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노애락 / 이렇게까지 하는 일

by 차이

홍보의 창구가 언론 하나뿐이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는 보도자료의 중요성이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컸다. 나의 홍보의 시작도 언론홍보였고, 신입 시절에는 홍보 업무의 대부분이 보도자료 작성과 언론 대응이었다.


하지만 SNS를 비롯해 기관마다 각자의 채널을 갖게 되면서 홍보의 창구는 빠르게 다양해졌다. 예전처럼 보도자료에 목숨을 거는 시대가 아닌 것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보도자료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보도자료는 우리 기관의 공식 입장을 가장 정제된 언어로 정리해 언론을 통해 일관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식이기 때문이다.


연구기관의 경우 연초가 되면 연구보고서가 홈페이지를 통해 한꺼번에 공개된다. 보도자료를 별도로 배포하지 않으면 발 빠른 언론사를 통해 먼저 보도가 이루어지고 그 보도를 인용한 후속 기사들이 연이어 나오게 된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우리가 의도하지 않았던 부분이 부각될 때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가능하다면 연구자의 고민과 의중을 충분히 담은 보도자료를 직접 작성해 배포하는 것이 중요하다. 보도자료는 홍보를 위한 문서이기 이전에 연구성과를 오해 없이 전달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다.


얼마 전, 보도자료 작성 양식이 너무 낡았다는 피드백을 받았다. 부처와 함께 일하다 보니 배포되는 보도자료가 상대적으로 더 좋아 보이셨던 모양이다.


사실 보도자료 양식이라는 게 아주 대단히 다른 것은 아니다. 헤드라인, 리드, 본문, 관계자 코멘트, 부연설명 등 기본 구조는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객의 의견을 반영해 보기로 했다. 부처의 보도자료는 정책 브리핑을 목적으로 하고 우리는 연구성과를 발표한다는 점에서 비슷하면서도 다른 결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우리의 서식은 유지하되 정책 브리핑용 보도자료의 장점을 참고해 구조와 내용 밀도를 조정한 새로운 양식을 만들었다.


양식을 만들고 나니 연구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가이드도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뭘 이렇게까지 하나' 싶다가도, 이렇게까지 하면 나의 고객인 연구자들도 조금은 표준화된 틀 안에서 작성해 줄 것이고 그 결과 보도자료의 신뢰도와 활용도도 자연스럽게 높아질 것이라 생각했다.


보도자료를 AI가 뚝딱 써주는 시대에 굳이 사람이 보도자료를 써야 하냐고 묻는다면 나는 그렇다고 답하고 싶다. AI는 문장을 만들어줄 수는 있지만 일 년 동안 하나의 연구과제를 붙잡고 고민한 연구자의 머릿속까지 온전히 알 수는 없기 때문이다.


도구는 분명히 바뀌었다. 하지만 보도자료는 여전히 조직의 생각을 가장 책임 있게 말하는 방식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조금 과하다 싶을 정도로 이렇게까지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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