다. 새로운 무엇인가를 배우거나 경험하기 위해서 우리의 그릇을 비워야 하는 이유입니다.
'나 속의 그릇'을 만드는 데 영향을 주는 요인은 내부적으로 외부적으로 다양합니다. 내부적인 요인이라면 경험, 지식, 관념, 신념 등이 있고 외부적인 요인이라면 환경, 직업, 습관 등이 있습니다. 어느 하나만 생각하면 된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서로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그릇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하나만 바뀐다고 모든 것이 바뀌지 않습니다. 같이 바꿔나가야 합니다.
가장 효과적이고 쉬운 방법이면서 제일 중요하다 생각하는 방법은 '내가 정말로 하고 싶은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고 집중하기'입니다. 환경을 만든다는 것은 현재 내가 하는 일, 나를 둘러싼 일들을 생각하고 분석해서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방해가 되는 요소는 가차 없이 제거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집중한다는 것은 온전히 그 일을 향해서만 집중하되, 이루기 위해 시간과 돈, 에너지를 투자해서 오롯이 목표를 향해 달려갈 수 있도록 나 스스로를 정비한다는 뜻입니다.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나 꼭 해야 할 일입니다. 필요한 것은 취하고 필요 없는 것은 버리면서 여러분의 인생을 만들어가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